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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Oct 24. 2023

할아버지의 포도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음식

나날이 아이 얼굴에 살이 올랐다.

한국에 온 지 한 달 만에 옷이 작아져서 새 옷을 사 입혔다. 미국에서도 잘 먹고 지냈는데 여기 와서 무얼 먹었길래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고 키가 크는 걸까.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점심 식단을 보니 곤드레나물 비빔밥, 아욱 다슬기 된장국, 아귀 쑥갓 맑은탕, 들깨 삼색수제비국 등등 평소에 집에서 해주지 않는 음식이 많이 보였다. 미국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 후식으로 제철 과일, 가끔 아이스크림까지 구성이 야무졌다. 미국 학교 급식과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비교가 안 되는 다채로운 식단이었다. 피자나 햄버거에 당근, 사과, 그리고 우유와 주스가 전부인 미국 학교 점심을 떠올리니 그렇게 먹고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친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이는 미국 학교에서 봄학기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동갑내기 사촌과 한 살 어린 사촌 동생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청강생으로 여름을 보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할아버지는 자두 한 소쿠리를 내주셨고, 할머니는 요구르트를 봉지째 주셨다. 이모가 시장에서 통째로 튀긴 닭을 사다 주면 사촌들과 둘러앉아 통닭을 부산하게 해체했다. 통닭을 뼈만 남기고 아이들은 마당으로 뛰어나가 물총놀이를 했다. 웃다가 다투고 다시 웃고 다투는 소리가 파도치듯 반복됐다.


해가 질 때쯤, 저녁 먹으라고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할머니의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다. 우렁이 강된장에 밥을 비벼 찐 호박잎에 싸 먹고, 조기구이 살 한 점 떼어 먹고, 돼지갈비 한 번 뜯고, 들기름 발라 구운 김도 한 장 부숴 먹었다. 미국 집에서 엄마가 주는 음식만 먹던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가 주는 음식을 챙겨 먹느라 바빴다.


대가족 안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내가 진주 할머니라고 불렀던 100살이 넘은 증조할머니는 매일 박카스를 드셨다. 가끔 내게도 주셨는데, 박카스 병을 드르륵 따서 뚜껑에 조금씩 따라 홀짝홀짝 아껴 마시는 재미가 있었다. 증조할머니는 그 연세에도 소일거리로 바느질을 하셨다. 눈이 어두워서 바늘귀에 실 꿰는 일은 내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편찮으셔서 한동안 멀리 절이 있는 산에서 요양하셨는데, 가끔 집에 오실 때는 그곳 특산품인 밤고구마를 한 상자 사 오곤 하셨다. 맛있는 밤고구마를 먹을 생각에 할아버지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할머니는 종종 쌀가루, 팥 고명을 면 보자기에 켜켜이 쌓고 찜 솥에 쪄서 시루떡을 만들어주셨다. 뜨거운 김이 날 때 호호 불며 먹던 할머니의 시루떡이 생각나 종종 떡집에서 시루떡을 사보았지만, 그 시루떡의 맛과 감동을 재현할 만큼 대단한 시루떡은 여태까지 만나지 못했다.


엄마는 집에 곰국이 떨어지는 날이 없도록 매일 같이 큰 솥에 곰국을 끓였다. 소꼬리, 우족, 사골이 으스러질 때까지 물을 더 붓고 끓이고 또 끓였다. 나는 그 꼬릿꼬릿 쿰쿰한 냄새가 참 싫었다. 그 시절 곰국은 집안 어른들을 위한 보약 같은 음식이었을 거다. 명절에는 호텔에서 일하는 작은 삼촌이 엘에이갈비를 사 오셨다. 엄마는 그 갈비를 김장용 대야에 물을 채워 담가서 핏물을 한참 빼고 간장양념에 재웠다. 우리 집엔 먹을 게 늘 풍족했다. 먹성이 좋았던 나는 토실토실하고 키가 큰 아이로 자랐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사다 주시는 밤고구마, 할머니가 해주시는 시루떡을 맛볼 수 없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아이를 키우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게 주신 음식에 담긴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어서다.


친정 마당 텃밭에 아버지가 3년 전에 씨앗을 심고 정성 들여 키우신 포도나무에 포도알이 주렁주렁 달렸다. 첫 열매였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가라앉았던 시간 동안 성장하고 열매 맺은 포도나무가 대견하다 못해 감격스러웠다. 새파랬던 포도 알맹이가 7월 말이 되니 보랏빛으로 익었다. 미국 가기 전에 포도 한 송이 맛보고 갈 수 있을 거라던 아버지의 예견대로 포도가 제때 잘 익어주었다. 포도 한 송이를 따서 흐르는 물에 씻고 한 알을 따 조심스레 맛봤다. 달콤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할아버지의 포도를 신기해하며 맛보았다. 이내 보랏빛으로 물든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고 풀벌레 소리를 쫓아 마당으로 뛰어갔다.


내년에도 아이는 할아버지의 포도를 맛볼 수 있을까. 매해 여름, 오래오래 할아버지의 포도를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할아버지의 밤고구마, 할머니의 시루떡을 추억하듯 아이도 할아버지의 포도를 어린 시절의 달콤한 추억으로 떠올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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