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들었던 시 합평 수업 경험담을 <시 합평 수업과 신춘문예>라는 글로 썼다. 그 수업을 마치고 3개월 후에 다시 시 합평 수업을 들었는데 지난주에 종강했다. 그동안 시집 읽기 소모임을 하면서 시를 보는 눈을 길렀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수강생의 창작시를 비평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다. 시를 쓰는 데는 조금이나마 발전이 있었다. 전형적인 시의 형식을 탈피해 다른 형식의 시 쓰기를 시도했고 전보다 더 길게 쓸 수 있게 됐다. 시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지 않았으니 조급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그저 꾸준히 읽고 쓰는 수밖에.
"지치지만 않으면 될 것"
마지막 수업에서 시인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재능보다 열망이 더 중요하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해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계속 시를 쓸 사람들이니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선생님은 내게 미국에서 이른 새벽에 수업 듣는 열의와 향토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어 감사했고 공부 더 하고 다시 뵙겠다고 인사했다.
"웬만하면 써라"
선생님이 선배 시인에게서 들은 조언이라며 해주신 말씀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으나 지금은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 많다고 했다.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많다. 읽을 게 많아서, 충분히 구상하지 않아서, 대단한 작품을 쓰려고 등등의 핑계로 글쓰기를 미루곤 한다. 내가 그랬다. <시 짓는 마음> 연재를 마친 후에 글 발행을 한 주 쉬었다. 적당한 분량에 짜임새가 완벽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다른 작가들의 빛나는 글을 볼 때면 나는 작가보다 독자로 남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스쳐 가기도 했다. 웬만해서는 글을 쓰기 쉽지 않은 상태였다. 이대로 가라앉을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대단한 작품을 쓰겠다는 무거운 마음이 글 쓰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 마음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벼워지자. 웬만하면 쓰자.'
연재를 잘 마쳤다고 생각해서 아쉬움은 없었다. 매주 과제 하나를 완성한다는 생각으로 글로 쓴 분량의 몇 배를 읽고 공부했다. 댓글로 가르침을 주신 작가님들 덕에 배움의 기회가 됐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뼈대만 세우고 시작한 것 치고는 기대 이상으로 완성했다. 연재가 아니었다면 완성하지 못했을, 마감이 써준 글이었다.
'다음'에 관한 고민이 깊었다. 시인들의 '시 짓는 마음'은 어느 정도 알게 됐으니 내가 '시 짓는 마음'으로 시 창작에 주력해야 할 때라고 여겼다. 시 100편 읽는 것이 시 한 편 쓰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다.
천억이 백석 시인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한 김영한의 말을 떠올렸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1억도 아니고 1,000억이지 않은가. 0이 세 개, 억 단위까지 풀어쓰면 0이 열한 개다. 시 한 줄과 견주기에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나는 김영한이 아니므로 백석 시인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연재하며 꼴값, 양아치, 무리수로 단련되어서 이렇게 주접을 떨어도 어색하지가 않다. 천억만큼의 가치가 있는 시 한 줄을 쓰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하다. (김영한이 천억을 어떻게 썼는지 알고 싶다면 <짝짓는 마음> 참고)
시 해설 연재를 하는 동안 조회수와 구독자 수가 많이 늘었다. 구독해 주신 분들과 꾸준히 찾아 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진정한 작가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독자가 원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말을 되뇐다. 어깨가 무거워진다. 어쩌면 독자들보다 내가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작가로 거듭나는 과정인 것 같다. 웬만하면 쓰자고 마음먹으니 이런 생각까지 주저리주저리 쓰게 된다. 이렇게 막 쓸 거면 웬만하면 쓰지 말라고 할까 봐 걱정이다. 그렇다. 오늘의 컨셉은 주접이다.
내가 하는 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창작시를 연재하기에는 작품의 완성도에 자신이 없다. 게다가 습작을 발표하면 고심해서 내놓은 아이디어를 누군가 훔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꼴값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결론은 다시 시인의 작품을 소개하는 연재로 수렴된다.
시와 노래를 주제로 한 연재를 기획하고 있다. 노랫말과 시를 뼈대로 하고 살을 붙여볼 생각이다. <시 짓는 마음>처럼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단단한 매듭이 되도록 힘쓰겠다. <시 짓는 마음>이 한 끼 식사 분량이었다면 새 연재는 간식거리가 될 정도의 분량으로 완성할 생각이다. 시 창작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어서다. 창작시를 자신 있게 발행할 수 있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웬만하면 쓰려고 한다.
대단한 작품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유로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쓰자. 나도 여러분도. 지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