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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ya Aug 20. 2019

시험이 존재하는 이유

사회 초년생 탈출하기_3

  검색하면 다 나오는 시대. 심지어 요즘엔 영상으로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는 시대. 이런 시대에 시험은 왜 필요할까? 사내·외 업무 관련 시험을 준비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지식’은 인간이 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터넷 검색을 따라갈 수 없다. 이건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항상 ‘참’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명제다. 특히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Alpha Go)’가 등장했을 때 나는 한 인간으로서 깊은 패배감을 느꼈다. 게다가 내가 밥벌이를 하고 있는 분야는 늘 ‘사라지는 직종’ 순위 상위권에 위치하는지라 인공지능(AI)이 모든 걸 대체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느꼈다. 하지만 패배감과 위기감을 느낀 들 어쩌리.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다.


  그럼 시험을 왜 치는 걸까? 시험은 저마다 공부한 지식을 제한된 조건 속에서 누가 많이 맞혔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험을 위해 애써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은들 뭐하나. 계속 반복해서 익히지 않으면 금세 휘발되어 버린다. 어찌어찌해서 잘 외워뒀는데 관련 규정이 바뀐다면? “헷갈린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결국 가장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면 그때그때 찾아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쯤 되면 지식을 잘 ‘외운’ 사람보다 보다 잘 ‘검색’하는 사람을 시험으로 가려내야 되는 게 아닌가? 시험을 치른들 한 사람의 머릿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지식도, 그것도 가장 정확하게 남아 있는 지식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시험을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에 닥친 시험공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 끝에 나는 시험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시험을 통해 최소한의 맥락은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인간의 숭고한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 일정을 짜 본 적이 있는가? 예를 들어 A 장소에서 B 장소로 이동한다고 하자. (시간과 비용의 구애를 받지 않는 여행인 경우는 논외로 한다.) 제한된 시간과 비용으로 일정을 짜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이동 수단, 이동 시간, 이동에 드는 비용, 해당 목적지의 입장 마감 시간 유무, 다음 C 목적지까지의 동선, 숙박 장소 등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불과 일주일 전에 여행 일정을 직접 짜서 다녀왔건만 세부적인 것들, 이를 테면 교통수단별 요금 등은 기억나지 않으나 이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 최적의 일정을 짰다고 자부한다. 적어도 ‘여행 일정을 짜는 데 꽤 많은 요소들이 중요하구나!’라는 맥락만 파악하고 있어도 언제든 활용할 수 있다.


  다시 시험으로 돌아가자. 시험에서는 점수로 우수한 사람을 가려내야 하는지라 세부적인 내용들을 묻기에, 우리는 세부적으로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적어도 무엇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지 정도는 익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험은 금방 잊힐 게 뻔한 데도 열심히 노력해서 외운 사람들에게 ‘너 이런 것도 외웠어!’라며 용기도 북돋아주고, 인공지능보다 한참 뒤떨어지지만 외우려고 노력한 인간들에게 합격이라는 결과물로 치하하기도 한다.


  이상 시험을 앞두고 고민하는 직장인의 넋두리였다. 작년까지 어떻게 공부했었나 싶다. 아무래도 앞서 치렀던 시험과는 달리 공부해야 하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낯설다 보니 괜히 품만 들이고 합격을 쉬이 하지 못할 거 같은 걱정이 큰 모양이다. 시험에 대한 긍정적인 합리화를 하며 다시 시험공부에 대한 의욕을 불태워 본다. 컴퓨터에 USB를 꼽듯 공부해야 할 내용이 머릿속에 한 번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불가능한 희망을 여전히 품으며, 다시 책을 펴고 펜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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