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기억해 준다면, 지난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3년 만에 만났다.
오랜만에 본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순수함을 품은 너의 눈을 마주할 때면
나는 이따금 부끄러움을 느낀다.
오늘은 유난히 더 그랬다.
그래서 몇 번이고 눈을 피했다.
이상하리만치 너의 눈빛은 나라는 사람 전체를 들여다보는 듯했고,
그 앞에선 모든 걸 털어놓고 싶어지곤 했다.
문득,
너를 처음 만났던 아홉 해 전이 떠올랐다. 스물두 살, 마른 몸에 앙상한 어깨를 하고 강원도에서 안산까지 올라와 자취를 한다고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간절했고, 절실했다.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던 그 순수함을 모두가 좋아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때로는 그 순수함이 걱정스러웠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마주 앉아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연기를 계속하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는지.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늘 그랬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너는 내게 물었다.
“만약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고,
대신 그 시절에 했던 일들을 평생 해야 한다면 돌아갈 거예요?”
나는 돌아간다고 말했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운동장에 누워 책을 읽던 오후,
기숙사 담을 넘고 몰래 빠져나와
동기들과 게임을 하던 새벽,
날씨 좋은 날 군산의 골목을
하염없이 걸어 다니던 그 시간들.
그건 지금의 나를 만든 순간들이었다.
너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안 갈 것 같아요.”
“왜?”
“그 행복했던 시간들 이전엔
늘 힘든 시간이 있잖아요.
평생 겪으면서 살긴 싫어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행복은 늘 치열함과 고생이 이면에 있다.
그걸 잊고 있었다.
막연히 행복만 떠올리기엔,
그 시절도 쉽진 않았지.
우리는 카페를 나와
연남동의 골목을 무작정 걸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 만큼 오래 걸었다.
기억 속의 오래된 시간이
천천히 따라붙는 느낌이었다.
너와 함께였기에
그때의 나로 잠깐 돌아갈 수 있었다.
단지, 지금은 그만큼 순수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낯설게 스쳐 갔다.
ㅡ 그런 시절도 있었지.
어딘가, 너를 볼 때면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 무엇이라도 너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한다.
일 년에 몇 번,
어쩌면 한 번도 못 볼 때가 많지만
막상 마주 앉으면 이상하게
어제 본 사람처럼 편하다.
누군가가 나의 지난날을 기억해 준다는 것은 그 시절을 잘 지나왔다고 말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은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