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27p
인간에게 특별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책을 읽으면서 신경숙의 깊은 슬픔이 떠올랐다. 나는 깊은 슬픔을 읽으면서 깊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본 적은 없었다.
세 명의 주인공들을 따라가며 막연히 슬프다 고만 느낀 것뿐이었다.
인물들이 서로를 붙잡으려 하면서도 끝내 흩어져 버리는 그 장면들, 사랑이 삶을 지탱하기는커녕 오히려 무너뜨리는 순간들.
그것들을 보며 단지 감정적으로 흔들렸을 뿐, 슬픔이 왜 깊다고 불릴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깊은 슬픔을 좋아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내가 겪어온 일들, 그리고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어떤 균열의 지점들이 어렴풋이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소설 속 슬픔을 공유하기보다는 투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했고, 결국 감상은 막연한 여운으로만 남았다.
그런데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으면서 달라졌다. 저자는 슬픔을 개념으로 붙잡아 세밀하게 해체하고, 다시 엮어냈다.
나는 그 문장들을 따라가며 처음으로 깊다는 말이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슬픔이란 감정은 누군가와 공유하는 척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진정으로 슬퍼하지 않았던 거다.
이제라도 타인을 공감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해야겠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걸, 공감한다는 걸
척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고 싶다.
사람은 변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변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든 주어진다. 다만 그 기회가 늘 고통을 동반하고 찾아온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스스로를 파괴해야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잔혹하다.
충분한 상처를 겪었는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이 아직 나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무너져야만 겨우 조금 달라진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나는 그것이 고통을 자기 연민으로 소모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작은 타당성 하나라도 붙잡으면, 그 안도감에 기대어 멈춰 버린다. 그래서 결국 “사람은 안 변한다"라는 체념만 남는다.
믿는다.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방법은 스스로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연습에 있다. 나를 나로 보지 않고, 타인으로 놓아보는 일. 나는 나에게 가장 친밀한 동반자이자, 가장 무서운 적일 수 있다는 자각. 그 자각이 고통의 끝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