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춘기 진행 중_1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은 공부의 연속이었다. 업무 관련 자격증 하나 없이 입사했지만 다른 동기들보다 빠른 속도로 자격증 점수를 채웠다. 비단 자격증뿐이겠나. 나는 다양한 업무를 맡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출발했다. A부터 몰랐기 때문에 Z까지 몰라도 아무렇지 않을 때였다. 따라서 새로운 업무에 대한 거부감도 적었고, 업무들도 빨리 습득할 수 있었다. 입사하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채움’이라는 목표를 내가 봐도 잘 달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사한 지 6년 5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야말로 ‘직춘기’에 빠졌다. 직장 생활에 있어서, 직장인으로서 사춘기를 제대로 겪고 있는 중이다.
2020년부터 도전하기로 했던 자격증 시험은 코로나 감염 우려를 핑계로, 업무와 회식으로 인해 지친 심신을 이유로 세 차례나 취소했다. 그나마 한 번은 응시료 전액, 또 한 번은 접수 취소 기간에 맞춰 취소해 반액을 돌려받기라도 했지, 나머지 한 번은 시험 접수를 해놓고 안 갔던 내 인생 최초의 시험이 됐다. 물론 이렇게 자격증 앞에, 공부 앞에 작아진 계기는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치른 두 번의 시험에서 보기 좋게 물을 먹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올해 안에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면 또 모르겠다. 절실함도 없고, 자신감도 떨어져 있으니 시험 준비가 제대로 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업무 공부도 마찬가지다. 6개월 차를 맞이하고 보니 현재 내가 맡은 업무는 매일매일의 최신 정보에 민감해야 한다. 나름 거금의 자비를 들여 경제 이슈들을 정리해주는 정보방에도 가입했다. 하루 평균 30건의 메시지들이 올라온다. 꽤 걸러진 정보들을 대충 읽자니 낸 돈도 아깝고, 기억에도 안 남았다. 그렇다고 정독을 하자니 글자들로 인해 질식할 거 같은 느낌이었다. 회의감도 강하게 들었다. 오늘 정독한 정보들은 내일이면 다시 초기화되고 휘발될 것들이었다. 그 속에 원리가 없진 않았지만 변수들이 너무 많았다. 어찌 되었든 공부한 내용들을 업무에 활용해 실적을 냈다면 회의감이 조금 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인 관계는 또 어떤가. 마음은 여전히 신규 직원인데 어느덧 중견 직원이 되어버렸다. 아직까지 신규 직원으로서 관리와 관심을 받고 싶은데 업무를 함에 있어서 내가 결정해야 할 일들, 주체적으로 끌고 나가야 할 일들이 많아져버렸다. 부서 간, 기관 간에 협력해야 할 일들도 많아졌고, 그 사이에서 소통하고 의사 결정을 하는 기술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끌어줬으면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없었다. 다들 나를 볼 때 ‘알아서 잘하겠지.’ 혹은 ‘왜 아직 안 했대?’라는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업무를 떠나 나이도 딱 중간이 되어 버렸다. 신규 직원과 고참 직원들의 중간 말이다. 조용히 묻혀 가고 싶었는데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가 되어 버렸다. 신규 직원들과 놀자니 젊은 꼰대가 되는 거 같고, 고참 직원들과 놀자니 발언권 없는 ‘리액션 봇’이 되어 버렸다. 여러모로 벅차고 외로운 느낌이 든다.
그렇다. 딱 사춘기다.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 책꽂이에 있는 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있는 자리 흩트리기』(김동연 지음, ㈜쌤앤파커스, 2017)라는 책이었다. 대학생 시절 수업 시간에 선물 받은 책이었는데 한 번 펴보지도 않고 고이 꽂아 놨었다. 그 후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냈었는데 제목이 눈에 딱 들어온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있는 자리를 흩트리려면 퇴사 밖에 없는데? 나는 퇴사할 용기가 있나? 퇴사 준비를 할 깜냥은 되나? 퇴사 준비를 뭘로 하지?’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 책이 발행된 이후 저자의 행보처럼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나라는 독자의 행보가 그리 도전적일 거 같지가 않다. 나 안 그랬는데. 아, 분명 직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