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싫단 얘기입니다
극복하기엔 굳이 다시 할 의사가 없어 극복이 요원한 어떤 무서운 것이 있다. 내겐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물에서 수영하는 것이 그것이다.
일단 나는 수영을 잘 못한다. 유년 시절 어째서인지 물에 뜰 수는 있게 됐고, 또 어떤 경위로 깊지 않은 수영장 25m 레인에서 쉬지 않고 끝까지 갈 수도 있게 됐다. 무학(無學)의 헤엄인. 유능한 참수영인이 몸을 수평(ㅡ)으로 하여 이동한다면, 나는 아마 몸을 사선(/)으로 하여 움직이는 듯 하다. 물의 저항을 온 몸으로 들이받으며 에너지를 탕진하기 때문에, 한 번 끝까지 가고 나면 다시 돌아올 힘과 용기를 회복하기까지 한참 걸린다. 또 너무 오래 쉬면 의지가 아주 꺾여 버릴 수 있으므로 적당히 쉬고 되돌아와야 한다.
가장 난해한 건 호흡이다. 어떻게들 수영하면서 숨을 쉬는지 모르겠다. 난 숨 좀 쉬겠다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왼쪽으로 푸욱 꺼지니 말이다. 내가 한 번 호흡할 때 들이 마실 수 있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찰나(刹那)는 75분의 1초, 즉 약 0.013초에 해당한다.
제일 신기한 것은 자유수영하는 노인 여성들이다. 그분들의 수영은 과연 예술이다. 까만 수영복에 까만 수영모, 까만 물안경을 끼고, 인생 서두를 거 뭐 있나, 고개를 도리- 도리, 팔을 쉬-익 쉬-익 몇번 저으면 신선마냥 어느새 반대편에 가 서 계시다. 족히 열 번은 왕복하신 것 같은데도 얼굴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하여간에 나도 옆에서 죽어라 첨벙 대면 반대편까지 갈 수는 있단 말이다.
그런데 수심이 2m가 넘어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물 속에서 내 시야에 들어오는 수영장 바닥의 음영이 달라지면서부터 공포는 시작된다. 파워에이드가 돌연 남태평양 네이비가 되면서 바닥의 타일이 사라진다. 몸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일단 레인 줄에 바짝 붙고,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한다. 괜찮아. 안 죽어. 밖에 안전 요원 다 있어. 그런데 생각을 하니 숨이 차는 것 같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적막하고 먹먹한 물 속에서 홀로 의식의 늪에 빠져 숨소리는 점점 크고 불안정해진다. 저 멀리 아득히 끝이 보이는 것도 같은데 바닥이 지독히 아득하다. 앞만 보고 가자. 지금부터 팔을 딱 다섯 세트만 더 움직이자. 그런데 다짐이란 것을 하니 숨이 더 차다. 다짐하지 말자, 그냥 편하게 가자, 하고 다짐하는 가운데 더욱더 불편해지고… 숨은 머리 끝까지 차서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아냐, 끝까지 가자는 것도 아니고 고작 다섯 세트 더 가자는 건데. 그거 지금 못하면 나 자신에게 지는 거야. 그럼 앞으로, 영원히,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거야.' 새로운 공포다. 돌이킬 수 없는 루저가 되는 건 죽는 것 보다 무섭기에, 결국 남은 에너지를 쥐어 짜내서 다섯 세트를 간다. 그리고 혼자 조난당한 사람처럼 꼴깍대며 황급히 레인에 매달린다.
부족했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 쉬고서, 내가 지나온 거리와 남은 거리를 재어 본다. 남은 거리가 더 길다. 나는 이미 마지막 다섯 세트를 저으면서 하얗게 불태웠는데, 나머지를 갈 엄두가 안 난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다. 여기서 이 줄을 내려 놓으면 까마득한 해저로 가라 앉는다. 떠서, 헤엄쳐서, 되돌아가든지, 앞으로 계속 나아 가든지 둘 중 하나다.
결과적으론 항상 마저 가기를 선택했지만, 이렇게 한 번 중간에서 쉬고 나면 이후에 쉬는 구간이 점점 짧아진다. 절반에 와서 쉬었다면, 그 다음은 반의 반을 더 가 쉬고, 그 다음은 반의 반의 반만큼을 더 가 쉬어 줘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끝에 도달했을 때 기쁜가 하면, 그냥 집에 가고 싶을 뿐이다. 이 날 이후로 나는 수영장에 다시 가지 않았다.
이상, 이번 학기 학교 생활 하는 내 마음이 딱 이 수심 2m 에서 수영하는 마음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다. 학기가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심리적, 육체적 남태평양이 도래했고, 오로지 지난 추석 연휴만을 바라보며 꾸역꾸역 5일만 참자, 3일만 참자 했던 것이다. 줄을 잡고, 얼굴을 내 놓고, 잠시 숨을 좀 쉬려나 했는데 연휴가 끝났다. 쉴 힘도 쉬어야 난다고 하면 공감하실는지? 하던 것을 작정하고 멈추는 것도 에너지가 드는 일이잖습니까(뉴턴의 운동 제1법칙).
방학까지 앞으로 남은 날은 지나온 날 보다 훨씬 많다. 일단 내일 모레 개천절이 있다. 아주 잠깐 얼굴을 내어 놓겠지. 그리고 이후로는 아무 것도 없다. 잡고 쉬어 갈 줄이 끊긴다. 정말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