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육아 맛보기
둘째 딸이 딸을 낳고
5년 후 다시 둘째 딸을 낳았다.
막내딸도 첫째 딸을 낳고 둘째를 가졌는데 딸이라고 한다.
딸만 셋으로 딸부자인 내가 손녀가 4명이 되어 딸 갑부가 되는 기분이다.
“저 집, 서운해서 어쩌나...”
오래전 우리 부부가 셋째 딸을 낳았을 때에 주위에서 한 말이다.
요즘과는 격세지감이 드는 말이다.
사실 나는 그때도 딸이 좋은 딸 바보이다.
둘째 딸이 둘째를 낳게 되니 집안에 일이 많아졌다.
6살이 막된 첫째 딸을 누군가 돌봐줘야 하고,
출산을 위해 병원에 있는 둘째 딸에게도 가족이 가야 한다.
사위가 딸의 돌봄과 부인 돌봄,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친정 엄마인 집사람이 나서 도와줘야 할 상황이다.
집사람이 나서면 바늘에 실 가듯 나도 당연히 따라나서게 된다.
차를 몰고 둘째 딸이 입원해 있는 인근도시의 산부인과 병원으로 출발을 한다.
사위가 분만을 위한 수술실로 보호자로 곧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6 살배기 딸을 누군가 대신 돌봐줘야 하기에
우리가 급하게 병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병원과 사전대비를 하였는데
급작스럽게 출산하게 된 산모들이 많아지게 되는
산부인과 만의 특수상황으로 일이 꼬인 것이다.
수술 시간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우리는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 가는 길에서 김밥을 샀다.
복잡한 도심인지라 병원주차장도 만차다.
우선 병원 입구에 집사람을 먼저 내려주어 먼저 가게 하였다.
나는 차를 약간 외각지 공용주차장에 대고 먼저 김밥을 먹었다.
혹시나 하고 다시 병원주차장으로 갔다.
이번에는 다행히 자리가 있어 얼른 주차하고
집사람과 손녀가 있는 병원 대기실로 올라갔다.
집사람도 김밥을 먹도록 육아교대를 했다.
“유니 안녕”
나는 손녀를 보자마자 환심을 사려고
의도적으로 더욱 밝게 인사를 했다.
요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먼저 손주에게 애교를 떠는 시대이다.
순간 손녀는 얼굴을 확 돌렸다.
할아버지도 전혀 반갑지 않은 느낌이 다가왔다.
하지만 낮 설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첫째 손녀 유니는 명랑하면서도
처음 만나거나 오랜만에 만나면 낮 가림을 하는 아이다.
손녀는 아빠 바라기이다.
더욱이 지금은 아빠가 자기를 놓아두고
엄마만 챙기러 갔다는 사실에 몹시 서운해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아니면 누구도 성이 차지 않는 상황이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손녀는 평소 밝은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었었다.
그 사이 산모인 둘째 딸이 둘째 딸을 무사히 출산을 하였다.
사위는 산모를 계속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고
우리 부부는 손녀를 계속 돌봐 줘야 하므로
손녀를 데리고 둘째 딸의 집으로 출발했다.
저녁밥시간이 되어 손녀를 데리고 아파트 상가 식당에 들어갔다.
"싫어! 싫어!" 하며 손녀는 식탁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빠와 엄마를 놓아두고 자신이 떨어져 나왔다는 것에 속이상한 것이다.
할머니와 가벼운 실랑이까지 벌이는 투정을 부리다가 겨우 자리에 앉아 저녁을 시켜 먹었다.
“히잉... 아빠는 엄마는 큰데 돌봐주고...
나는 이렇게 어린데 혼자 나 두고 흑흑흑...”
한 번씩 서럽게 울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인 우리 부부는 초긴장을 하게 된다.
있는 말 없는 말 꺼내서 달랜다고 진땀을 빼는 상황이 두려울 정도로
황혼육아를 맛만 봐도 쉽지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밤이 되어 사위가 첫째인 유니를 보려 집으로 왔다.
유니는 아빠를 보자 얼굴이 정말 명랑한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유니를 자기 아빠에게 맡기고 우리는 현관문 앞에서 인사를 하였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손녀는 작고 앙증맞은 몸짓으로
큰 하트, 중간하트, 손가락 작은 하트까지 사랑의 3종 하트를 날린다.
'허! 허! 허! 지도 미안했는가 보다ㅋ'
이튿날 아침 다시 우리는 유니를 보러 둘째 딸네 집으로 갔다.
사위는 아침 일찍부터 산모가 있는 병원에 다시 가야 하기에
그 공백의 손녀의 돌봄은 다시 우리 몫이 된다.
나는 나의 일이 있어 업무상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할머니인 집사람이 먼저 손녀를 돌보러 둘째 딸 집으로 갔다.
나는 업무를 좀 마쳐 놓고 손녀가 있는 둘째 딸 집으로 갔다.
집사람이 집안일과 손녀의 점심준비를 하도록
내가 손녀와 놀아 주어야 할 시간이다.
나는 다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히잉... 아빠는 엄마는 큰데 돌봐주고...
나는 이렇게 어린데 혼자 나 두고 흑흑흑...”
오늘도 애처롭고 난처한 상황을 또 겪었다.
나는 울지 않게 하는 "울면 안 돼"는
육아를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야 했다.
대응 방법은 나도 3종 세트로 대응하기로 했다
“리얼액션! 리액션! 오버액션”이다.
점심식사를 하고 이번에는 집사람이 일이 있어 먼저 나가고
할아버지인 나의 본격 나 홀로 육아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손녀는 나를 액션이 자꾸만 커지는 몸으로 놀아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나를 자구만 끌고 간다.
나는 아빠 생각으로 울지 않게 하기 위해 오버액션을 하며 열심히 놀아줬다.
간지럼놀이, 점핑놀이에 이어 하이라이트로 숨바꼭질 놀이로 들어갔다.
손녀는 자그마한 몸으로 잘도 숨는데 나는 쉽게 들켜서 내가 지는 게임이 되곤 했다.
손녀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찾지 못한 것에 신나서 숨바꼭질을 또 하자고 했다.
나는 어차피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야 하고 하기에
액션 3 종세의 필살기로 대응했다.
“where are you?
“I can't find you.”
손녀가 잘하는 영어로 대화하면서 열심히 놀아줬다.
'손녀가 울지만 않는다면...
나는 무어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숨바꼭질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커다란 할아버지는 번번이 들키고,
나는 숨은 곳을 알아도 모르는 체
영어로 중얼거리며 찾아다니며...
조금 늦은 오후
우리가 사는 도시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에
유니를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셋째 딸 집에 데려다주었다.
나는 집으로 가는 운전대를 잡았다.
얼마 못 가서 졸음이 막 밀려온다.
'이것이 황혼육아의 후유증이구나!'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같이 살면 좋겠어요! “
정신을 가다듬고 손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졸음이 오다가도 허! 허! 허! 너털웃음이...
이것이 딸부자! 아니 딸 갑부의 삶인가?
딸이 좋은 나, 손녀들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