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만능주의 불량 환자의 가설
한 일주일 전부터 오른쪽 팔이 저렸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화요일쯤부터는 노골적으로 저려서 병원에 가야겠다 싶었다. 저리다는 것은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 힘이 빠지는 느낌, 징-하는 느낌, 팔에서 현기증 나는 느낌이다. 현대인답게, 불안해진 나는 제일 먼저 인터넷으로 '오른팔 저림 원인'을 검색했다. 포털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나는 아주 전형적인 목디스크 환자였다. 그래서 다음날 고민할 것도 없이 정형외과로 향했다.
두 군데를 갔지만 모두 엑스레이에 경미한 거북목 증상 외엔 이상 소견이 없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목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봐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지나치게 유연해 멋쩍었다. 증상만 들어서는 디스크긴 한데, 일단 물리치료를 받고 경과를 보자고 했다. 그래서 꿀렁꿀렁 물리치료를 받고 나왔다. 그나저나 나는 물리치료를 좋아한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낮잠을 허락할 수 있는 시간.
그런데 별 차도가 없는 거다. 처방해 준 근육 이완제도 꼬박꼬박 먹었는데. 왠지 느낌상 이게 그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직감에...지금 현재 이 팔 저림 외에 불편한 또 다른 곳....... 위장과 대장. 무언가 이 팔저림과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소화기 영역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또 현대인 답게 '팔저림 소화'를 검색했다. 놀랍게도 소화 불량이 팔저림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포스팅이 있었다. 복붙을 제외하고 무려 두 개나 봤다.
그래서 또 현대인답게 가설의 셀프 검증을 시작했다. 우선 변비약을 먹고 며칠 묵은 노폐물을 비웠다. 그리고 내과에 가서 위장약을 받아 왔다. 생각해 보니까 요즘 식사가 정말 불규칙했다. 무언가를 먹으면현기증이 나거나 숨이 가쁠 때도 있었다. 머리에 가야 할 산소가 위장에 투입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 바쁜 위장이 오른팔에 가야 할 산소를 동원했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을까? 내과 선생님께 물어 봤다. "소화가 안 돼서 팔이 저릴 수도 있나요?" "음... 전혀 관계 없는데요." 저리다는 것은 신경이 눌렸다는 것이다, 그럼 정형외과, 순환기과 등이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내과에서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다,고 하셨다. 아 뉘예뉘예. 전문의의 말이 나의 견고한 가설을 죽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처방받은 위장약을 털어 넣었다.
식후 30분, 끼니 두 번.
그리고 지금 팔저림 현상이 사라졌다.
...아래와 같은 것을 느꼈다.
- 팔저림 현상은 분명히 있었고, 지금은 분명히 없다. 다시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지금은 없다. 만약 정말 팔저림 현상이 사라진 것이라면, 정말 소화가 안 돼 팔이 저릴 수 있다면, 놀랍지 않은가? 이 인체의 유기성이라는 것이? 이전에 일생 최악의 두통을 겪으며 원인을 몰라 내과,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순환기과를 다 들렀던 적이 있다. 결론은 축농증이었다. 인체의 경이로움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 병원 오기 전에 인터넷 정보 잔뜩 보고 자가 진단 내리는 환자들, 내가 아주 그 위험한 환자였다.
...성공적이지 않았나?
...그래도 저의 경험은 가능성으로만 염두에 두시는 게 좋겠네요. 두통이 심하면 코와 관계될 수 있구요, 근육이 경직돼도 두통이 올 수 있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팔이 저리다면, 소화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확률로, 아닐 수도 있습니다.
- 그나저나 장내 건강은 참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이번 여름 우리 집에 에어컨이 없어 아주 생고생을 했는데, 이번 폭염이 내게 안겨준 것 중 하나가 바로 역대 최악의 변비였다. 검색해보니 원래 여름에 변비 환자가 늘어난다고 한다. 땀을 많이 흘려서 몸에 수분이 부족해지고, 변이 딱딱해진다고. 나는 물을 하루에 4L를 마시는 인간이지만 이번 여름에 내 땀샘의 능력을 재발견했다. 내 몸의 항상성은 유지하였으나 대장에겐 유감스럽게 됐다. 나는 이 후로 내 몸의 무언가 잘못 된다면 이 역대급 변비가 분명히 기여한 바가 있을 거라고 보았다.
- 위장에서 대장까지, 소화가 잘 되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장 신경계는 우리 몸의 '제 2의 뇌'라고도 하지 않는가. 소화가 저 사이 어디선가 막히면 만사가 짜증나고 우울해지며 분노조절장애가 찾아온다. 대장에서 막히면 분명히 위장의 기능도 떨어진다. [쇠약해진 위장이 꿀렁대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 했고, 그래서 내 오른팔 혈관의 산소까지 끌어왔다, 그래서 팔이 저렸던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가설이었고, 결론이다. 새로 산 아이폰이 이전 폰보다 무거워 팔에 무리가 온 것일 수도 있다. 요가에서 조금 어려운 동작을 했던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작용했을 수도 있다. 모르겠다. 아무튼 나의 ‘직감’엔 문제의 연쇄작용 어딘가에 변비가 개입돼 있다.
...의학에 조예가 있으신 분. 제 말의 헛소리를 지적해 주세요. 모두를 살리는 길입니다.
p.s. 팔 저림 증상과 변비의 관계에 대해 아주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네요. 명료한 대답을 기대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이 글을 클릭하셨을 분들께 심심한 위로와 깊은 공감의 뜻을 전합니다. 꼭 전문가의 소견을 들으시고, 팔 저림과 변비 두루에 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