비엔나의 한국 식당
외국 여행 중에 한식을 사 먹지 않는 것은 내가 가진 이상한 고집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 매일 먹던 음식을 외국에서까지 먹고 싶지 않기도 했고, 남의 나라에 왔으니 최대한 다양한 음식 문화를 경험하고 싶기도 했으며, 한식에 대한 그리움을 극대화해서 한국에 가서 더 기쁘고 행복하게 먹고 싶다는 (변태적인) 생각 때문에 만들어진 고집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장기 여행을 했을 때 한 번도 한식당을 간 적이 없었다. 바리바리 챙겨 온 컵라면을 먹으며 한식에 대한 욕구를 꾹 참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5주 간의 세계 여행을 하면서는 캐리어 속의 짐이 너무 많아 라면의 부피라도 줄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찾아왔다. 그래서 라면들을 빨리 먹어 치우게 되었는데, 그 결과 여행은 2주가 넘게 남았는데 모든 라면이 동이 나고 마는 사태가 일어났다. 느끼하고 꾸덕한 타지 생활에서 유일하게 의지했던 라면마저 없어지니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현지 음식이 전혀 먹고 싶지 않고 한식에 대한 그리움만 자꾸 커져가는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억지로 현지 음식을 먹었지만 몸 한구석에 고향 음식에 대한 향수가 단단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때라도 그저 아무 한식집에나 들어갔더라면 훨씬 나았겠지만 난 이상한 고집 때문에 그러지 않았고, ‘먹으면 안 돼’는 더욱 강렬한 ‘먹고 싶어!!!’로 탈바꿈하는 중이었다. 결국 나는 한식 말고는 아무 음식도 먹고 싶지 않은 지경의 여행자가 되어 버렸다.
한 가지 웃긴 것은, 한식을 제외한 일식, 중식, 베트남 음식, 태국 음식 같은 건 많이 사 먹었다는 것이었다. 제일 맛보고 싶은 건 한국 음식의 칼칼함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한 고집 때문에 끝끝내 먹지 않고, 쌀국수나 라멘 같은 다른 동양 음식으로 불완전한 만족감을 얻는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 고집스러움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나도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그 바보짓을 이제 멈춰야겠다는 결심이 갑작스럽게 찾아든 건 여행을 겨우 3일 남겨 놓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때 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있었다.
부랴부랴 구글맵에 비엔나의 한식당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비엔나에서 가장 평이 좋은 한식당이 마침 내가 머무는 호스텔 근처에 있다는 걸 알고서 곧바로 나갈 채비를 했다. 식당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골목을 돌아보니 멀리 간판이 보였는데, 거기엔 커다란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밑엔 식당 이름이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태극 문양과 이름이 새겨진 아주 담백한 간판이었을 뿐인데, 그 담백함이 나 같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여기, 당신이 그리워하던 것들이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그 파랗고 빨간 곡선이 진실로 반가웠다.
식당은 바빴다. 내가 앉을 수 있는 딱 한 군데 좌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차 있었고, 포장 주문을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었다. 자리에 앉아 된장찌개와 간장 치킨을 주문하고서 내부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자니 마음속 어딘가에서 뿌듯함이 올라왔다. 비엔나의 한구석에 있는 한국 요리를 파는 식당이 한국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에게도 이토록 사랑을 받고 있었다니. 생면부지의 사람들에 대해 자부심과 존경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사람은 엄마, 홀에서 주문받고 서빙하는 젊은 남녀는 아들과 딸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할머니께 오이 있냐고 여쭤봐라.” 하는 말에 아들이 어디론가 들어가 확인하고선 “엄마, 할머니가 오이 채워 놓으셨다는데요?”라고 답하는 걸 듣고 삼대가 함께 하는 가족 사업이라는 걸 짐작했다.
어쩌다 삼대 가족이 이곳 비엔나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아들의 친구가 가게로 들어왔다. 예고 없는 방문이었는지, 아들이 “어? ㅇㅇ이다.” 하며 그를 반갑게 맞았다. 친구는 바빠 보이는 내부를 둘러보고 익숙하게 “3번이랑 5번 테이블 주문받을까?” 하고 물었고, 아들은 “아니야, 너 밥부터 먹어야지.” 하며 만류했다. 하지만 친구는 이미 능숙하게 일을 거드는 중이었다. 아마도 자주 들러 밥을 먹고 일을 돕는 친한 사이인 것 같다고 짐작했다. 엄마는 아들의 친구에게 일을 시켜 미안하다고 말했고 그는 웃는 얼굴을 하고 아니라고 말하며 당연하다는 듯 일을 했다. 그런 친구에게 틈을 내 갈비찜을 차려준 뒤 의자에 기대서서 무어라 이야기를 건네는 아들의 얼굴이, 좀 순수하달까 산뜻하달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친구가 비로소 밥을 먹기 시작한 건 내가 식사를 다 마치고서 계산을 하려는 때쯤이었지만 그 또한 지친 내색 없이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식당에서 먹었던 된장찌개와 한국식 치킨의 맛은 훌륭했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딱 그 맛이어서 내 모든 욕구가 해소되었다. 그래서 그 식당이 좋았다. 그런데 사실 그곳에 마음이 갔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그들이 한국말로 주고받던 말소리와 땀 흘리며 일하던 모습 때문이었다. 서로 돕고 베푸는 귀한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일손이 되어주고, 누군가는 귀한 음식을 내어 주고, 오고 가는 호의를 서로 간에 고마워하고. 먼 나라에서 서로 의지하며 사는 그들을 보며 이곳 비엔나에 뿌리내리고 살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상상할 수 있었던 게, 그래서 고향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나조차도 향수를 느끼도록 만들었던 게 이유였다. 그래서 그곳이 좋았다.
단순히 한식에 대한 갈망이나 잠재워 보고자 간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기대에 없던 경험을 하고 왔다. 그 한식당은 나의 고집스러운 생각을 바꿔 주었다. 타국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한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멀찌감치서 상상해 보는 것, 그리고 고향의 익숙한 맛을 느끼며 행복해지는 것. 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외국에서 먹는 한식은 그냥 한식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음식의 맛은 같겠지만 거기서 느끼는 반가움과 동질감과 뿌듯함은 너무나 달랐으니 말이다. 덕분에 늘 하던 것도, 늘 먹던 것도 새로운 장소에 가서 시도해 본다면 분명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색채로 다가온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그게 여행이 주는 묘한 경험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식당 오픈 시간이 되자마자 또 방문했다. 자꾸 생각이 나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곤조곤하게 들려오는 우리말과 김동률의 노랫소리, 그리고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던 제육볶음의 맛. 그 모든 걸 난 어쩐지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