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놓고 말해서. 그리고 이 편이 나아
(내가 사람 대하는 것을 조금만 더 편하게 여겼어도 산다는 게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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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낯선 사람과 몇 마디 주고받는 것이 가까운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것보다 더 편하다.
내가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이 정말 나와 가까운가? 말하자면, 나는 이 친구에게 정말 믿고 내 가장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가? (나는 이게 특히 어려운데)과연 나는 이 사람에게 내가 지금 너무 화가 나서 화가 났다고, 내가 지금 정말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다고 지금 당장 전화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사람의 이야기가 정말 궁금한가? 이 사람의 행복과 불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긴 하는가? 그리고 나의 행복과 불행에, 나의 이야기에 이 사람이 정말 관심 있기는 한 건가?
관계에서 오는 피로의 상당 부분이,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을 가깝다고 여기는 데서 오는 것 같다. 관성이 작용했을 것이고, 오랜 도식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왔을 것이다. 그러면서 가까운 관계라면 응당 해야 할 것만 같은 것들을 한다. 굳이 할 필요 없는 내 얘기를 하고, 딱히 관심 없는 그의 얘기를 들어준다. 나의 영혼 없음을 감추기 위해 한 마디 할 걸 괜히 두 마디 하고서, 내가 들인 노력만큼이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 한 마디 더 한 게 아깝고 분하다.
이게 무슨 낭비인가. 그냥 가깝지 않은 것을 가깝지 않다고 인정하면 될 것을. 문제는 관계의 성격을 나 혼자 규정할 수 없다는 거다. 내가 어느 날, '아. 난 얘랑 가깝지 않아.' 하고 깨달았다고 해서 갑자기 한 발짝 물러나 소원히 굴면 상대방이 왜 저러지 하지 않겠는가? 그럼 '무슨 일 있어?'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든가, 더 불편하게는 서로 말없이 눈치 보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속한 무리의 친구들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지하는 데도 에너지가 들고, 떼어내는 데도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차라리 아예 생면부지 처음 만나는 사람과 서로 자기소개하는 시간이 더 편하다는 거다. 아니면 업무 동료처럼, 가깝지 않은 게 으레 당연하게 생각되는 관계에서 깔끔하게 일 구상을 하든가. 그냥 대놓고 먼 관계가, 가까운 척 먼 관계보다 훨씬 진실되고,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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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다, 들어주다, 도와주다. 주다, 주다, 주다.
내가 재미없는 상대방 얘기를 들으며 과잉 리액션을 '해 준' 것은 내 마음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서였다. 내가 친구의 생일을 '챙겨 준' 것은 '친한' 친구로서 도리를 하는 데서 오는 나 자신에 대한 만족감, 그리고 우리 인간 종족이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대개 본능적으로 느끼는 따뜻함 같은 보상이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를 위해 뭘 되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고선 그걸 몰라준다는 둥, 다 소용없다는 둥, 볼멘소리 할 것 하나 없다. 따지고 보면 그리 해 준 것도 없다. 해준 걸 일일이 머리로 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해준 게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리고 딱, 한 만큼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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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왜 찾나?
상대 위해서 찾나?
다 자기 외롭고 심심해서 찾는 거지.
나는 ‘위해서’란 말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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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주 먼 관계가 더 좋아서 내가 이렇게 여기에 글을 쓰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