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와 스트랙에게

타월

by 별들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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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중복. 서해랑길 55코스 지킴이 활동이 있는 날이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 활동을 시작하는 장항 도선장까지 가는 버스 편이 애매하고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무작정 기다릴 수 있어 조금이라도 일찍 타는 곳에 있어야 했다. 정신없이 한참을 가는 데 생각 하나가 번뜩 스친다. 타월은 챙겼어?


가장 중요한 타월을 두고 나왔다. 타월은 폭염 속 지킴이 활동에 필수품이다. 지난 몇 번의 사용으로 효용성이 충분히 검증되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고, 자외선에 노출되는 목덜미를 가리고, 벤치에 누워 베개로 쓰거나 중요 부위를 가릴 수 있다. 꼭 필요한 물건이라 집으로 되돌아갈까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멀리 왔다.


앞에 할인 마트가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니 타월이 있단다. 작아서 아쉬웠지만 결국 4800원을 주고 한 장을 구입했다.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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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애덤스의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떠올랐다.


‘타월은 우주를 여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물건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웃음부터 나왔다. 애덤스가 그리는 우주는 예측 불가능하고 부조리하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가 멸망하는데 그 이유가 새로운 초공간 고속도로 건설 때문이란다. 책은 이처럼 황당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래도 그렇지,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의 “최고 쓸모 있는” 장비가 타월이라니. 시간 여행, 첨단 무기, 생명 유지 장치도 아닌 평범한 타월이라니. 애덤스가 내놓은 목욕 수건이 허무맹랑해 보였다.


애덤스는 농담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타월이 왜 필수품인지를 설명하며 독자를 설득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걸 보면 애덤스의 의도는 성공했다)


“차가운 달들 사이를 여행할 때는 몸에 둘러서 보온용으로 쓸 수 있다. 산트라기누스 5호 행성의 눈부신 대리석 모래 해변에서는 타월을 깔고 누워, 머리를 어질하게 하는 그 바다 수증기를 들이마실 수도 있다. 카크라푼 행성의 사막에서는 불타는 듯 반짝이는 별들 아래서 덮고 잘 수도 있다. 느리고 둔중한 모스 강을 따라 조그마한 뗏목을 타고 여행할 때는 돛으로 사용하라. 맨주먹싸움이 붙으면 적셔서 사용하라….”


타월이 몸을 말리고, 담요가 되고, 무기가 되고, 신호기가 된다니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타월을 챙긴 사람’은 준비성이 뛰어나고, ‘자기 타월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어딜 가나 대접받을 만큼 믿음이 가는 존재다. 그런 사람이라야 이 거친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애덤스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실용적이고, 동시에 상징적으로 ‘타월’을 말한다.


그제야 알겠다. 이건 우주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지구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역시, 은하 규모만큼은 아니더라도 꽤나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한 혼돈 속에서 가장 필요한 건, 모든 걸 완벽히 갖춘 장비가 아니라, 작고 평범한 무언가 일지도 모른다. 그가 만든 ‘타월의 중요성’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거대한 모험 속에서도 삶을 버티게 하는 건 의외로 사소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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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시지를 좀 더 밀고 가보자. 사실 우리는 은하수가 아니라 지구를 떠도는 히치하이커다. 목적지는 희미하고, 경로는 늘 수정되며, 예상치 못한 정거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등장한다. 이 불확실한 여정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화려한 장비가 아니라, 아무리 길이 엉켜도 나를 잃지 않게 해 줄 ‘타월’과 같은 필수품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나는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묻는 마음이기도 하다. 애덤스의 농담을 빌려, 우리가 찾으려 하는 것은 ‘나의 진지한 생존 메시지’ 인지도 모른다. 이제 이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나의 타월은 무엇인가?”


애덤스의 충고에 따라 나 역시 우선은 큼지막하고 도톰한 목욕 수건 하나 장만해야겠다. 실제로 타월은 내 일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탁구장에서 타월은 없어서는 안 될 최고로 쓸모 있는 기본 품목이고, 샤워부터 설거지에 이르도록 하루 종일 손 가까이에 머무는 중요한 생필품이다.


이때의 ‘타월’은 애덤스의 숨겨놓은 의도까지 품어야 진가가 발휘된다. 그가 타월을 꼽은 이유는 아무리 평범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어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단순히 물을 닦는 천조각을 어느 때는 담요로, 밧줄로, 깃발로, 돛으로, 무기로도 자유롭게 변형시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 위기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으며 그에 딱 맞는 용도를 발견해 내는 유연함과 기발함, 부조리한 상황조차 웃어넘길 줄 아는 여유와 유머가 있어야 타월의 진정한 소유자라 할 수 있다. 애덤스는 도구 보다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타월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아이덴티티처럼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은 ‘타월’이 아무리 실용적으로 뛰어나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의 필수품이라는 것이다. 타월은 메가도도 출판사(어사 마이너 베타 행성에 위치)가 “무한하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우주 속에서 인생을 이해해 보고자 애쓰는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지침서”로 출판한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적혀 있는 한 항목이다. 모두에게 권장되는, 기본 장비라는 것이다.


우주가 아니라 지구별을 여행하는 여행자에게는 어떤 게 적합할까. 히치하이커가 아닌 “스트랙”(히치하이커가 아닌 사람)은 또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 표준화되고 보편적인 모두의 것이 아닌, ‘나만의 타월’은 무엇일까.


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매일 쓰는 다이어리와 펜, 항상 챙기는 이어폰과 음악 플레이리스트, 혹은 오래된 노트, 여행용 낡은 가방, 텀블러, 신용카드, 작은 액세서리 등이 있겠다. 물건 자체의 물리적 기능보다, 그 물건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높은 것을 ‘나의 타월’로 꼽을 것이다. 애덤스도 “타월에는 엄청나게 폭넓은 심리학적 가치가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나의 타월은 무엇일까? 앞서 밝힌 ‘타월’ 말고도 또 다른 타월을 말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타월이 주는 만능성보다, 그것을 통해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그것이 사람이거나 습관이거나 물건일 수 있다. 혹은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나의 타월은 혼란과 고통 속에서도 나를 ‘원래 자리’로 소환하는 매개체여야 한다. 또한, 길을 잘못 들고, 우회하고, 넘어지고, 잃더라도, 어디서든 나 다운 하루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한 지점이어야 한다. 여정에서 내가 사라지지 않도록 불을 밝혀주는 등대, 어떤 혼돈 속에서도 내가 있는 곳을 표시하는 여행자의 북극성 같은 존재여야 한다.


‘월명 공원’이 그런 곳이다. 생각이 복잡하고, 머리는 무겁고, 눈이 침침하면 넓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깊고 푸른 이 숲을 찾는다. 이곳에서 잠시 길을 잃으며 다시 돌아갈 지점을 찾는다.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닌데, 어느 날 자연스럽게 인식된 곳. 너무 커서 가지고 다니지는 못하지만 항상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나의 여정에 나침반이 되는 장소. 언제 어디서나 마음 든든한 최고 높이 139m의 아담한 이 공원. 더군다나 모두의 것이라는 보편성에서 나 만의 것을 뽑아낼 수 있는 은밀함까지 갖춘 점.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오래될수록 더 빛을 발할 것이라는 변치않고 흔치않은 사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지만 모두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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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타월은 무엇인가? 여행자의 타월은 꼭 천 조각일 필요가 없다. 때로는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줄 사람, 나를 세계와 연결해 주는 작은 루틴, 나를 기억나게 하는 장소처럼 형태가 없는 것도 나를 덮어주고 지켜주는 도구가 된다.


어쩌면 이 거칠고 불확실한 행성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덧없고, 잔인하고, 어리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헤르만 헤세) 우리네 삶을 보다 더 잘 살아내는 방법은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모험 속에서도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타월'을 챙겨라. 당신만의 타월을. 그 타월이 어디에 있는지 자주 확인하라.


이제 당신은 타월을 가진 사람, 타월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여러분이 히치하이커가 아닌 스트랙이라 해도 이 험한 행성을 여행하려면 한 번쯤 ‘타월’을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명심하자.


Don’t panic.

타월을 챙겨라.

나머지는 길 위에서.


“타월이란 행성 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지닐 수 있는 물건 중 최고로 쓸모 있는 것이다.”

-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0250730_090016.jpg 서해랑길 55코스 지킴이 활동 ... 타월을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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