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 오늘 2...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결론: 차이와 반복' 읽기

by 별들의강


# '차이와 반복'을 결론부터 읽게 된 사정

뜬금없이 결론부터 읽는 이유는 들뢰즈의 제안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한 속사정은 이곳을 참조

... https://brunch.co.kr/@riverofstars/3


# 그래서 결론부터 읽었다

들뢰즈는 결론의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재현의 요구들에 종속되는 한에서 차이는 그 자체로 사유되지 않고, 또 사유될 수도 없다.”


말 그대로다. 재현에 종속되는 한 차이는 사유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차이’는 언제나 재현을 통해서만 사유되었다는 말인가? 그래서 ‘재현을 거부하는 차이’가 들뢰즈의 생각인가? 그는 왜 ‘차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독자는 궁금해지고, 아니 스트레스에 빠지고, 우리가 풀어야 할 열쇠말로 ‘재현’과 ‘차이’가 등장한다. 그런데, 재현(Representation)이란 무엇인가? 차이(Différence)는 또 무엇인가?


지금 읽는 ‘결론’의 장에는 ‘재현’과 ‘차이’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왜? 결론이니까. 앞에서 이미 언급했을 테니 결론에서 개념을 다시 설명할리 없다. 그렇다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이해부터 하고 읽어야 하나?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들뢰즈 철학은 개념을 해설하지 않는다. 발명한다.” 정말? 그런데 그런 사람이 들뢰즈뿐이랴. 데리다도 그렇고, 니체도 그런 것 같다. 어쩌면 어지간한 철학자들은 죄다 그런 듯하다.


앞쪽으로 넘어가 읽어도 친절한 안내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새로운 사유 방식으로서의 ‘차이’가 중요하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왜냐하면, 들뢰즈는 이렇게 적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차이 그 자체는 자신을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관계, 차이 나는 것이 차이 나는 것과 맺는 모든 관계를 배척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차이 그 자체’는 단순히 어떤 것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관계없이도 존재하는 게 ‘차이’라 밝힌다. 즉 ‘차이는 그 자체로 사유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차이’라는 개념의 정체가 살짝 잡힐 듯 다가오는데… ‘차이’란 A와 B를 비교함으로써 드러나는 다름이 아니라, A면 A, B면 B 그 자체로 드러나는 존재의 다름 정도로 읽힌다. 그러다 보니 이어지는 글들 역시 순수 차이를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도의 내용이 이어진다.


# 막무가내, 결론부터 읽는다는 것은

이처럼 아무 준비 없이 막무가내로 들뢰즈의 결론을 읽는다는 것은, 들뢰즈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들뢰즈적 어휘를 감각적으로 느낌으로써 그가 제공하는 낯선 문장들로부터 커다란 ‘사유의 충격’을 경험하고자 하는 의식적 행동이 아닐까? 읽음으로써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낯설기도 한 생소함, 먼 타국 내가 지금껏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오지를 걸으며 두려움과 신비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야릇한 기분, 그것이 들뢰즈를 읽는 나의 까닭이기도 하다.


덕분에 ‘결론에 오래 머무르지 말자’고 생각을 정리했다. 결론의 문장이 말하는 바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사건일 수 있다 하니, 이를 이해하려면 결국 앞으로 돌아가 차이와 반복과 재현이 어떻게 주제를 형성하는지 추적해야 한다. 그래서 결론은 설설 훑으며 읽었다.


사실,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사상을 압축시켜 유통하는 정보는 누구나 쉽게 구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보들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다.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존재란 재현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반복은 그 차이를 생성한다."


이 얼마나 간명한 정보인가. 그렇다면 나의 들뢰즈 읽기는 이 압축된 문장을 차근차근 풀어가며 정말 맞는지 추적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이 문장과 함께 앞서 살펴본 결론 부분 독해로 알 수 있는 것은 들뢰즈가 부수고자 하는 대상이 ‘재현 중심의 기존 철학’이고, 세우고자 하는 것은 ‘차이의 존재론’이라는 새로운 사유라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뼈대를 세우고 결론의 1절~5절(561~643)까지 인상적인 부분만 스케치하고 마무리해야겠다. 앞쪽 이야기가 무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 차이, 근거, 허상, 반복 또 반복

결론의 1절, 앞에서 살펴본 “차이는 언제나 재현의 요구들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뢰즈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로 느껴진다. 이러한 재현 철학은 사유의 네 가지 형식으로 차이를 항상 길들여 왔다. 들뢰즈는 이를 ‘4중의 가상’(동일성, 유사성, 대립, 유비)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구조는 ‘반복’마저 왜곡한다. 이로부터 들뢰즈는 차이 그 자체와 반복의 창조성 회복을 제안한다.


2절에 등장하는 ‘근거’의 개념 역시 차이를 지우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인상적인 대목은 들뢰즈가 차이를 아리아드네로 비유하는 장면이다. “이 자질, 그 지망의 대상이 바로 차이─약혼녀, 아리아드네─이다,”(580) 다만, 여기에서는 폭넓은 흐름 포착이 목적이므로 그렇다는 정도만 헤아리고 지나가자.


3절에서는 ‘허상(시뮬라크르)’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는데, 이는 ‘원본 없이 존재하는 복제’를 말한다. 그런데 “허상은 어떤 체계이고, 이 체계에서는 차이소(차이나는 것)가 차이 자체를 통해 차이소와 관계한다.”(590)고 하는데, 이를 풀이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즉 허상의 체계에서 차이는 차이를 통해서만 관계한다는 말인데, 들뢰즈는 ‘허상’을 진짜를 흉내 내는 가짜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보았나? 그 자세한 내막을 현재로서는 해독 불가.


4절에서 들뢰즈는 “반복을 재현의 대상으로 간주할 때 우리는 그 반복을 동일성을 통해 이해하고, 게다가 또한 부정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셈이다.”(606)라고 말하며, 전통 철학은 반복을 동일성의 재현(같은 것의 반복)이나 부정적인 것의 강화로 보았다고 비판한다. 들뢰즈는 4절을 통해 ‘반복’이라는 개념을 존재론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5절은 앞서 전개된 반복 개념이 계속 이어지고, 무엇보다 책의 마지막에 해당하므로, 이론상 들뢰즈 사상의 핵심 결론이 담겨 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주로 반복의 형식, 시간의 구조, 니체의 영원회귀, 존재의 일의성 등을 다루지만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정보는 없다. 다만 책의 마지막 문장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 여기며, 들여다봤는데 이렇다 할 인상적이거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어떤 내용도 없다. 다만 시적 비유에 해당하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그가 강조하는 ‘일의적 존재론’의 비유처럼 보인다.


“천 갈래로 길이 나 있는 모든 다양체들에 대해 단 하나의 똑같은 목소리가 있다. 모든 물방울들에 대해 단 하나의 똑같은 바다가 있고, 모든 존재자들에 대해 존재의 단일한 아우성이 있다.”(643)


이렇게 결론을 스치듯 읽었다. 서론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결론을 전체적 흐름만 쫓으며 살펴봤으니, 결론에서의 물음을 떠올리며 ‘서론’ 반복과 차이, 1절 반복과 일반성을 읽어 보자. 그런데 첫 문장부터 꼬인다. “반복은 일반성이 아니다.” 도대체 뭔 말이야?


20250712_103341_미끄러지지 않도록.jpg 들뢰즈에 미끄러지는 여름, 유유자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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