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읽는 일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읽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읽는 일이다.
읽는 다는 것은 단지 책장을 넘기는 일이 아니다. 보는 일이고, 생각하는 일이며, 표현하는 일이다.
세상을 바라보되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보여 지는 것의 이면을 보는 것,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이다. 생각하는 일이다. 분주한 일상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잠시 물러나 돌이켜 보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다. 표현하는 일이다. 보고 생각한 것을 글로 옮기고, 느낌과 판단을 나누며,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조심스럽게 행동으로 옮기는 일. 관찰하고 사유하고, 표현하는 전 과정이 읽기다.
한 청년이 괴테와 대화를 나눴다. 괴테는 청년에게 진정으로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하나에 집중하라고 들려준다. 그러면서 자신은 생애 동안 너무 많은 일에 관심을 두었다고 털어놓는다. 청년은 궁금했다. 단 하나의 길을 말하던 사람이, 어째서 그렇게 많은 영역에 정력을 쏟았던가.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그는 어떻게 대작을 만들 수 있었을까. 청년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괴테는 태어날 때부터 두 가지 유산을 품고 있었다. “오류”와 “불충분성.” 그것을 보완하고자, 그는 평생에 걸쳐 다방면으로 분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괴테와의 대화』에서 괴테는 그 유산의 중요성을 반복해 말한다. 그에 따르면, 개인이 받은 유산은 무언가를 바꾸고 새롭게 만들 수 있는 힘의 근거다. 오류와 불충분성은 단점이 아니라 창조의 원천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읽고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독자적인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아가는 무대는, 또 다른 의미의 유산—오류와 불완전성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무대는 스스로가 읽어야 할 역사이고, 그 위에서 써 내려갈 자신의 기록이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청춘은 누구를 통해 배울 수 있을까. 누구에게 물음의 답을 구할 것인가. 위대한 스승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존경하는 선생을 만나며 알 수 있다. 지혜로운 선배와 친구가 길잡이 할 수 있다. 그리고 단단한 책이 그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다. 책은 타인을 통해 나를 보게 하고, 세상을 통과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책은 우리를 읽게 한다. 보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을 길러준다. 읽기는 청춘의 무기다. 세상을 해석하고, 자기만의 결을 만드는 능력이다.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쓰는 사람에 따라 한 자루의 칼은 명검이 되기도 하고 쇠붙이에 불과할 수 있다. 칼을 다루는 칼잡이가 검법을 배우듯이 책을 다루는 독자라면 독법(讀法)을 익혀야 한다. 나와 세상을 읽으려면 독법을 터득해야 한다.
읽기의 기술은 자신과 세계를 잇는 통로다. 그 기술은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익혀야 하는 일이다. 추상적 상징 언어가 힘을 발휘하는 세상, 고도로 발달한 정보지식 사회에서 독법은 매우 중요하다. 그 상징과 정보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늘 엉뚱한 곳에 이른다.
청춘의 무기는 밑줄로 다듬어진다. 책을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책에 남기는 밑줄을 안다. 밑줄은 책 속에 숨어있는 가느다란 하나의 줄이 아니라 주목한 문장을 몸에 새기는 의식이다. 밑줄은 질문이고, 해석이고, 삶의 지도를 만드는 선이다. 혹은 청춘이 써야 할 칼이고, 방패고, 전사의 눈이다.
가느다란 줄 하나를 양 옆으로 잡아당기면 끊어진다. 그러나 그 줄을 겹겹이 쌓아 여러 뭉치로 만들면 끊어지지 않는다. 그 줄을 연결(connection)하고 조합(combination)하면 새로운 ‘무엇’을 창조(creation)할 수 있다. 그 무엇을 만들 수 있는 밑줄이 청춘의 밑천이다. 밑줄은 비비꼬인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고 단서고 유레카다. 전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새로운 눈이고 꿰뚫어 보는 안목이다.
단련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청춘의 시간은 그에 가장 적합한 시기다. 그 시간을 ‘그럭저럭’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이 책은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그리고, 그 시기를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나는 강단에서 만난 이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질문을 멈추지 않던 얼굴, 박수와 환호 속에서도 맑았던 시선들. 그들이 품은 에너지와 가능성을 지면 위에 다시 남겨보고 싶었다. 읽기에는 삶을 바꾸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읽었던 책, 밑줄 그은 문장, 그 문장을 통해 다시 적어 내려간 하루. 그 반복이 새로운 나를 만든다.
강진에 귀양 살았던 정약용. 그의 아들이 받은 유산이라곤 망해버린 가문, 벼슬했던 집안의 자제가 만난 재난이었다. 정약용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너야말로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난 것이다.”
읽기에 때가 있다면, 지금이 그때다. 그대의 읽기가 문장에 머물지 않고, 삶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15년 3월에 낸 『언더라인』의 프롤로그를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2025년 12월 5일 일부 내용 다시 교정
-'언더라인'의 기대 독자층은 '2초3초(20대초~30대초)'이고 '청춘'입니다.
* 청춘靑春
과거에는 10대 후반~20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시절을 이르는 말이었다. 지금은 교육의 장기화, 취업 지연, 결혼·출산의 늦춤 혹은 포기가 일상화되면서, ‘청춘의 시기’가 30대 초반까지 연장되었다. 여기에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생각이 만드는 것"이라는 진단까지 등장한다. 결국, 청춘이란 나이보다 ‘미완의 가능성’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