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쓰고 나니 더 이상 적을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껌뻑이는 커서만 한참을 들여다본다.
정말 쓸 이야기가 없지만, 그래도 써야 한다.
특별한 이야기만 붙잡다 보면 버릇처럼 특별한 일만 기다리게 된다.
평범하고 평범해서 너무 지루한 하루라 해도,
딱 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훤히 보이는 날이라 해도,
검색창에 걸릴 키워드 하나 없는 그렇고 그런 오늘이라 해도,
그런 날들에게도 자신을 드러낼 기회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전 같았으면
오늘 하루도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 끝!
이러고 후다닥 노트북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 몰라 조금 더 버텨 본다.
머리를 쥐어짜며 몇 줄 더 밀어붙이다 보면
글감도 떠오르고 구성도 떠오를 수 있다.
이쯤 되니 한 남자가 등장한다.
내 기억이 주로 최근 것을 중심으로 작동하다 보니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저자가 생각났을 것이다.
그는 꽤나 성깔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원고료를 주지 않는 글은 절대 쓰지 않았다고 한다.
나처럼 원고료도 없는 글을 쓰거나
애드 포스트와 응원금 같은 불확실한 보상에 기대어
문장을 생산하는 플랫폼 노동자 처지와는
애초에 성격이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그래서 부럽기도 하고, 어딘가 불편하기도 하다.
그런 그의 생각을 옮겨봤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101쪽)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묘한 기분이 스친다.
나도 저래야지.
암,
그리되고 말 테야.
그런데 언제...
하며 책을 읽는 중이다.
이 남자의 책을 잔뜩(그래봐야 5권) 빌려왔다.
연휴라고 남들처럼 쭈욱 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이 많은 책을 언제 읽을지 한숨부터 나오지만
쓰다 보면 또 쓰는 것처럼
읽다 보면 또 읽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사람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이 사람은 소설가로 더 유명한데 말이다.
내가 게으른 탓도 있지만 픽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개인 취향도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의심할만하다.
말이 안 된다.
사랑이니, 행복이니, 민주니, 부자니 하며 허구의 세상이 건네는 꿈을 좇으며
허구가 내 취향이 아니라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또한 정직한 표현이 아니다.
그래서 픽션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 사람의 소설을 읽기 힘든 것은, 다 시간 때문이라고.
없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혹은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다고.
나는 그의 소설보다 산문이 더 편하다.
일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독해가 재밌다.
그가 내린 소설가에 대한 직업적 정의도 마음에 든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를 클릭)
https://blog.naver.com/riverofstars/220715462342
이 블로그 글을 읽어보니
“그의 소설을 틈틈이 읽어야겠다”라고
말한 게 벌써 10년이 되어 간다.
그러니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제목은
오늘도 “고백할까요? 사과할까요?”가 맞겠다.
그런데 이런 차이는 어디에 속할까.
그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나의 다짐과 생각은 “그럼에도 끝까지 걸었다”라는 것이다.
간혹 유명 레시피를 따라 하게 되겠지만,
결국 삶은 각자의 부엌에서 조리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쨌든 내 방식으로 계속 요리하는 수밖에 없다.
설 연휴다.
특별한 명절도, 특별한 하루도 없을 듯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늘 특별하지 않은 날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삶 아니겠는가.
별다른 일 없이 반복되는 날들,
그 틈에서 문득 다른 빛을 띠는 순간들.
어쩌면 바로 그날이 오늘일지도 모른다.
마침 설 특집 TV영화도 예전만 못하니,
남는 시간 족족 책이나 읽어야겠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하루키의 1983년~87년 글을 담았다. 원제 Collection of Ess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