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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Jul 10. 2020

글을 쓰고 계신다고요?

영화 "패터슨".(Peterson)




매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곳으로 출근하고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일과로 끝나는 날들





  아침 정체가 극심한 광안대교 끝자락.

  1차로 차선에서 앞차 뒤꽁무니에 붙어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서행하고 있다가 합류지점 끝에서 칼치기로 밀고 들어오는 흰색 승용차에 깜짝 놀라 핸들을 틀었습니다.  인상을 찌푸리며 끼어드려는 다른 차와 실랑이를 좀 하고 그러곤 한참을 더 정체된 도로를 지나서야 사무실에 도착하죠.  무념무상의 상태에서도 몸이 습관적으로 기계처럼 착착 움직여요.  책상 아래 쓰레기통을 비우고 전날 쌓인 폐기 서류들을 세단기에 넣습니다.  밀대로 바닥을 닦고 물 양동이에 빨아 건물 뒤편에 세워 놓으면 다들 말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탁탁탁 아이디, 비번 넣고 단말기를 켜고 있죠.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초기화면을 지나 사내 전자게시판을 뒤적거리면 참 바지런한 누군가가 매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는 '일일 실적표'가 올려져 있어요.  이 공간에 앉아 있는 동안의 모든 이들, 각자의 '경제적 가치'가... 빼곡한 숫자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얼마만큼 쓸모 있는 존재인지, 혹은 쓸모없는 존재인지의 여부가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그 다양한 데이터들의 형태로 속속들이 매겨져 있죠.


  이윽고 문이 열리고 어제와 똑같은 일과가 시작되면 여전히 차디찬 그 숫자와 데이터들로 마주 앉는 사람들과 종일 '대화'합니다.  수치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들은 이 공간에서 아무 의미가 없어요.  늘어나거나 줄어들고 나눠지고 곱해지는 측정 가능한 숫자들만이... 의미를 가집니다.  가끔은 머릿속이 텅 비어진 상태에서도 기계처럼 정형화된 많은 말들을 쏟아내기도 해요.  한 사람씩 순번을 정해놓고 나가는 점심시간엔 가장 한적한 식당을 찾아 혼자 창밖을 보며 멍하니 식사를 할 때도 있습니다.  같은 패턴의 오후 시간을 그렇게 몇 시간 더 보내고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서, 항상 비슷한 지하 주차장 인근 자리에 차를 두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과 눈인사를 해요.  

물론 앞뒤 순서만 달라질 뿐 집에서 소소히 보내는 일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어 밤이 지나 눈을 뜨면 거의 비슷한 날들이 되풀이되겠죠.  어느 구석에서도, 특별하고 극적인 순간들은 그다지 없어 보입니다.






23번 버스를 모는 패터슨 씨는


       

시를 씁니다

  


버스 운전석에서도 쓰고



벤치에서 아내의 도시락을 먹는 동안에도



늦은 저녁 창고에서도, 시를 쓰죠




                            위대한 숫자



                           빗줄기와

                           불빛 사이로

                           숫자 5를 보았네

                           빨간 불자동차에

                           금박으로 씌어

                           거들떠보지 않아도

                           미친 듯

                           달려가서

                           벨은 땡땡땡

                           싸이렌은 위잉윙

                           덜컹대는 바퀴로

                           까만도시 뚫고 갔지.




  '위대한 숫자'라고 우리말로 번역된 이 시는 어느 한 미국 시인이 뉴욕의 친구 집을 방문했던 길에 빗속의 길거리에서 싸이렌을 울리며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고 난 후 쓴 거라고 전해집니다.  그 소방차 옆면에 새겨진 금색의 숫자 5를 보곤 시상을 떠올렸었다고 해요.  

이 '소박한' 시를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1883-1963)입니다.  특이하게도 자신의 고향인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서 거의 평생을 내과 의사로 지내면서 시를 쓴 사람이죠.  과장된 상징주의를 배제하고 일상 속 순간들의 포착과 관찰을 중요하게 생각한 점에서 이른바 '객관주의' 시인으로 불렸다고 해요.  일상의 언어를 장대한 서사시로 쓴 '패터슨' 5부작이 대표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시집 '브뢰헬의 그림, 기타'로 1963년 퓰리쳐상을 수상했던 미국 시단의 대표 시인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작가주의 영화감독 짐 자무쉬가 자신이 존경하는 시인인 이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자취를 돌아보기 위해 실제 시인이 의사로 재직하며 오래 지냈던 뉴저지의 소도시 패터슨을 여행차 방문했다고 하죠.  길지 않은 잠시 동안의 여행이었지만 짐 자무쉬 감독은 패터슨 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문득, 이곳에서 시를 쓰고 살아가는 평범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답니다.  따지고 보면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도 시를 쓰는 의료 노동자였잖아요.  

한데 짐 자무쉬 감독은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영화 속 그 시인이 패터슨 시의 버스 운전사로 등장하는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었죠.  도시를 부유하듯 탐험하면서 이미지를 발견하고 매일 다양한 사람들의 대화를 등 뒤로 들으며 살아가는 그 누군가야말로 생활 속 시인으로 가장 적당하다고 그렇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각보다 꽤 오랜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짐 자무쉬 감독으로 인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작품이 바로 2016년작 '패터슨'(Peterson)이에요.


  작품 전체를 시적으로, 철학적으로 채워가는 그 독보적 연출 스타일은 이 영화 '패터슨'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합니다.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감상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어요.  두 시간을 거의 꽉 채우는 작품이지만 우리가 흔히 영화를 통해 얻기를 바라는 그 어떤 자극이나 강렬함도 일절 없죠.  심지어 명확한 기승전결의 서사를 따르고 있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이 작품에 대한 짐 자무쉬 감독의 설명을 미리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영화를 보면서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숨은 의미를 막 찾으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평온한 이야기예요.  인생이 항상 드라마틱 한 건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대한 영화예요."  

맞습니다.  그런 영화죠.  패터슨 시에서 23번 시내버스를 몰며 살아가는 운전기사 패터슨 씨의 평범한 일주일간의 이야기.    





 

패터슨 씨에겐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길가의 모습들이




생활 속 사소한 감정들이




시가 될 수 있어요






   짐 자무쉬 감독의 '예술영화', 그것도 이렇게 시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라면 보기도 전에 이미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들이 있을 겁니다.  평범한 우리들과는 이미 태생부터 남다른 시인, 작가, 화가, 음악가들의 삶은 거의 대부분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남다른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죠.  생을 관통하는 열정과 격정, 때로는 급진적인 파격들이 그들을 예술로 이끌었고 우린 그들의 그러한 비범한 행적들을 통해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본질적 의문에 부딪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으로 보자면 이 작품 '패터슨'은... 전혀 예술영화가 아닙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침대에 누워 함께 잠자고 있는 월요일 아침의 패터슨 부부의 모습이 비추어지죠.  먼저 패터슨 씨가 눈을 뜨고, 곧이어 잠이 깬 아내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어요.  혼자 시리얼로 아침을 해결한 뒤 도시락 통을 들고 걸어서 출근합니다.  매일 사는 게 힘들다며 불평하는 인도인 배차 직원과 인사를 나눈 뒤 늘 몰아왔던 23번 시내버스로 하루 종일 패터슨 시내를 운행해요.  점심은 폭포가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 먹습니다.  다시 오후 운행을 마치면 아침에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 집으로 가죠.  아내와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면 반려견인 불독 '마빈'과 밤거리 산책을 나가고, 그 길 중간의 단골 맥줏집에서 주인 할아버지와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돌아와서 다시 잠자리에 듭니다.  

이게 패터슨 시에 살고 있는 시인, 패터슨 씨의 하루 일과예요.  다시 화면이 바뀌면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앞에서 주르륵 나열했던 그 하루 일과 그대로 이어지는 패터슨의 일상을 반복해 보여줄 뿐입니다.  이렇게 매일이 지나 다시 일주일 뒤 월요일 아침을 맞으면서 이 118분짜리 영화가 끝나요.  아무리 그래도 어떤 '특별한' 일들이 적어도 한두 개 정도는 불쑥 나오지 않을까 싶지만, 결국 '별다른' 일들은 끝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로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처음 이 작품을 감상했을 때, 솔직히 매 순간 고민했었습니다.  대체 어느 시점에서 과감히 정지 버튼을 누를까 하고 말이에요.  한데 숨죽여 쭉 들여다보고 있던 어느 순간에서부터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던 패터슨 씨의 그 일상 속 행간에서 조금씩 변주되어 나타나는 미세한 '균열'들이 스며들듯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근데 그 '균열'이 불안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다가오진 않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새삼스러운 '발견'이나 '깨달음'에 가까워 보입니다.  무심히 바라보던 하늘 위 뭉게구름이 순간 내가 생각하던 무엇과 유독 닮아 보여 한참을 올려다보게 될 때, 혹은 늘 밟고 지나치던 회색빛 보도블록 사이로 추운 겨울을 이겨낸 노란빛 작은 야생화 하나를 새삼스레 발견했을 때 받게 되는 그런 아주 작고 소소한... 감동에 가깝죠.  


  얼핏 보기에 살짝 무서워 보일 정도로 무뚝뚝한 인상의 패터슨 씨는 바로 그런 일상의 매 순간들에서 자신만의 시상을 담아 비밀노트에 혼자만의 시를 써내려 갑니다.  어엿이 이렇게 매일 시를 쓰는 '예술가'이지만 그의 시는 세상을 뒤엎어버리거나 혹은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만한 크고 거창한 사상이나 이념들을 담고 있지 않아요.  흔하게 굴러다니는 성냥갑, 매일 스쳐가는 버스 승객들의 일상적 대화들, 항상 억울한 표정의 반려견 불독 마빈,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사랑스러운 아내, 그리고 매일 밤 찾아가는 단골 맥줏집에서 마주치는 풍경들 모두가 그에겐 '시'가 되고 '글'이 되며 어쩌면 '영화' 같은 순간들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바라보면 월요일에서부터 시작해 계속 이어지는 패터슨 씨의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이 똑같아 보이지만 또 동시에, 결코 똑같아 보이지 않을 거예요.  늘 비슷한 일상의 리듬 속에서, 숨겨져 있는 아주 미세한 그 '변주'들을 버스 운전기사이자 '시인'인 패터슨 씨와 같은 시각으로 함께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말 그대로 어쩌면 이 자체로 시(詩) 같은 작품이죠.  쓰여지는 것과 동시에 비워진 여백의 합이 만들어내는 예술이 바로 시(詩)라면, 이 영화 역시 보여지는 것과 동시에 보이지 않은 많은 여백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며 꽉 채워야 할 삶의 밀도가 무언지 차분히 묻고 있으니까요.






깨지고 부서져도




우리는 늘 우릴 미소 짓게 만드는




무언가에서




또 누군가에게서 그 '특별함'을 발견합니다




이미 늘 그래 왔듯이 말이죠






  20분 정도 아예 일찍 차를 몰고 출근길에 나서 봅니다.  

  늘 그렇듯이, 광안대교 내려가는 갈래 지점에선 한참을 자기 차선에서 오래 기다려온 차들과 그 진입로 끝에서 얌체처럼 밀고 들어오려는 많은 차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죠.  시간이 느긋하다 보니, 항상 새치기 차를 노려봐야 했던 오른편에서 눈을 돌려 넓은 바다가 펼쳐진 왼쪽편으로 시선을 계속 둬봅니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듯한 하늘, 뭉게구름, 바람에 출렁이는 잔 파도 위로 햇살에 비쳐 빛나는 금빛 물결들이 점점이 그 바다 위를 수놓고 있었네요.  


  훨씬 일찍 도착한 텅 빈 사무실에선, 집에서 내내 쓰지 않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회사에 가져다 둔 커피 머신에 시큼한 원두커피 가루를 직접 부어 뜨거운 물에 내리고 시끌벅적해지기 전의 그 고요를, 잠시나마 만끽해 봅니다.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매일 일깨워주는 그 복잡한 '일일 실적표'가... 다시 들여다보니, 나름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또 다른 지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죠.  인간미라곤 1도 느껴지지 않는 그 숫자와 데이터로만 늘 '대화'하고 있지만 그 너머엔, 이제 함께 희끗희끗 나이 들어가며 때때로 슬며시 음료와 과일을 건네주고 가시는 낯익고 정겨운 '사람'들이 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기 빨아먹는듯한 뉴스들만 주야장천 들렸던 객장 TV도 꺼버렸어요.  대신에 인터넷 PC에 연결된 스피커로 재즈, 클래식, 어쿠스틱 음악, 보사노바, 영화음악들을 골라 은은히 틀어놓으면 그 작은 '변화' 하나로, 아예 통째로 다른 곳이 되어버린 듯한 마법 같은 느낌이 슬며시 들 때도 있죠.


  저녁노을이 붉게 지는 광안대교를 운전해 집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쳐가는 광안리 해수욕장의 환한 야경을 차창밖으로 흘깃 바라볼 땐, 새삼 매일 이렇게 바다를 보며 오가고 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그뿐인가요, 죽었다 깨어나도 엘리베이터에서 눈길 한번 마주칠 거 같지 않았던 무뚝뚝했던 위층 이웃분이 어느 날부터 슬며시 눈인사를 하며 '안녕하세요'라고 답해와요.  변화무쌍한 마나님, 꼬맹이 둘, 냥이 두 마리와 저녁 내내 뒹굴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 거실 의자에 홀로 앉아 하루 종일 보고 싶어서 떠올렸던 영화 속 이야기들에 빠져들어, 마치 '예술가'가 된 듯 마음이 일렁이기도 합니다.  

분명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었는데 아주 세밀히 들여다보면, 단조롭고 무료하다고만 생각하는 내 지루한 일상에도 '시' 같은, '소설' 같은, 그리고 '영화' 같은 작은 균열들이... 넘쳐나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는 거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들여다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일상의 그 많은 '예술' 같은 순간들을, 이 영화 '패터슨'은 그 지루해 보이는 패터슨 씨의 일주일을 통해 우리에게 슬며시 일깨워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혹시 이곳에 글을 쓰고 계신다고요?

시에 관한 이야기들, 책에 관한 이야기들, 그림과 음악, 반려동물, 결혼과 육아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이렇게 영화에 관한 이야기들 그 무엇이라도 여기 쓰고 계신다면...

우리 모두는 말입니다,

이미 패터슨 시의 23번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 씨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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