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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Dec 12. 2023

집이 되어주는 사이

장석남 시 <그리운 시냇가>

오늘, 집 대출금을 다 갚았다.

이 집에 이사 들어온 날, 현관부터 거실까지만 우리 소유고 나머지 전부 다 은행 지분이라고 얘기하며 웃었다. 드디어 집 구석구석, 지붕 꼭대기까지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되었다.


남편은 여윳돈으로 집 대출금을 완납하기로 마음먹고 내게 은행에 같이 가자고 했다. 집이 우리 부부 공동소유로 되어있으니 꼭 둘이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은행 창구에서 최종 잔금을 확인하고 정확한 금액을 수표에 써서 냈다. 옆에서 지켜보니 수표에 서명은 한 사람만 하면 돼서 남편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굳이 은행에 오지 않았어도 됐는데 괜히 따라왔다고 투덜댔다. 남편은 혼자서 와도 되는지 진작 알았지만 같이 오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집 집문서에서 은행 꼬리표를 떼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고 싶어서였을 거다.  


은행직원은 무미건조하게 대출금이 완납되었다고 말하며 영수증을 주었다. 남편이 다른 인증 서류는 없냐고 물으니 그런 건 따로 없다고 했다. 더 줄 게 없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 남편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잠시 서 있었다. 축하 인사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리고 축하받는 기분을 나도 곁에서 함께 누리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축하의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맡겨둔 돈 못 받은 빚쟁이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은행 문을 나섰다.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가 뭐 그리 어려웠을까. 남편이 상심했을까 봐 안쓰러워 호들갑스럽게 저 사람은 참 쌀쌀맞다고, 은행에서 직원 교육을 제대로 못 한 것 같다고 흉을 봤다. 남편은 은행이자 낼 사람이 하나 줄었으니 은행으로서는 반갑지 않았을 거라고 덧붙였다. 남편 등을 토닥이며 그동안 대출금 갚느라 수고 많았다고, 고맙다고, 축하한다고 말했다. 은행에 남편 혼자 보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성탄절 아침에 산타할아버지에게서 선물을 받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축 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왔을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니 측은했기 때문이다. 내가 축하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집 없이 떠돈 유랑의 역사가 길다. 내가 부모님과 살던 고향 집을 떠나 처음으로 남의 집에 가서 산 것은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다. 고등학교 재수하느라 공주에서 1년, 대전으로 고등학교 가서 3년, 서울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닌 6년, 미국 유학 나와 위스콘신주, 미시간주에서 대학원에 다니고 결혼해서 텍사스주로 이주해 미국살이 18년 차다. 그사이 멕시코에 가서 반년간 살기도 했다. 한 지역에서 못해도 두세 번은 집을 옮겼으니 스무 번 남짓 이사한 셈이다. 하숙집, 기숙사, 고시원, 월셋집, 전셋집 고루 다 경험해 보았고, 친구와 손수레로 밀고 끌고 이삿짐 옮기기부터 이사업체가 짐 싸는 것부터 푸는 것까지 다 알아서 해준 포장이사까지 해보았다. 집 떠나면 해야 하는 고생을 참 오래도 했다.


결혼해서 한 이사는 혼자 했던 이사보다 훨씬 수월했다. 남편이 궂은일을 도맡아 해주어서이기도 했고, 함께 한다는 안정감 덕분이기도 했다. 학생 부부로 시작해 월셋집에 살면서 중고로 살림살이를 하나둘 장만하며 신혼을 보냈고, 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여러 번 이사해야 했다. 남편이 먼저 졸업하고 취직해 텍사스로 이주한 후 정착하기까지 또 여러 집을 거쳤다. 함께 이삿짐을 싸고 풀었던 세월을 거쳐 우리는 끈끈한 동지가 되었다. 부부에 대한 정의가 여럿 있겠지만, 나는 부부를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는 사이라고 말하고 싶다.


높은 창에 그림같이 걸린 풍경이 흘러간다. 우리의 첫 집에서 오늘도 햇살 같은 아이가 자란다.


그리운 시냇가 - 장석남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음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남편은 내가 쓴 글을 읽지 않는다. 자유롭게 창작하라는 배려이다. (설마 읽기 싫었던 것? 아니면 혹시 몰래 보고 있나?) 글 쓴다고 했을 때 돈 되는 시나리오 쓰는 줄 알고 제2의 장항준을 꿈꿨던 남편, 시나리오가 아니라 시와 수필을 쓴다고 했을 때 그래도 잘해보라고 해 준 남편, 내가 한량 베짱이처럼 피아노나 기타를 치고 있을 때면 슬며시 보고 있던 티브이 소리를 줄여주는 남편에게 언제 읽을지 모를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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