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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이 잘못했네.

내 생애 첫 실존주의적 공포에 관한 이야기

by 리미아

빨래를 널었다.


날이 흐리다.


대여섯살의 나는 '나만의 공간'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었다. 주로 작고, 좁고, 어두운 곳을 나의 공간으로 삼았다.


가장 훌륭한 아지트는 이불 빨래가 널린 빨래 건조대 아래였다. 외할머니가 실내에 빨래 건조대 양 날개 위로 커다란 이불 겉감을 널어 놓으면, 그 천막 속 작은 공간은 내 작은 한 몸이 앉고 눕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바닥에 담요를 길게 깔고 큰 대 자 가랑이 사이에 웅크려 앉으면 사방으로 축축한 하얀 커튼이 거의 바닥까지 닿아 있었고, 그 밑으로 가끔씩 지나다니는 외할머니의 발이 살짝살짝 보였다.


보통 오후 시간엔 집에 외할머니와 나 단 둘이라 조용했다. 할머니는 주로 낮잠을 주무셨다. 큰 빨래를 널어 놓는 날은 자주 오지 않았다. 개기 일식 같은 사건.


이 공간이 가장 아름다운 건,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의 오후였다. 젖은 이불이 묵직하게 드리워진 아래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한 겹 더 아득해진 빗소리, 심장소리, 내 숨소리, 가구가 툭, 툭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미 실내였지만 정말로 비를 피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반투명한 천은 외부 세계의 어지러운 윤곽을 완전히 뭉개버렸고, 통과한 푸른 빛이 은은하여 책을 읽기에 참 좋았다.


...

당시 내겐 유치원 끝나고 집에 돌아와 ‘예림당’이라는 출판사의 하드 커버 그림책 시리즈를 읽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비 오는 날의 이 조그만 천막을 생각하면, 그 곳에서 읽었던 <시튼 동물기>가 떠오른다.


시튼의 동물 이야기들은 대체적으로 굉장히 슬펐다. 그런데 슬픔 이상의 정감을 일으켰던 이야기가 있었으니, 바로 '회색곰 왑' 이야기다.


회색곰 왑은 어린 시절, 사냥꾼이 쏜 총에 엄마와 형제를 모두 잃는다. 홀로 간신히 살아 남았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곧 사냥개들이 달려 들었고, 작고 어린 그는 앞만 보고 달렸다. 죽은 엄마와 형제들을 뒤로 하고, 왑은 고향에서 멀어졌다.


낯선 산 속에서 왑은 혼자 살아 남아야 했다. 혹독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는 조금씩 생존의 지혜를 터득한다. 인간이 놓은 덫에 걸리기를 반복하다 발가락을 잃지만, 덕분에 그는 덫의 전문가가 된다. 덫을 피해갈 뿐 아니라, 일부러 덫을 망가뜨려 인간을 골려줄 줄도 알게 된다.


몸집이 점점 커져가는 사이, 어렸을 때 마주쳤던 무서운 동물은 이제 자신보다 작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성격이 까칠한 왑은 여자에게 연애 한 번 못걸어보지만, 자신의 힘과 영리함으로 자기 영역을 확장해 가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렇게 그는 장성하여 드넓은 영역의 고독한 왕이 된다. 뜨끈한 유황온천에 보금자리도 마련한다.


하지만 그도 늙어갔다. 제 몸집의 반 밖에 안되는 어린 흙곰에게 보금자리를 뺏기고서부터 그는 점점 용기와 기운을 잃어간다. 움직임이 둔해진 탓에 사냥꾼이 쏜 총에 어깨를 맞게 되고, 그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사방이 두려운 적들 뿐이었던 어린시절의 무력감을 다시 느끼며, 왑은 정처 없이 떠돈다.


전성기 시절의 어느 날, 그는 한 골짜기 입구에서 본능적인 불쾌감을 느끼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 맡아본 적 없는 이상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늙고 쇠약해진 왑은 이 냄새와 다시 조우하는데, 전과 달리 그는 이 가스냄새에 묘하게 이끌린다. 불쾌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에 잠시 망설이지만, 왠지 오래 전 잃었던 용기가 솟아 왑은 냄새를 따라간다. 그가 들어선 곳은 '죽음의 골짜기'였다.


가스가 몸 안에 퍼져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커다란 바위 위에 몸을 눕힌다. 욱신거리던 어깨의 통증이 점점 사그라든다. 몸이 가벼워진다. 눈을 감고, 그는 평화롭게 잠든다....


....는 것으로 왑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삽화에는 땅 여기 저기에 동물의 뼈다귀들이 널려 있고, 누워 있는 왑 주변으로 오색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


생각건대, 왑의 이야기만큼 생로병사의 苦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도 없다.


왑 뿐만이 아니다. 시튼의 동물들은 다 죽었다. 이리 왕 로보도 죽었고, 톱니귀 토끼의 엄마도 죽었다. 보나마나 톱니귀 토끼도 늙어 죽을 것이다. 죽음은 피할 길이 없는 것이었다. 잇따른 죽음, 상실감, 무력감, 아지랑이 가스 삽화, 등으로 인하여 책을 덮을 때에 나는 멀미가 났다.

...

언제나 천막 밖을 나오면 거실 불이 환하게 켜 있었고, 저녁 짓는 냄새가 났다.


쨍한 조명이 위안을 줄 때가 있다. 가족이 둘러 앉아 밥을 먹는 광경에 나는 안도했다. 그런데 불현듯,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외할머니와, 엄마와, 아빠의, 생과, 노와, 병과, 사의 가능성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생각을 떨치려고 밥 한 숟갈을 우겨 넣었다. ‘밥이 진짜다. 지금 이게 진짜다.’ 하지만 저것이 진짜가 아닌 건 아니였기 때문에. 결국 난 밥상에서 울었고, 누구에게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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