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놀자
어른이 되면서 서서히 잊은 감정이 있다. 잘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 꼽사리(?)를 낄 때의 기분, 나만 빼고 다 친한 애들 사이에서 밝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진땀을 뺄 때의 감정, 새로운 무리에 끼어들 때의 어색한 기분이 그렇다. 학창 시절 새 학기가 오면 이런 치열한 과정을 거쳐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친해지지만, 관계가 무르익을 때즈음 또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다. 그러면 이내, ‘이번 반 편성은 어떻게 될까, 내 친구랑 같은 반이 될 수 있을까?’ 하며 조마조마해진다. 운 좋게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면 모든 불안이 씻은 듯 사라지지만, 반대의 상황이 된다면 ‘아씨, 친한 애들 하나도 없네. 누구랑 놀지?’라는 걱정에 휩싸인다. 그래서 학기 초는 마음속이 전쟁이다. 그랬던 내가, 중학생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이 이런 걱정을 할 때마다 속으로,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귀여워 죽겠네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겨우 십 년 지났다고 그때의 감정을 잊은 것이었다.
그런데 내 나이 스물여덟, 열여덟도 아니고 스물여덟에 누군가에게 “나도 너네랑 놀고 싶어. 나도 끼워줘!”라고 말할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을까?
뉴욕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날, 호스텔 6인 도미토리의 맞은편 침대를 쓰는 한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스물여섯의 브라질 사람이었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건 이유는 미국 전압이 120v라는 걸 미처 확인하지 못해 어댑터를 챙겨 오지 않아서 핸드폰 충전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조 배터리와 어댑터가 충분히 있었던 난 그녀에게 충전기를 빌려주었고, 그렇게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여느 평범한 여행자들의 것과 같았다. 오늘 했던 것 중 무엇이 좋았는지, 또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묻고 답하는 스몰톡. 그러다 마리아와 그녀의 친구들이 다음 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간다고 하길래, “오! 나도 조만간 가보려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가 선뜻, “원한다면 우리랑 같이 가도 돼!”라고 제안해 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인사치레겠거니 생각하고 나도 인사치레로 “정말 친절하다! 고마워.”라고 이야기했다. 원래 멤버가 정해져 있는데 거기에 껴서 논다는 게 어색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감정은 느껴본 지 너무 오래돼서,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를 마친 뒤 침대에 모로 누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미국까지 와 놓고 낯선 애들 틈에 껴서 노는 게 어색할까 봐 같이 놀자는 제안을 거절하려 한다는 게 조금 어리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음속에서 또다시 ‘대범이’가 ‘소심이’를 설득하고 있었다. ‘호스텔에서 친구 사귀고 같이 놀러 나가는 게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인데, 같이 어울리고 싶어 하면서도 왜 망설여? 멍청한 짓 하지 말고 같이 놀겠다고 말하자!’
결심이 선 후 맞은편 이층 침대에 누워 있는 마리아에게 곧바로 말을 걸었다.
“마리아, 아까 메트로폴리탄에 같이 가자고 했던 거, 생각해 보니 나도 같이 가고 싶어.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나에게 알려줄래?”
그러자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좋아 내일 9시에 출발하자. 괜찮아?”
라고 되물었다. 그 대답 속에는 나머지 친구들도 당연히 환영할 거라는 확신이 내포되어 있었다. 친구들끼리의 여행인데 선뜻 남을 끼워 준다는 게 신기하면서 멋지다고 느껴졌다.
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 브라질에 대해 검색했다. 혹시라도 남의 나라와 그들의 문화에 무지해서 무례를 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색을 통해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었고 그 잔재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현재 관계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칫 내가 여행해 본 포르투갈이 무척 좋았다는 찬사를 남발할 뻔한 걸 막아주었다. 약간의 정보를 얻은 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호스텔 카페에서 마리아와 루아나, 그리고 조셉을 만났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함께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루아나와 나는 간단히 커피 한 잔을 주문했고, 마리아와 조셉은 빵을 시켰다.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의 구석진 테이블 위에 담백한 이야기가 쌓여갔다. 주변의 테이블에도 여행자들이 자리 잡고 앉아 따뜻한 커피나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떠날 채비를 하고, 누군가는 오늘 가볼 곳에 대해 들뜬 대화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홀로 앉아 신문을 읽는, 설렘으로 부산스러운 아침이었다.
라떼 맛이 어떻냐고 묻는 루아나에게 한 모금을 권하며 마리아는 나에게 셋이 어떻게 하다가 친구가 되었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셋 중 유일한 남자인 조셉이 자기의 고등학교 친구인 루아나와 대학교 친구인 마리아를 소개해 친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루아나는 갓 의대를 졸업한 뒤 2주간의 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며, 이 뉴욕 여행이 끝나면 바로 의사로 일을 시작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마리아와 조셉은 공대를 나와 지금은 같은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고, 루아나와 휴가 기간이 겹쳐 뉴욕에서 셋이 만나게 됐지만 이후엔 일정이 달라져 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려한 직업에 감탄한 것도 잠시, 영락없는 스물여섯 살 다운 행동을 하는 그들 모두에게 이내 친근함이 들기 시작했다. 금발의 긴 머리를 가진 루아나는 손톱깎이를 챙기지 못했다며 손톱갈이로 연신 자기 손톱을 ‘슥슥슥슥’ 갈았는데, 다 끝낸 뒤 불현듯 ‘아차’ 하는 표정으로 손톱을 갈아서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할 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청바지의 허리가 너무 커서 신발끈으로 허리춤을 묶었다며 자랑스레 보여주는 천진함도 보였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조셉은 오늘 자기 꾸밈새가 어떤 것 같으냐고 자꾸만 루아나에게 물어봤다. 그는 심지어 옷을 고르느라 아침 식사 시간에 늦었는데도, 무언가 못마땅했는지 한번 더 갈아입어야겠다며 방으로 올라갔다 오기도 했다.
마리아는 셋 중 가장 비판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천진했다. 브라질과 한국의 면적과 위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미국인들은 자기네 나라 말곤 다른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며 썩소를 짓다가도, 목걸이가 예쁘다는 내 칭찬에 자기 아빠가 사 준 거라며 아빠와 친하게 지내는 일화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앉아 한참을 대화하던 중 누군가,
“센트럴파크를 통과해서 걸어가면 메트로폴리탄까지 갈 수 있대! 우리 걸어가는 게 어때?”
하고 말했다. 나는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걷는 걸 좋아하는 여행자라는 사실에 더 반가운 마음을 느끼며,
”너무 좋은 생각인데? 난 걷는 거 좋아해! “
하고 대답했다.
호스텔의 뒷골목을 걸어가는 길에 조셉에게 엔지니어로 일하는 것이 좋냐고 물었다.
”음.. 글쎄. 설명하긴 어렵지만 조금 복잡한 것 같아. “
그는 대답했다. 얼굴을 슬쩍 올려다보니 그는 정말이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사는 곳도 생김새도 일하는 분야도 다르지만 이십 대 후반의 청년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어쩌면 닮은 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내가 여행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선생님으로 일했던 때의 사소한 고충을 이야기하자 나란히 걷던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공감했다.
“나도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아. 우리 엄마도 선생님이시거든. 엄마도 일부 학부모님들이나 학생들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걸 자주 봐왔어.”
그 말은 희한하게 위로가 되었다. 또, 나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여행을 결심했으며 사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내 말을 그들은 유심히 들었고, 조셉과 루아나가 이 여행이 나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진심이 담긴 말로 짧은 순간 위로를 건네 왔다.
센트럴파크를 걸으며 목적지로 향하는 삼십 분은 그곳을 가득 채운 나무들만큼이나 청량했다. 조셉이 갑자기 영화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루아나가 따라 부르며 양팔을 넓게 벌린 채 살랑살랑 춤을 추었고, 마리아는 옆에서 그들을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은 명랑하고 유쾌한 여행자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했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저렴하게 예매하는 방법,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센트럴파크에서 조깅을 하고 싶다는 소망, 조셉의 한국 친구가 해준 한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등에 대해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낯선 이들 틈에 껴서 놀러 간다는 느낌은 사라져 있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다. 함께 태국 음식도 먹었고, 뉴욕 시내를 여기저기 걸었고, 쇼핑몰과 타임스퀘어를 구경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브라질 친구들은 저마다 다른 다정함으로 나를 배려해 주었다.
그들은 모국어인 포르투갈어로 소통하는 게 편할 텐데도 나를 신경 써서 영어로 이야기하려 노력했다. 간혹 포르투갈어로 그들끼리 이야기하는 때가 있으면 조셉은 곧바로 대화 내용을 통역해 주곤 했다. 또 그는 늘 나와 보폭을 맞춰 걸으며 자기가 먹어본 한국 음식과 한국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공통된 관심사를 찾아냈고, 나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마리아는 나보다 동생이지만 어딘가 언니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친구였다. 카리스마 있게 의사결정을 하다가도 부드럽게 내 의견을 물어왔다. 또 문화 차이로 친구들 중 누군가 오해가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면 혹여나 내 기분이 상할까 봐 곧바로 부연 설명을 덧붙이고는 했다. 물론 나는 오해하지도,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언뜻 무뚝뚝해 보이지만 난 그녀가 매우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루아나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였다. 그녀는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열심히 대화했다. 또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고 내가 찍어준 그들의 사진에 밝게 웃으며 감탄하고 고마워했다. 말과 행동이 진솔하고 투명했다. 이번 여행 동안 내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운 원래 이름 대신 이니셜 ‘J’였다. 그런데 J라고 나를 소개하면 몇몇 사람들은 내 본명을 물어온다. 루아나가 그랬다. 본명을 알려주자 그녀는 여러 번 되뇌며 발음해 보다가 잘 안 되는 게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호스텔 카페 창가에 앉아 웃던 그 아이의 미소와 햇살을 받아 빛나던 황금색 머리칼이 기억에 남는다.
며칠 뒤 내가 호스텔을 떠나야 하는 날이 왔는데, 친구들과 인사할 기회가 없었다. 메신저로 작별 인사를 남기자, 그들은 모두 공통된 말로 내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 J. 이번 여행을 통해 너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가길 바랄게! 브라질에 오게 된다면 꼭 알려줘. 너를 가이드할 수 있다면 기쁠 거야!”
남의 말을 귀담아듣고, 담백하게 격려할 줄 아는 나의 브라질 친구들. 여행에서 처음으로 사귄 그들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느낀다. 학창 시절 친구들끼리 노는데 갑자기 끼워달라고 한 낯선 한국 여자애한테 이토록 친절하고 다정할 수 있다니. 그들의 따뜻함, 그게 ‘같이 놀자’ 요청한 나의 용기에 대한 보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태도가 나의 태도도 변화시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또다시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 없이 “나도 같이 놀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혼자 온 여행자에겐 이렇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