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위화가 세계 곳곳에서 했던 강연을 위해 준비한 원고를 묶은 글이다.
앞서 읽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역시 강연 원고였지만, 문어체 형식에다 주제도 명확해 메시지가 또렷했다.
그에 비해 이 책은 구어체이고, 글마다 단일 주제를 다루면서 내용도 일부 겹친다.
덕분에 읽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김없이 나타나는 위화의 묵직한 질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의 문장과 물음 앞에서 독자는 걸음을 멈춘다.
책의 말미에 나오는 밀라노 강연 원고 ‘사람을 안다는 것’이 특히 그랬다.
그래서인지 읽기를 마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다.
나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위화는 이렇게 말한다.
(287)
“저는 그저 사람이 무엇인지를 알뿐입니다”
라는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문학과 예술 속에서
이 문장의 함의를 담고 있는 수천수만의 사례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삶과 문학과 예술 속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한 마디.
그것은 사람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이다.
위화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이 말이 어떤 정의가 아니라 체험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를 지나왔다.
혁명의 광기 속에서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추악하고, 선량하고 잔악한지를 몸으로 목격했다.
(321)
“인성이 억압되고 말살되던 그 시대에
저는 수많은 불행을 목격했고 친구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갑자기 타도되는 상황을 수시로 경험했습니다.”
그 기억들은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 속 인물들로 이어지고
우리는 그들을 읽으며 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함께 느낀다.
문제는 위화가 완곡하게 말하는 ‘불행’이 이야기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는 그저 사람이 무엇인지를 알뿐입니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나치 시절 유대인을 숨겨준 한 농부였다.
왜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대인을 구해주었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유대인이 뭔지 모릅니다. 저는 그저 사람이 무엇인지를 알뿐입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이 말을 새겼다.
사람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잊지 않겠다는 듯이.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다시 끔찍한 불행을 목격하고 있다.
가해자는 다름아닌, 사람으로 살아남은 그들이었다.
슬슬 글을 마무리해야 겠다.
생각이 이어지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다.
그러자 책에 소개된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헤밍웨이가 그랬던 것처럼, 위화 역시
단편소설로 시작한 글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장편소설(허삼관 매혈기)이 되었다고 한다.
부럽기도 하고 격려가 되기도 하는 말이다.
한번 시작된 글은 그 끝을 모를 때가 종종있기에.
국내에 출판된 이 책의 제목은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다.
글쓰기를 기대하는 독자를 향한 제목이지만
위화가 이 책에서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을 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도 <나는 사람이 무엇인지 안다(我只知道人是什麽)>이다.
글쓰기와 사람을 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위화가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카프카의 자유가 아니라,
사람이 무엇인지 안다는 문학의 출발점이다.
문학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가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말한다.
글쓰기는 자신을 포함해 사람을 알아가는 일이라고.
위화는 우리에게 “훌륭한 독자” 되기를 요청한다.
훌륭한 독자는 누구보다도 사람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고,
사람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만이 좋은 작가가 된다고 말한다.
아래의 인용문을 읽어보자.
‘기회’가 되시는 분은 대화 끝에서 이어지는 셰프의 생각도 들어 보시라.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얻을 수도 있겠다.
(283)
여러 해 전에 저는 어느 셰프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가 제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나요?”
제가 대답했지요.
“좋은 작가가 되고 싶으면 먼저 훌륭한 독자가 되세요.”
그가 또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독자가 될 수 있나요?”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평범한 작품 말고 위대한 작품을 많이 읽으세요. 오랫동안 위대한 작품을 많이 읽은 사람은 취양과 교양의 수준이 높아져서 글을 쓸 때 자연히 스스로 아주 높은 기준을 요구하게 되지만, 오랫동안 평범한 작품만 읽은 사람은 취향과 교양 수준도 평범해져 자기도 모르게 평범한 글을 쓰게 되지요. 남들의 결점은 나와 무관하지만 남들의 장점은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