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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Aug 28. 2023

꺾이지 않는 마음

챗지피티 시대,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까?

2016년 3월 9일,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첫 대국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다섯 번의 대국을 앞두고 이세돌은 자신의 압승을 예상하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세 번 연속 패배했다. 이세돌의 열패를 지켜보며 인간은 결코 슈퍼컴퓨터를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좌절감에 휩싸였다. 수단으로만 여겼던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을 위협하는 경쟁 상대가 될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고, 인공지능 로봇이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고 미래도시를 장악한 모습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절치부심한 이세돌이 네 번째 대국에서 알파고의 약점을 노린 승부수를 던져 승리를 거두자 좌절감과 위기감이 사그라들고 잠시 안도했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점령당할 날이 조금은 미뤄진 것 같았다. 마지막 대국에서 알파고가 승리해 전적 4 대 1로 결국 알파고가 최후의 승자가 됐지만, 그 이후 이듬해 5월에 알파고가 은퇴할 때까지 알파고를 이긴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이세돌은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한 유일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다.


그 후로 7년이 지난 지금, 챗지피티(ChatGPT)가 인공지능의 대명사가 됐다. 챗지피티는 Open AI가 개발해 2022년 11월 30일에 공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이다. 출시된 지 2개월 만에 사용자 수가 1억 명을 돌파했다. 챗지피티는 사용자가 입력한 검색어에 따라 관련된 내용을 단순 나열하는 보통 검색 엔진과는 달리 인공 신경망을 기반으로 인간의 직관적인 판단과 창의성을 학습해 인간의 대화에 가까운 글을 작성한다. 주제와 분량을 정해주면 맞춤형 글을 몇 초 만에 완성한다. 학생들의 글쓰기 과제, 학자의 논문, 정치인의 연설문, 그리고 문학의 영역인 시, 소설, 수필도 사람이 쓴 것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그럴듯하게 써내고, 변호사 시험과 의사면허 시험을 통과할 정도로 똑똑하다. 알파고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적인 존재다. 챗지피티의 프롬프트가 깜빡거리며 만들어내는 글을 보면서 그 깜빡임이 잦아질수록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챗지피티가 대체하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챗지피티가 대체하지 못할 인간 고유의 영역은 무엇일까? 챗지피티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프로그래밍한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하며, 입력된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해 결과를 도출해 내는 기술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말과 행동을 모방할 수는 있지만 자아가 없으므로 인간의 감성과 인지력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자아 성찰이야말로 인공지능이 넘어설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이 아닐까.


어느 해 질 녘 대학 광장 벤치에 앉아 인생의 한계에 부딪힐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골똘히 생각한 적이 있다. 한참 동안 생각한 후 어느 순간 만족스러운 답이 떠올라 머릿속이 환해지는 경험을 했다. 어떤 한계 상황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최선을 다했다는 자각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한계 상황이라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으면 그것을 한계라 할 수 없으며, 최선이란 강력한 힘 앞에 한계는 의미가 없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에 그런 해탈의 기분을 맛보지 않았을까. 삶에 관한 의미 있는 고민, 깨달음의 순간에 느끼는 희열, 최선을 다했다는 자각. 이런 것들은 자아가 없는 인공지능은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경험이다. 요즘 유행하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인지도 모른다.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이 몇 번째였냐는 질문에 마지막 대국이라고 답했다. 그가 승리한 네 번째 대국이 아니라 마지막 대국이라고 답한 것이 의외였으나 그의 대답을 듣고는 이내 수긍했다. 승리한 대국에는 미련이 없지만 이기지 못한 대국에서는 잘 못 둔 수가 기억에 남기 때문이었다. 그가 알파고를 이길 묘수를 고민하며 보냈을 시간, 마침내 4국에서의 승리 후 마지막 경기에서 불리한 흑돌을 선택해 아름다운 도전을 이어간 그의 모습은 성패와 상관없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노력한 인간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보여줬다.


이세돌 같은 천재가 아니어도 누구나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꺾지만 않는다면.


2023년 3월 20일 작성


사진 출처: https://www.news1.kr/articles/?260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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