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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호주 우프(WWOOF)-문화 충격과 감격

둘째 딸- 마지막 우프 , 가슴 따듯함을 간직한 채

by 이강헌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렇게 허름한 박스에 든 과일을 손님들이 산다고?”


케이티 유기농 과수원 작업장에 가면 상품으로 나갈 과일들을 허름하고 낡은 박스에 담는다.

나는 이해가 안 되어서 "왜 고객에게 팔아야 할 상품을 이런 헌 박스에 담느냐?" 고 물은 적이 있다.

케이티는 이 박스들은 고객들이 과일을 받고 박스는 다시 과수원에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여기다 다시 과일을 담아서 판다고 말했다.


박스들을 한 번 쓰고 버리면 환경오염이 되기 때문에

고객들은 허름한 박스를 재활용하여 과일을 팔고 산다는 것이다.

호주인들의 환경에 대한 높은 의식에 나는 속으로 좀 놀랐다.

이처럼 나는 케이티네 집에 있으면서 놀랄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주 특이한 지역 유기농 마켓들

토요일이면 케이티네와 함께 지역 마켓에 갔다.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서 마켓을 여는 것인데

빵집, 과일집, 견과류 집, 화분 집, 와인집, 오일 집, 먹거리를 파는 집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었다.

이 지역에 농산물인데 전부 유기농이라 유기농 마켓이다. 케이티네도 여기서 토요일에 장사를 한다.



또 케이트는 우리와 함께 장을 보러 다니기도 하는데

그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우유를 살 때였다.

우유를 사러 갈 때는 빈 우유병들을 꼭 가지고 가야 했다.


우유 파는 집에 가면 커다란 물탱크에 달린 꼭지에 가져온 병을 대고 돌리면 우유가 콸콸 쏟아진다.

이 우유는 맛도 특이했다. 평소에 마트에서 사 먹는 우유보다 약간 느끼하면서도 진한 맛이다.

사 온 지 몇 시간이 지나면 두층으로 분리되어서 먹을 때는 흔들어 먹어야 한다.


또한 캐슬 매인에 있는 작은 유기농 마트에 갈 때가 있다.

그 집에서는 샴푸와 오일, 곡식, 과일, 채소, 베이컨, 뮤즐리 등을 살 때가 많다.

샴푸와 곡식, 오일을 살 때도 우유를 살 때와 같이 병을 항상 챙겨갔는데

원하는 만큼 자신이 담고 그램을 달아서 계산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샴푸병과 오일 병을 채우는 모습을 옆에 서서 한참을 구경을 하게 된다.




케이티 집에 살면서 경험한, 또 다른 문화적 충격과 감격


호스트인 케이티 아들 다니엘이 생일을 맞아 모든 가족들이 모인 적이 있다.

우리도 초대를 받아 가족 모임을 가까운 식당에서 했는데, 아주 큰 테이블에 많은 인원들이 모였다.

케이티의 막내아들,

그리고 다니엘은 엄마 케이티가 제혼 후에 멜버른 시내에 나가 사는

다니엘의 형과 누나도 이날은 다 왔다. 우리도 이들을 여러 번을 만난 적이 있어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 자리에 우리는 상상도 못 했던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

케이티의 전남편이자 다니엘의 친 아버지도 함께 와서 한자리에 앉아서 즐겁게 식사를 했다.

전남편, 현재 남편 함께 어울리는 이런 분위기가 금방은 적응이 안 되었다.

케이티의 전남편은 우리를 반겨주며, 자신이 다니엘의 생일에 반은 책임이 있어서 이 자리에 있다며 우리를 보며 농담을 던지기까지 했다.



우리는 케이티의 현재의 남편의 마음은 조금은 멋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전남편과 현재의 남편이 모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생일을 맞이한 아들을 축하했다.

우리의 정서와는 다르게 이런 복잡한 가족 관계 속에서도

모두 함께 보내는 즐거운 생일 파티 모습이 우리는 익숙지 않아 살짝 문화 충격이 왔다.


백인사회에서 본 아름답고 멋진 고부관계

또 흥미로운 일은 케이티네 집에는 리는 이름을 가진 시어머니도 한 집에 사신다.

서양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케이티의 현재 남편인 휴의 어머니인 리는 나이가 90세의 할머니이다.

요양원이 불편해서 재혼한 아들 휴와 살기를 원했고

며느리인 케이티의 허락을 받아 함께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시어머니 리는 나이가 많은 고령의 할머니이지만 상냥하고 마치 소녀와도 같은 느낌도 준다.

90세의 나이지만 미국에 있는 아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운전도 스스로 할 줄 알고, 예쁘게 단장을 하고 음악회도 다니시며 자신의 여가생활을 즐기며 노후를 행복하게 사신다.



음악회와 같은 공연을 보러 밖에 나갔다

오실 때는 내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항상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시기도 한다.

한 번은 사 오신 것을 깜빡하셔서 차에서 다 녹아버린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동양에서 온 낯선 우리에게 참 친절하다. 우리에게만 친절한 것은 아니었다.

며느리 케이티에게도 피해가 되지 않으려고 매사에 노력하시는 모습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다.


케이티네 집에서는 저녁을 케이티가 할 때도 있고

남편인 휴가 할 때도 있고, 특별한 날에는 내가 한국 음식을 준비할 때도 있다.

할머니 리는 항상 저녁을 먹고 나면 뒷정리는 자기가 하겠다고 하신다.

내가 도우려고 하면 자기가 저녁을 항상 대접받으니, 이 일만은 꼭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며 직접 하신다.


그리고 종종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맛있는 음식도 사주시곤 하는데

모두가 피곤한 날에는 피자 배달을 주문해서 함께 먹는 날도 있다.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는데 시어머니 리는 며느리 케이티에게 참 고맙다고 한다.

항상 될 수 있으면 케이티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하셨다.


케이티 또한 시어머니 리가 있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았고

같은 공간에 지내면서도 각자의 일과 고유한 공간은 침해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공존하며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고부관계를 상상하기도 힘든데...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가슴 따듯함을 간직한 채 떠나야 시간

이제는 케이티네를 떠나야 한다.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돌아오는 마음이 설레기도 했지만

케이티 집에서 좋은 경험과 따듯한 배려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정든 사람들과 이별한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슬픈 마음까지 들었다.


지난 나의 우프 여정을 되돌아보니

동양인이 한 명도 없는 외딴곳에서 지내보기도 하고,

안 좋은 호스트를 만나 진탕 고생을 해 보기도 하고,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호주식 음식을 먹으며 한국의 매운맛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빅토리아 주의 작은 마을들을 여행해 보기도 하고 사람들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우프는 나에게 잊지 못할 큰 여행이 된 것 같다.


*수지는 5월 21일 화요일 저녁 6시 비행기로 시드니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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