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돈이 많은 사람, 건강한 사람, 똑똑한 사람, 친구가 많은 사람 등 여러 가지 답을 떠올릴 수 있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가장’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이라는 단어는 비교할 대상이 있을 때, 누가 누구보다 더 행복한지 덜 행복한지 견줄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주관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 행복의 기준을 타인에게 두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곁눈질하지 않으며 내면의 평화에 집중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누가 내게 저 질문을 한다면 답을 고민하는 대신 행복에 관한 질문에 ‘가장'이란 말을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질문을 이렇게 달리 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SNS(Social Network Service;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많이 이용할수록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해지고, 행복감이 감소한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람들이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비교하며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희로애락이 있고, 아무 일 없이 단조로운 날이 행복한 날보다 훨씬 더 많지만, SNS 안의 세상은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이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만 골라서 올린 사진들과 그에 반응하는 댓글들을 보다 보면 그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해 보이고, 온 세상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데 혼자 외톨이가 된 것 같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취직이 여의치 않았던 시기에 페이스북을 보면 다른 사람들의 삶은 성공적이고 멋지게만 보였다. 그런 모습이 내 상황과 대비되어 자괴감이 들곤 했다. 정신건강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기웃거리지 말고 내 삶에 집중하기로 마음먹고 페이스북 계정을 닫았다. 그 이후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SNS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내 소식을 알리는 일에도 소홀해져서 직접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고는 근황을 알 수 없는 무심하고도 비밀스러운 사람이 됐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부피는 줄었지만, 내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디지털 시대에 SNS 계정 없는 원시인으로 살다 보니 종종 불편할 때가 있다. 계정이 없으면 글 읽는데 제한이 있을 때가 있고, 모임의 연락망으로 SNS가 사용될 때 참여하지 못해 불편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불편은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 스스로 접었던 인간관계는 코로나 시대에 대면 활동이 중단되자 실생활에서도 극적으로 축소됐다. 모든 모임이 중단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누렸던 즐거움을 잃었고, 오랜 고립 상황에 따분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사라졌고, 내면의 안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내향형 인간이라는 것을 재차 실감했다. 아프지 않고 살아남는 게 유일한 목표였던 코로나 위기 상황은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일상 자체가 행복이라는 깨달음을 준 시간이었다. 건강과 마음의 평화, 진정성 있는 인간관계, 그리고 목표를 성취하면서 느끼는 기쁨이 행복한 삶의 공식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어떤 블로그 글을 읽고 행복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고 은퇴한 부부가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며 지혜를 구하는 글이었다. 은퇴 후 즐거움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으나 여행이나 운동 같은 취미활동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막연히 은퇴 후의 삶은 즐겁게 취미생활을 하며 평화로운 휴식을 누리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다. 돈이 부족한 사람이 재산을 늘리고, 아픈 사람이 건강을 회복하고, 공부해서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처럼 결핍을 채우고 스스로 정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며, 그 모든 것을 이룬 후의 삶은 포상 휴가 같은 시간일 것이라 여겼다.
평범한 취미활동만으로는 행복하지 않다니. 사람들이 어떤 흥미로운 놀잇거리를 권해줄까 궁금해하면서 댓글을 빠짐없이 읽었다.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글이 있었다. 평생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성취하는 삶을 살아왔으니 이제부터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재능을 기부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보라는 조언이었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고, 왜 그런 생각을 안 해봤을까 반성하게 한 글이었다. 그 말처럼 자신의 성취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타인의 행복을 위해 힘쓰며 다른 차원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그와 반대로 성직자처럼 평생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행복일 수 있겠다. 그렇듯 행복은 성공, 성취와 같이 달성해야 하는 일차원적인 목표가 아니고, 내게 기쁨을 주는 모든 것을 나열해 놓은 공식이 아니고, 세월에 따라 진화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질문 글을 올린 부부가 나처럼 그 글을 감명 깊게 읽었는지, 실제로 봉사활동을 하며 보람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이 고민하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에 대한 답을 찾았기를, 그들만의 행복한 삶의 방식을 찾아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