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산골마을이 만든 작은 학교 분위기는 전과 다르게 사뭇 달라졌다.
학생들의 활기까지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뭔가 많이 다른 느낌이다. 들꽃학교 학생 숫자가 지난해에 비하여 두 배나 급증(?)해 4명이 된 것이다. 작년에는 학생이 단 두 명뿐이라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시피 할 정도였다.
이번에 온 한 명은 외부 학생이고, 다른 한 명은 대학생 나이인 둘째 딸이 들꽃학교 간사처럼 합류하였다. 별다른 업무가 없어 자기 필요한 공부도 하고 다른 학생들과 같이 수업에도 참여하기도 한다. 나에게 제법 도움이 된다. 내가 다른 일로 조금 늦거나, 복사물이나 인쇄물이 필요할 때나, 차로 어디로 나가야 할 경우는 도우미 역할을 잘하고 있다.
학생들의 증가로 한편으로는 분위기가 좋아진 만큼 조금은 산만한 감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모여지면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집에서도 아이 두 명 키우는 것과 세 명 키우는 것은 다르듯이 사람은 숫자에 따라 상호작용의 폭과 양이 달라진다. 각자 다른 개성들이 만나 일어나는 복합적 반응에 교사인 나로서 더욱 신경이 쓰이고 살짝 부담도 된다.
가르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담
부담이라기보다 이전보다 어깨가 좀 무거워졌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곳이 유일한 배움터가 된 저들에게 학과 수업은 물론,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 지금이 저들의 생에 중요한 지점에 있는 시기라는 것을 알기에... 교육은 단순히 교실수업 준비 이상이며, 풍성한 인생을 살도록 준비시키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도 작지도 않은 일이기에 마음이 부담이 있다.
내 마음속에는 부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참 신기하고 감사하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사실 처음 들꽃학교를 건축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당시 상황이 건축 법에 밀려 이 땅에 건축을 할 수밖에 없는 우여곡절의 사정으로 시작했다. 건축업자를 쓸 형편이 안 되는 형편이었다.
마을의 우리 두 사람이 모든 건축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동네 반장과 나는 거의 매일 모든 건축 공정을 스스로 진행해 나갔다. 물론 간혹 주말 같은 때에 지인이나 사람들이 와서 함께 도와주는 경우들도 있었다.
산골에 들꽃 학교 탄생한 배경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가고도 또 봄 여름, 이렇게 1년 6개 월이 지나서야 건물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부 인테리어와 주변 환경 조성은 그 보다 훨씬 더 긴 약 3년이 걸려서야 최종 마무리가 되었다.
건축이 거의 끝이 보일 무렵 어느 날 내 속에서 ‘그렇다! 바로 이거다!’ 학습공동체, 작은 학교, 도서관등의 개념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의 홈 스쿨의 연장으로 주변과 지역에 소위 탈 학생들과 함께 하는 공간이 되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들꽃학교, 들꽃 도서관이 탄생되었다.
사람들이 작은 산골에 학교를 보고 많이 놀라워한다.
한 지인은 우리 마을을 방문하여 들꽃학교 건축물을 보고 "이것을 두 사람이 건축을 했다고요? 세상에 이런 일에 나올 일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농사짓는 농부와 건축을 안 해본 도시인 두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느냐?" 묻기도 할 정도이다. 내심 우리가 생각해도 이런 건물을 우리가 지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들꽃학교를 생각하면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다. 아주 작고 작은 산마을 속에 예쁘고 멋진 학교를 마을 주민 스스로 가 지었고, 그리고 지금은 그 자녀들은 그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부모인 나 자신이 학생들의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 외부에 아이들까지 더 들어와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