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 같은 독서 or 환승 연애

읽지 않은 책을 반납한 일에 대하여

by 별들의강


2월 한 달, 무라카미 하루키만 읽은 것 같다.

그럼에도 계속 읽고, 그의 소설에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무라카미 라디오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와

너무도 유명한 달리기 에세이,

그리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까지 집어 들었다.


균형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서 대출이 가능한 다섯 권의 마지막 한자리는 위화의 책으로 채웠다.

3월 11일 수요일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만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사>를 먼저 읽고 말았다.

그의 읽기와 쓰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읽기와 쓰기를 돌아보게 되었다.

자신의 독서가 곧 자신의 문학을 만든다는 대목에서는 눈이 번쩍 뜨였다.


안 되겠다.

갑자기 위화가 더 많이 생각나며,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마치 오랜 연인을 뒤로하고 새로운 설렘을 찾아 떠나는 바람둥이처럼,

어느새 마음이 위화에게 기울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독서의 역사’에서 아르헨티나의 한 작가를 인용하며 적은 문장이다.

망구엘이 적은 글과 차이가 있다면 나는 새로운 사람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키를 읽으며 위화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하루키의 담백한 일상에서 채우지 못한 뜨거운 갈망을 위화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의 그 작가는 이런 독서를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라 불렀다.

그런데 망구엘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보르헤스마저 이런 “간통 같은 독서”를 권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간통’이라기보다,

정중하고도 뜨거운 ‘환승연애’라 부르고 싶다.


문학과 음악의 달콤함으로 내 귓가에 소곤대는 위화의 목소리.

그 달달함에 취해,

‘빛보다 멀리 가는 사람의 목소리’에 빠져

그의 이야기를 하루라도 더 빨리 듣고 싶었다.


결국 일주일 만에 하루키를 반납하고 위화로 갈아탔다.

다시 만나 시작된 환승연애가 어느새 일주일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과 소설 <형제>를 만나려 한다.


그런데 그 끝에는 또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4월의 끝자락에는 또 누구를 만나게 될까.


"서른여섯 살이 되던 해의 그날 저녁 나에게 루쉰은 마침내 하나의 단어에서 하나의 작가로 돌아왔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그 긴 세월 동안 억지로 루쉰의 작품을 읽어야 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루쉰이 아이들의 작가가 아니라 성숙하고 민감한 독자들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때때로 한 독자와 한 작가의 진정한 만남에는 어떤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82)


만남,

하나의 단어에서 하나의 작가로 돌아오는 순간.

하나의 단어가 한 사람의 작가로 들어서는 순간.

그렇게 만남이 순간으로 이뤄진다고 하면

그 순간을 위해 어떤 "기회"가 필요한 걸까.


“한 사람과 한 단어의 진정한 만남에 기회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내 말 뜻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생에서 수많은 단어를 만나지만 어떤 단어들은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데 비해 어떤 단어는 평생을 함께 지내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36)



빛보다 멀리 가는 사람, 그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