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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Jan 09. 2024

시 합평 수업과 신춘문예

문예창작 전공자이거나 문학 작품 창작자가 아니라면 '합평'이 생소한 용어일 것 같다. 수필과 시 수업을 듣기 전에는 나도 합평이 뭔지 몰랐다. 합평(合評)은 여러 사람이 모여 작품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하는 비평이다. 합평 수업은 학생들끼리 서로 작품에 대해 비평하는 '합평'과 선생님이 학생의 작품을 평가하는 '강평'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들었던 시 합평 수업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시 합평 수업의 실제"


작년 10월 중순, 어느 사설 기관에서 개설한 시 합평 강좌를 신청했다. 생초보라 합평 수업 듣기에는 이른 것 같아 망설였지만, 실전이 중요하다는 멘토의 말씀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 수강했다. 시인 선생님의 지도로 6주 동안 현장 수업과 줌 미팅이 동시에 진행됐다. 수강생 15명 대부분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보였고 여러 해 시를 써온 분들이었다. 시 동인 활동을 하는 분, 평론가로 등단한 분, 소설 쓰는 분, 대학원에서 문학 공부한 분이 있었고, 나처럼 시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고 합평 수업이 처음인 수강생은 두 명이 더 있었다.


첫 시간에는 수강생들이 자기소개를 하고, 시인 선생님이 선정한 작품을 강독했다. 그다음 주부터는 순서를 정해 매주 세 명이 합평할 시 다섯 편을 수업 전날 단톡방에 올렸다. 시 다섯 편이면 한 장에 한 편 써서 다섯 장짜리 문서가 올라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웬걸. 열 장에서 열두 장짜리 문서가 올라오는 게 아닌가. 시 한 편으로 A4 용지 두 장을 채우는 수강생이 여럿이었다. 아차, 싶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신춘문예에 응모할 작품을 점검하는 것 같았다. 대학 강의실에 앉아있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다른 분들의 작품을 비평할 만한 실력이 안 돼서 합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필기만 열심히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수업 전날 다섯 장짜리 문서를 단톡방에 올렸다. 고심해서 썼지만, 아쉬운 점이 많은 습작이었다. 어떤 평가를 받을지 긴장됐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다른 수강생들이 초심자의 눈높이에 맞춰 조언을 해주었다. 강사 선생님은 내 시가 단정하고 깔끔한 형태이고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형식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기승전결을 생명줄처럼 여기며 십수 년간 논문을 썼다. 시를 써도 티가 나는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문예창작 전공자들의 합평 수업에서는 작품이 가루가 되도록 탈탈 털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다행히 내가 들은 수업에서는 다들 작품에서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부족한 점에 대해 상처가 되지 않게 조언했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주로 1970년대에서 2010년대 초에 작품을 발표한 시인들의 시를 찾아 읽었다. 수업에서 2010년대 후반 이후에 발표된 작품을 함께 읽으며 많이 배웠고, 다른 수강생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곧 등단해서 시인이 될 작가들이 어떤 시를 쓰는지 최신 경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시집 읽기 모임을 만들다"


마지막 수업을 마친 후, 수강생 중 나처럼 시 쓴 지 얼마 안 된 S 님께 연락해 이야기를 나눴다. S 님도 문학 전공자가 아니고 수필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통화가 한참 이어졌다. 시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행복감이 차올랐다. 남편은 내가 시 얘기를 꺼내면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참 붙들려서 얘기를 들어야 할 상황임을 간파한 것이다. 대화 중에 시 이야기로 넘어가는 일이 잦아서 남편 눈에는 자주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그런 처지이다 보니 시에 관해 끝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문우의 존재란 구세주와도 같았다. S 님도 나와 같은 마음임을 알 수 있었다.


S 님과 나는 시집 읽기 공부를 함께 하자고 뜻을 모았다. 합평 시간에 "이 작품은 OOO 시인의 느낌이다"라는 말이 종종 나왔는데, 다들 고개를 끄덕일 때 우리는 누군지 몰라서 반응할 수가 없었다. 시인 얘기가 나올 때 우리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고, 한술 더 떠서 "OOO 시인보다는 OOO 시인의 느낌이 강한데요"라는 말도 하고 싶다. 우리 모임의 목표는 시인에 관해 자신 있게 아는 척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하는 거다.


시 합평 수업 수강생 중에 시집 읽기 모임에 관심 있는 분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조만간 등단할 것 같은 분들이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우리처럼 합평이 처음이었던 다른 한 분이 관심을 보일 거라 예상하며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분은 묵묵부답이고 다른 분이 연락을 해왔다. 수년간 소설을 썼고 시는 1년 남짓 썼다는 J 님이었다. 월척을 낚았다. 초보자들과 함께 시집 읽기 모임을 하겠다는 J 님이 고마웠다. 그렇게 모인 셋이 매주 시집 한 권을 읽고 영상통화로 창작시를 합평하고 있다.


"수강생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다"


시 합평 수업 수강자 중에 비문학 전공자이고 1년 정도 시를 썼다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올해 문화일보와 매일신문의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한 곳도 어려운데 두 곳에서 당선됐다니 놀라웠고 수업 시간에 읽었던 작품을 신문사 웹사이트에서 보게 되어 신기했다. 강지수 님의 신춘문예 당선작 시 두 편을 소개한다. <면접 스터디>(문화일보)와 <시운전>(매일신문)


시집 읽기 모임을 함께하는 문우가 소설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초보자들과 시 공부하기를 꺼리지 않고 함께하자고 손 내밀어 준 J 님이다. 그렇게 겸손한 자세로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이기에 당선 소식이 더 감동으로 다가왔다. 좋은 소식으로 새해를 시작하게 되어 기뻤다. 이지혜 님의 신춘문예 당선작을 소개한다. 소설 <북바인딩 수업>(서울신문)


연말에 한 땀 한 땀 종이를 엮어 만든 수제 공책을 선물 받았다. 친한 동생 Y가 작가의 꿈에 다가가는 나를 응원하기 위해 만든 사려 깊은 선물이었다. 소설 <북바인딩 수업>을 읽으면서 그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자세히 알게 되어 감동이 배가 됐다. 젖먹이 아기를 돌보며 틈틈이 책을 만든 Y의 정성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 책을 내 시로 다 채우는 날이 오면 나는 시인이라 불려도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어있을까.




장강명 작가는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책 말미에 일본에서 60대 신인 소설가들이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한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아홉 명의 평균 연령이 47.9세이고, 그중 50대가 세 명이다. 최고령자는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59세 정한조 님이다. 96년도에 소설가로 등단해서 장편소설 다섯 권을 펴낸 작가이다. 그의 당선 소감이 인상 깊었다.

"과거 당선된 경험이 있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고 삶이 바뀌지 않는 걸 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 대표작이자 유작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출처: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 유작이 되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재치 있게 들리면서도 곧 60세의 문턱을 넘을 중견 작가이기에 그 말에서 무게가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신춘문예 당선작이 대표작이자 유작이 되는 작가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자가 이야기했듯 한 번의 수상으로 삶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창작자의 삶이란 보이지 않는 결승선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마라톤과도 같다.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을 안은 문우와 작가들께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가기를 응원한다. 신춘문예에 도전한, 도전할 작가들께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당선작이 유작이 되면 어쩌나, 싶을 때까지 도전하시라.


2024년 동아일보와 세계일보의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한백양 님의 당선 소감으로 글을 마친다.

"나는 내가 될 줄 알았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또한 될 것이다." (출처: 세계일보)

2024년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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