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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헌 Apr 24. 2024

조용히 안 할 거야!

저항하는 아이

“조용히 안 할 거야!”

하는 말에 모두가 살짝 놀랐다.


모두 조용히 하는 분위기의 장소라

할머니가 계속 종알거리는 손녀에게

“조용히~”라는 말해주었다.

그런데 뜻밖에 “조용히 안 할 거야!”

당돌한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어린아이의 예상 못했던 대답에

주변 사람들도 살짝 놀랄 정도였다.

어린아이가 할머니에게 반항한다는

놀라움이 아니라


아직 아기나 다름없는

요렇게 작고 어린것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해서이다.


손녀는 아직 3돌도 안 지났다.

말을 하게 된 지도 1년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말이 남들보다 늦어서

엄마 아빠가 걱정하던 아이였다. 


그때마다 내가 해준 말이 있다.

“유니, 말 늦게 하는 것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유니 크면 입이 무척 야물기다.

자기 주관도 뚜렷할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직업병처럼 사람을 관찰하게 된다.

업무상 사람들을 대하고 가르치며

깊이 상대하는 일을 평생 해온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감이 온다.

사람은 이목구비와 자태에서 성격과 기질이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관상을 보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관상에 의존하는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것도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람을 상대하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타고난 자질과 됨됨이를 보게 되고

장차 길러 갈 수 있는 가능성도 찾게 된다.


이러한 노력을 오랫동안 해왔던 결과로

자연스럽게 사람 보는 눈이 조금 생긴 것 같다.


손녀의 두상과 이목구비는

자기 주관이 분명한 유형의 아이이다.

볼과 입 주변과 입술의 모습에서는

말을 잘할 수 있는 특성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손녀는 말문이 트이자

말을 너무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때론 어른들이 예상치 못하는

말들을 입에서 툭툭 튀어나와

듣는 주변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서로 쳐다보며 웃을 일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엄숙한 자리와 시간에 부모들이

“쉬! 조용히~” 하면

대체로 아이들이 조용히 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유니처럼 “조용히 안 할 거야!”

저항하듯 자기주장을 하는 모습은

본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다소 놀라고 흥미롭기까지 해서

가족들 사이에 회자된 것이다.


할아버지의 속마음은 유니의

이러한 반응과 태도가 이상하지가 않다.

오히려 내심 뿌듯한 회심의 미소

같은 것이 있다.


‘유니는 내가 본 대로 자기 주관이

분명하고 자기 소신이 분명한 아이가 맞는구나!’

라는 생각과 기대감 때문이다.


나는 손녀 유니가

인생을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멋지고 행복한 삶은

떳떳하고 당당한 자신만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타인들이 정한 요구나

사회가 주는 이데올로기들이 아닌


스스로 주관적인 사고를 통하여

인류 보편가치와 시대정신을 찾아내면서도

자신이 타고난 무늬와 결대로 사는 삶이다.


지나온 할아버지의

삶의 경로가 조금은 독특하다.


할아버지의 삶의 궤적에는

과거로부터 결별, 새로운 삶의 도전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이유를

한동안은 나도 잘 몰랐다.

‘내가 좀 유별난가?

나는 조직 적응력이 약한가?

자연인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도 든 적이 있다.


나는 살면서

사람에게  줄을 서는 삶이 좀처럼 잘 안 된다.

사회나 조직생활에서 힘과 권력 있는

사람에게 줄을 서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도 모르지는 않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안된다.


직업, 학연, 지연의 인관 관계에서도

“형님! 동생!”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며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일도 잘하지 못하고

특별히 살갑게 지내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외톨이는 아니다.

사람들 만나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인간과 사화와 같은 주제로 토론도 좋아한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는 사람이다.  

이로 인해 내가 만든 단체들도 몇 개나 된다.


우리 사회는 아직 “개인의 탄생”

의 경험이 미약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사회와 조직의 집단적 사고에 갇혀서

독립적 사고를 잘하지 못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할아버지인 나도 어려서부터

자기 주관이 강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릴 적에 나의 어머니께서

저항을 했던 기억들이 있다.

“남이 보나 따나?” 어머니께서

나의 생각과 행동에 제동을 걸려고

할 때에 자주 하시던 말이었다.


나는 “옳으면 가자 스랴!”

라는 마음으로 응수하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집안에서 나의

별명이 “별종”이었다.

나의 나 된 것은 생각해 보면

일찍부터 자기 주관이 분명했던 내가

생의 어느 시점부터 “개인의 탄생”을

경험하게 된 것 같다.


개인의 탄생 중심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발견",

"인간의 자유에 눈뜸" 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의 독특한 인생여정은

자유를 위한, 자유를 향한 노정이었다

지금의 나의 주어진 삶의 자리와 방식은

그러한 발걸음의 결실이며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 밑바탕에는 내 마음속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가지고

인류사에 도도히 흐르는 정신적 자양분을

끊임없이 찾아 곱씹는 노력들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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