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의 관계
그날, 뒷마당에 있는 금귤 나무가 죽었다. 한파에 대비해 나무 밑동에 담요를 칭칭 동여매 놓았지만 소용없었다.
재작년 2월, 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이던 텍사스에 극심한 한파가 찾아왔다. 섭씨 영하 20도를 밑돌며 30여 년 만에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사흘 연속 영하의 추위에 온 도시가 얼어붙었다. 첫날에는 눈발이 흩날려 살짝 눈이 쌓였다. 겨울 외투를 꺼내 입고 밖에 나가서 아이와 함께 눈을 긁어모아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한파가 몰고 온 눈이 깜짝선물처럼 반가웠다. 날이 저물 때쯤 전기가 끊겨 난방이 되지 않았다. 실내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로 온도가 떨어졌다. 벽난로를 켰지만, 눈요기만 되고 집안 공기가 데워지지는 않았다. 옷을 겹겹이 입고 거실에 텐트를 쳤다. 손전등으로 텐트 안을 밝히고 남편과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캠핑하듯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는 휴대용 가스버너로 밥을 짓고, 달걀프라이를 하고, 어묵탕을 끓였다. 전기가 들어오지는 않았어도 볕이 드니 밤보다는 지낼 만했다. 오후가 되자 몇 시간 단위로 전기가 들락날락했다. 방송에서는 수도관 동파로 시내 곳곳에 큰 피해가 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집 천장 수도관이 터져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된 사진과 실내에 고드름이 얼어있는 사진을 보여줬다. 집안에서 일어난 재난 상황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보고도 믿기 힘든 장면에 아찔했다. 우리 집 수도관도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아 불안했다. 부디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한파가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해 질 무렵, 옆집에서 수도관이 동파되었다며 우리 집 외벽 수도에서 물을 쓰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화장실 물 내리는 데라도 쓰고 싶다고 했다. 이웃으로서 당연히 도울 수 있는 일이라 허락했다. 남편이 옆집에 닿을 만큼 긴 호스를 수도꼭지에 연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벽 안쪽에서 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큰일이 났다. 건물 벽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수도관 밸브를 닫아 집 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차단했다. 집안에서 물을 쓸 수 없게 됐다.
평소 옆집과는 데면데면하고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물을 쓰게 해 달라는 부탁도 우리에게 직접 한 게 아니라 앞집을 통해서 들어왔다. 우리 집에 피해가 생기자, 앞집 부부는 자신들이 부탁해 이런 일이 생겼다며 미안해했다. 생수와 물티슈를 상자째로 가져다주고 자기 집에 와서 샤워하라고도 했다. 앞집 부부 말로는, 옆집 부부는 우리 집 외벽 수도관에 원래 문제가 있어서 생긴 일이라며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다고 했다. 물론 낡은 수도관 탓이기도 하겠지만 도움을 주려고 언 수도관에 손을 대서 생긴 사고였다.
집 외벽을 부수고 공사해야 하는 건지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수도관에 손을 댄 건 남편이었기 때문에 옆집에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옆집 부부가 도의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찾아오지도, 문자 하나 보내지도 않았다. 미국에서는 미안하다고 말하면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라 함부로 사과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미안하다고 하면 공사비 물어내라고 따질 것 같은 야박한 이웃이라 생각했을까.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표현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런 마음이 아예 없었던 걸까. 그들의 심중이 궁금했다.
다음날 배관공이 와서 진단한 결과, 집 외벽 안 수도관이 뒤틀려서 새것으로 교체해야 했다. 외벽을 허물지는 않아도 되고, 집 안쪽에서 문제의 수도관 위치를 찾아서 공사하면 된다고 했다. 급히 공사해야 할 곳들이 밀려있어서 우리 순서는 한참 뒤였다. 손재주 좋은 남편이 팔을 걷고 나섰다. 수도꼭지 반대편 위치를 찾아 안방 욕실 타일 벽을 깼다. 뒤틀린 수도관을 찾아 잘라내고, 그 끝을 임시로 막았다. 뚫린 벽을 두꺼운 비닐로 덮고 테이프를 붙여 마감했다. 하루 만에 다시 물을 쓸 수 있게 됐다. 벽에 큰 구멍이 난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아우슈비츠에 온 것 같다고 불평했지만, 물 쓰는 데 지장이 없어서 한참 동안 그 상태로 지냈다.
한파는 우리 집 욕실 벽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도 흔적을 남겼다. 앞집과는 사이가 더 돈독해졌고, 옆집과는 살짝 건조했던 관계가 말라비틀어져 쩍쩍 갈라진 땅 같은 상태가 됐다. 우리가 불편해서였을까. 옆집은 해를 넘기기 전에 집을 내놓고 이사했다. 그간 피해 복구를 위해 공사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집 내놓을 준비도 했었나 보다. 불편했던 이웃과의 관계는 그렇게 서로 간단한 인사말도 없이 무심하게 작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일기예보처럼 맑음과 흐림을 예측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인간관계에 찬 바람이 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한파주의보가 가능하다면 미리 대비해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는 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