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가시기 전, 아직은 어둑어둑 한 새벽, 나는 차를 몰고 부산시에 진입을 하게 되었다. 회색 빛 빌딩 숲, 사이들로 희뿌연 하늘, 외로워 보이는 가로등 불빛, 그 아래 차가운 아스파트와 콘크리트 바닥들, 인적 드문 도로에 어느새 쏟아져 나와 달리는 수많은 차동차들...
지금 내가 사는 산골의 깨끗하고 싱그러운 새벽과는 너무나 다른, 건조하면서도 삭막하게 다가오는 도시의 새벽을 나는 느낀다. 이 새벽에 내가 가는 곳은 부산시 동구 좌천동이다. 이곳은 부산 역사의 산실이며, 부산 사람들의 산실이 되어온 유명한 일신기독병원도 있는 곳이다.
부산의 태동,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부산시 동구 좌전동은 부산의 역사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부산항을 최초로 개항한 곳이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들이 조선에 쳐들어와 첫 번째 마주한 성, 부산진성이 있던 곳이다. 부산진성의 장수 정발장군이 절대 우위를 가진 적의 화력과 군사들 앞에 후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현장이 있다.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독립투사들 저항의 기억, 선교사들의 헌신의 결실들이 남아 있는 곳이며, 또한 이곳은 부산이라는 이름이 처음 유래된 의미 있는 곳이 기도하다. 조선시대부터 부산의 중심이었던 부산진성이 있는 동구 좌천동 뒷산(증산)의 모양이 가마처럼 생겼다 하여 부산이라는 이름이 태동하였다.
부산진 성터, 정발 장군 사당
또한 이곳은 나의 20대 젊은 날의 옛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나는 20살에 강원도 태백에서 부산으로 홀로 내려왔다. 70~80년대에 20대를 이곳에서 보냈다. 젊은 날의 불안과 서투름, 정신적 방황과 구도의 몸부림, 배움의 열정과 미래를 향한 꿈과 땀이 배어 있는 이곳.
40년이 넘어서야 다시 찾아오게 된 것이다. 물론 아주 간혹 자동차로 주변을 언듯 스쳐 지나간 적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찾아와서 두발로 찬찬히 걸으며 자세히 돌아보기는 처음이다.
나의 지난날의 삶이 담긴 추억의 현장을 걷고 있으니, 옛 기억이 오래된 필름처럼 떠오른다. 젊은 노무현 변호사가 국회의원으로 처음 출마했던 기억,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첫딸을 낳은 기억, 오늘 첫딸이 출생한 일신기독병원에 일이 있어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일찍 왔기에 일을 마치고...
20대의 나의 삶의 흔적이 있는 곳, 60대가 돼서 다시 찾아와 모처럼 옛 기억을 천천히 더듬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40년도 넘게 흘러버린 세월이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고, 약간의 낮설음까지도 느껴지고 있다. 그래도 바뀌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이 옛 기억을 소환시켜 줄 때는 감회가 새롭다.
과거의 행복, 빈 둥지의 외로움이 공존하는 공간
나는 옛 추억과 기억을 더듬으며 젊은 날 체력단련을 위해 증산으로 등산을 다녔던 안쪽 골목골목 길들을 걸었다. 좌천동 안쪽 골목들은 거의가 부산이라는 이름이 태동한 증산 경사로를 따라 수많은 계단길이 미로처럼 이어져있다. 적지 않은 가파른 계단 길들은 산꼭대기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산동네로 자동차가 진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 부산의 독특한 산복도로이다.
가파르고 비좁은 골목 사이로 70~80년대 오래된 주택들이 퇴락한 모습으로 언덕을 따라 겹겹이 줄지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빈집임을 알 수 있는 집들도 보이고,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었다.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텅 빈 교실과 운동장, 과거의 활기와 미래의 희망들이 사라졌다는 허전함과 아쉬움이 느껴져 온다.
80년대 양옥과 현대 고층아파트 공존
낡고 옹색해 보이는 집들 사이로 가끔 보이는 노인분들의 모습에서 힘없고 쓸쓸함이 느껴져 오는 것은, 초로에 접어든 나 자신과 오버랩되어 그렇게 보이게 한 것일까? 이곳은 노인분들에게 과거 젊은 지난날 눈물과 땀으로 삶을 일구어 내 집 마련의 감격, 튼튼한 콘크리트 양옥집의 자부심, 가족들과 행복했던 기억이 담겨 있는 공간들이다. 이러한 기억들이 산동네 어르신들로 하여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낡고 불편한 집은 어떻게든 처분할 때도 되었잖아요! 작은 아파트 같은 것이라도 하나 장만해서 하루라도 편하게 사시면 좋겠어요!” 장성해서 집을 떠나 자식들이 부모님을 만나면 이러한 이야기하고 있을 수도 있다. 너무 가파르고 긴 계단들은 내가 봐도 노인들이 오르내리기에는 힘겹고 좀 불안해 보인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말을 듣는 건지? 안 듣는 건지? 자식들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그 집에 살아가고 있는 집들도 있을 것 같다. 어쩜 노인 분들은 이런 환경이 너무나 익숙하고 편한 곳인지도 모른다. 이런 부모님들의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는 자식들도 있을 것도 같다. 금년 구정 명절에도 부모 자식들과 결론 없는 실랑이를 하고 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노인 분들은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할까? 노인 분들에게 집은 소중한 기억들 이상일 것 같다. 자기 존재성을 확인하는 존재 자체인지도 모른다. 농촌에 어르신들이 논밭이 자신의 존재 자체인 것처럼... 물론 이런 나의 생각들이 틀릴 수도 있다. 노인분들 중에 이곳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형편이 안 돼서 사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세입자 같은 분들은...
저만치 낡고 불편한 집들 사이로 현대식 빌딩들과 고층아파트들이 줄줄이 올라와 위용을 뽐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인가? 부유함과 빈곤함 대비인가?
오늘 나는 아련한 옛 기억을 소환하는 발걸음을 걷다가
퇴락하고 낙후되가는 듯한 지역, 고단함과 소외감이 깃든 노인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나누어지고, 무언가 고착되고 있다는 생각들에 다소 마음 불편함도 느꼈다.
오늘 이른 새벽 부산에 오기 전, 기도 시간에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위한 기도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