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왜 행복을 의심했을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1장, 7절 읽는 중 II

by 별들의강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1장, 7절 읽는 중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고 기술이다.

감사 일기를 쓰고, 명상을 연습하며, 긍정적 사고를 훈련하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Mindfulness)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불안도 내려놓고 현재의 감각과 경험에 집중하라.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자아실현과 삶의 목적 찾기를 병행하라.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바람직한 삶을 이룰 수 있게끔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 바로 ‘목적’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에 눈을 뜰 수 있게 해주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어야만 당신이 원하는 바람직한 삶을 향해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리처드 J. 라이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46쪽)


행복은 과학이고 데이터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분비량,

국가별 행복 지수(GNH)와 삶의 만족도를 점검하라.


틀린 말이 있는가?

없다.

그래서 문제다.


오늘날의 행복 담론은 사회 곳곳에 넘쳐난다.

더 이상 개인의 바람에 그치지 않는다.

단순히 '기분 좋은 상태'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의무이자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무수한 자책을 쏟아낸다.

노력이 부족했을까, 훈련이 덜 되었을까, 목표 설정이 잘못되었을까.

세상에 널리 퍼진 행복 지상주의는

어느덧 우리를 거세게 내리누르는 새로운 압박이 되었다.


인간을 불행으로부터 구출해 내려는 이들 메시지의 뿌리는 아주 깊다.


20세기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과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

현세의 행복을 인간의 당연한 권리로 선언한 계몽주의와 공리주의,

에우다이모니아를 역설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니체는 이 거대한 흐름의 기원을 ‘소크라테스 학파’로 지목했다.

그가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학문의 질서를 어지럽힌 장본인이었다.

소크라테스 이후로 철학은

“어떤 삶이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학문의 중심에 놓았다.

그 결과, 학문은 탐구가 아니라 설계가 되었고, 삶은 개선의 대상이 되었다.


“학문에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 삶의 인식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철학은 학문에서 분리되었다. 이 문제는 소크라테스 학파에서 시작된다: 행복이라는 관점에 의하여 학문 연구의 혈관들은 제한을 받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제한받고 있는 것이다.”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권 1장 7절)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세상.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소크라테스적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과학기술, 법적 보호는

모두 소크라테스 학파가 닦아놓은 이성적 질서 위에서 작동한다.

그 질서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 바로 ‘행복 철학’이다.


니체가 이토록 “철학과 학문의 행복화”를 비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두 권의 책으로 대신할 수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그곳의 사람들은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마다

부작용 없는 마약 '소마'를 삼키며 즉각적인 쾌락을 얻는다.

소설은 경고한다.

고통이 제거된 상태는 행복이 아니라, 인간성의 실종이라고.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안티프래질>.

탈레브의 시각에서 현대의 행복 담론은

삶의 가변성과 고통을 인위적으로 거세하려는 ‘과잉보호’에 불과하다.

세균 없는 방에서 자란 아이의 면역 체계가 무너지듯,

고통이 제거된 행복 담론 속에서 인간 정신은

아주 작은 불운에도 박살 나는 ‘유리잔(Fragile)’이 된다.


현대 행복 담론의 핵심은 '고통의 제거'에 있다.

그러나 니체에게 고통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자기 극복’을 위한 필수 재료였다.

고통이라는 배경이 사라질 때, 그 위에 그려질 기쁨의 형체 또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의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아니다.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삶에 고통이란 무엇인가?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지금은

소크라테스적 '인식'과 '논리'가 그때보다(혹은 니체 시대보다)

수만 배 더 강력해진 '초(超)이성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7절' 읽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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