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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헌 May 24. 2020

"신부 입장!" 알 수 없는 눈물

나도 알 수 없는 나의 눈물

“신부 입장!” 식장 사회자의 힘찬 소리가 들려왔다.

결혼식에 갈 때마다 익숙하게 들어 본 소리이다. 이날도 새롭게 들리지는 않았다.  요즘 나는 결혼식에 자주 가는 편이다. 그래서 그냥 여느 결혼식장에 참석하였을 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기 위하여 신부가 입장하는 쪽을 습관적으로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눈물

고운 학처럼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단장한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갑자기 나의 콧등이 시큰하더니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작스러운 나의 반응에 나 자신이 사뭇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아니, 내가 갑자기 왜 이럴까?’ 나는 뜻하지 않은 나의 반응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내 속에 복합적인 감정들이 섞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부를 대동하고 나온 아버지는 나의 친구이다. 신앙 안에서 가장 오랜 친구이며 잊지 못할 친구이다. 80년대 초 그와 나는 20대의 젊은 날에 직장 동료로 처음 만났다. 당시로서 우리 직장의 근무 여건과 환경은 무척 좋았다. 소속은 국방부, 근무방식은 미국식, 환경은 대학 캠퍼스와 같았다. 직장 내의 맑은 호숫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나무 숲길은 출퇴근 시간에 운치와 낭만을 맛보기에 충분했다.


한 친구를 만난다.

그 길을 출퇴근 길에 거닐 때, 뒤에서 내 등을 툭 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했던 친구가 바로 이 친구다. 그때 나는 인생과 진리에 대한 집요한 질문을 하는 소위 구도자이기도 했다. 반면 친구는 내가 봐도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우리는 자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점심시간에는 함께 식사를 하며 인생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많은 날들이 대화가 쌓이게 했고, 나는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질문자로 가기도 했으나 나는 교회 분위기에 도무지 적응이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기도 시간에  슬며시 도망 나오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에 대한 신뢰가 다시 교회로 갈 수 있게 하였고,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전환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경험은 나의 구도자적인 철학적 사유로서 절대자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게 하였고, 정신세계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그 사건의 충격과 감격은 나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면서 생각에 뿌리를 내리며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로 인하여 나도 크리스천이 되었고, 친구와 나는 더욱 가깝게 되었다.


직장에 사표를 내다.

   어느 날 친구는 갑자기 직장에서 사표를 던졌다. 탈없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목사의 길을 가고자 신학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결혼도 하였고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이 내게는 놀라웠다. 그때 친구는 갓 결혼하여 부인이 첫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부인이 배가 한참 부른 상태로 신학생 남편 뒷바라지를 위하여 전화국에 출근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세 자매

그때에 뱃속에 있던 아이가 자라고 장성하여 오늘 어엿한 신부가 되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 나오는 모습을 내가 본 것이다. 딸의 손을 잡고 나오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유수 같이 흘러버린 세월의 커다란 흔적을 느꼈던 것이다. 친구의 패기찬 젊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아버지가 되어 걸어 들어오는 모습에 나도 모르는 반응이 내 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이었던 같다. 빠르게 가버린 세월의 흐름에 대한 즉감,  나도 이듬해 사표를 내고 친구와  같은 길을 걸어왔던 그동안의 긴 세월들,  친구의 모습과 나의 모습과의 오버랩,  결혼할 딸을 셋이나 가진 나, 여러 가지 섞인 감정이 한순간 투영되었던 것 같다.


특별한 인연

   친구와 나는  또 다른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이 친구가 나에게 집사람을 소개한 사람이다. 친구는 어느 날 일찍부터 우리 집에 찾아왔다. “친구야! 내가 너의 신부 감을 소개해줘야겠다. 우리 교회 여선생님인데 너하고 딱 맞겠더라!” 친구는 자신이 부임한 교회에 한 여성을 나에게 소개 주려고 작정하고, 아침부터 우리 집에 찾아와 죽을 치며 한번 만나 보라는 것이다.


내게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다. 당시  나는 결혼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기에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작심하고 찾아온 친구는 우리 집에서 점심까지 같이 먹으면서 버티고 있다가


그녀의 학교 퇴근 시간에 맞추어 나를 이끌고 나가 만남을 성사시켰다. 첫 만남은 결혼 생각이 별로 없던 나의 마음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그 만남은 결국, 결혼에까지 골인하게 되었고, 어느덧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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