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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Leaver Dec 05. 2024

우울한 여행자에게 선물을

캐나다의 부부



그날은 유독 차분했다. 비엔나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날이었다. 거리에 스치는 사람들이 풍기는 로션 냄새에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던 전날과 달리, 누군가 쳐다보기만 해도 울컥 짜증이 올라오는 그런 날이었다.


원하는 대로 되는 게 별로 없었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는데 직원이 준 건 크림이 가득 올라간 느끼한 커피였고, 지하철역에선 어떤 남자가 이상한 입모양을 하고서 나를 집요하게 쳐다보는 걸 무시하느라 애썼으며, 유명한 궁전에 찾아갔지만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고, 머리 위로 내리 꽂히는 햇볕은 지독하게 뜨겁기만 했던, 그런 날이었다.




사실 그즈음엔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더 예민했던 것일 수도 있다. 여행은 막바지로 향해 가고 있는데 여행 이후에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행이 해답을 제시해 줄 거라는 생각으로 떠나 온 건 아니지만 끝무렵이 되면 무언가 하나쯤은 명료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이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머릿속 생각들은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하나로 수렴되지도 않고, 점점 산발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째 비워지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게 더 많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비친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자유 vs 사랑, 자아실현 vs 돈, 떠돌이 생활 vs 안정감 등.. 사실 반드시 대척점에 있는 가치들이라고 보지 않아도 되는데, 그때의 나에게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반된 선택지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머릿속이 이래저래 복잡했다. 몸은 아직 여행 중인데 머리와 마음은 이미 여행을 갈무리하고 있는 묘한 상태였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지도, 미술관에 가서 감명받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들었다. 머릿속에 더는 그 어떤 새로운 걸 넣고 싶지도 않고, 모든 자극은 그저 성가시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날은 아직 밝았지만 그냥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정이 쉬워졌다. 식당을 알아볼 열정도 사그라들어 마트에서 대충 저렴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서 호스텔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곤 노트북과 이어폰, 다이어리를 챙겨 공용 식당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혼자서 차분히 앉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온몸이 새카맣게 탈 만큼 열심히 돌아다녔다. 무얼 위해 그리 움직였던가. 뭘 보고 뭘 느끼기 위해? 일기장 여기저기에 난잡한 생각의 흐름과 자유분방한 발상과 온갖 감정들이 흩어져 있다…….‘


어쩌고..라고 쓰던 그때,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사람들이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왔다. 난 당연히 된다고 답했다. 그들도 나처럼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려는 모양인지 즉석식품의 포장지를 풀어헤치고 있었다. 난 다시 이어폰을 끼고 화면에 집중했다. 그러다 얼마 뒤 여자분이 나에게 혼자 왔냐며 말을 걸었다.




가볍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두 시간 동안이나 지속됐다. 그들은 캐나다의 몬트리올에 사는 부부로, 둘이서 종종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대화의 주제가 수시로 바뀌었다. 그들은 아들이 있는데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해도 절대 따라오려 하지 않는다며, 그저 한국의 어떤 여자 아이돌을 좋아해서 벽에 포스터를 붙이고 콘서트를 보러 간다며 한탄하기도 하고, 나에게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어떤지, 대학 입시 시험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한국과 캐나다의 군대 시스템은 어떻게 다른지, 날씨는 얼마나 다른지도 공유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의 내 집 마련에 대한 인식이나 젊은 사람들의 달라진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요즘 애들의 문화를 흉보는 나에게 “너도 요즘 애들이잖아!”라며 호탕하게 웃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코로나 이후로 비싸진 팁 문화, 눈이 많이 오는 몬트리올에서 겨울철 눈을 대비하는 방법, 악기 연주, 채식하는 아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모의 마음 등의 주제로 끊김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비엔나의 어느 장소가 좋다더라 하는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어쩌다가 20년 가까이 방치되어 있는 우리 집 피아노에 대한 사연까지 흘러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건 캐나다의 중년 부부와의 대화가 참 유쾌했다는 사실이다. 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그들을 보며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뜻이 맞는 상대와 함께라면 사랑과 자유를 둘 다 누릴 수 있을지도 몰라.’


또, 어쩌다 내가 몇 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봤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아주머니께서 어떻게 하면 이민을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이가 어릴수록 점수가 높으니 하루빨리 준비하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땐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지는 것도 불사하고서라도 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모두와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 것 같아요. ”

그러자 그녀는,

  “네가 시작해서 다 데려오면 되지!”

라는 명쾌한 해답을 내려 줬다. 무언가를 어렵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무모해 보이더라도 일단 해 보는 게 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아주머니는 또 이런 말도 했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게 정말 용감해.”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 이 경험을 통해 저를 더 알게 됐고, 제가 이전보다 더 좋아졌어요. 그리고 더 용감하게 살고 싶어 졌어요.”

그러자 과묵하게 앉아 드문드문 말을 얹던 아저씨가 처음으로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왠지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과해 바라다 보이는 하늘빛이 어느새 어둡고 푸르뎅뎅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고 자리를 정리했다. 몬트리올에 오게 된다면 꼭 재워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온종일 다운되어 있었던 내 기분은 어느새 말끔하게 개어 있었다.


캐나다의 부부가 선물처럼 다가와 고민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주고, 답 없는 답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게 해 주었다.


그날은 그렇게 시작은 울적했으나 끝은 산뜻했던, 잊을 수 없는 날들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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