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_10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국제축구연맹 FIFA는 데이터를 강조하고 있다. 아르센 벵거(Arsène Charles Ernest Wenger, 1949~)를 주축으로 한 TSG(Technical Study Group, 기술연구그룹)에서는 매 경기 분석 자료를 만들어 FIFA 홈페이지에 제공하고 있다.(@FIFA Training Centre 홈페이지) 경기장에서도 전광판을 통해 이 데이터들을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이 기사들을 봤을 때 사실 굉장히 낯설었다. '데이터를 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사들이 너무 거창하게 느껴졌다. 그럴 만도 하다. 나는 축구로 스포츠 세계에 입문해 피겨 스케이팅을 거쳐 현재는 야구에 정착했다.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로 대표되는 세밀한 분석 지표들은 야구팬들이라면 매우 익숙할 것이다. 팬들은 계산식만 봐도 복잡한 wRC+에는 '우르크', WAR에는 '전쟁'이라는 애칭까지 붙여가며 거침없이 대화를 한다. 단순히 타율, 홈런, 세이브 개수 등 1차 자료가 아니라 이를 이리저리 가공한 2차 자료들은 이제 팬들도 당연히 봐야 하는 자료가 된 것이다.
물론 축구에서도 클럽이나 국가대표팀 내부에서는 전력 분석을 위해 매우 뛰어난 분석 자료들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팬들이 즐길 수 있는 분석 자료들은 제한적이다. 경기 중에는 볼 점유율, 공격 방향 정도,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는 누가 많이 뛰었나 정도다. 찾아보니 '후스코어드 닷컴'이라는 세계 최대 축구 통계 사이트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단순한 1차 자료들로 평점을 매기는 방식이다 보니 경기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신뢰성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관련 자료)
혹시 나처럼 축구에 과몰입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위의 FIFA Training Centre 홈페이지를 꼭 한 번 들어가 보기를 바란다. 각 경기 분석 데이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쉽게 글과 영상으로 설명해놓은 자료들도 있다. 52페이지에 달하는 pdf 자료들이 전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자료들을 보다 보니 조금 더 체계적으로 축구를 본 느낌이었다. 어제 이 부분에 꽂혀 한참 자료들을 보고 있을 때만 해도 한국 언론에서는 관련 기사 하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이 자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기사가 떠서 참 반가웠다.(@관련 기사)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고 한다. 그 덕분에 야구 통계도 꽤 오래전부터 발전했다. 하지만 이 데이터들을 한국 프로야구 현장에 접목시키고, 또 팬들에게 다가가기까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20년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NC 다이노스의 우승 비결을 다룬 기사만 봐도 그렇다.(@관련 기사)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FIFA의 시도도 결코 늦지 않은 것이다.
지난 12월 3일, 포르투갈전 승리에 취해 정말 많은 자료들을 봤다. 그 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왜 이강인을 쓰지 않나요?'라는 이강인 선수의 선발과 출전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들과 기사들이었다. 그들이 이강인 발탁을 주장했던 이유를 정리해보면 소위 말하는 '폼'이 올라왔고, KBS '날아라 슛돌이' 시절부터 미디어에 노출돼 스토리도 있는, 향후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나이 어린 스타플레이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내가 파울루 벤투 감독이었으면 진절머리가 났을 것 같다. 경기장 안에서는 팬들의 입에서, 경기장 밖에서는 기자들의 입에서 특정 선수의 이름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선수 선발 문제는 축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도 있다. 선수 선발은 어디까지나 코칭스태프의 고유 권한이라고들 한다. 선수 기용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선수 선발과 관련해 잡음이 없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는 한국 양궁, 특히 한국 양궁 국가대표팀 선발전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야구 대표팀의 경우도 그렇다. 각 포지션별 선수들의 실력을 수치로 표현할 수 있고, 순위를 매길 수 있음에도 실제 선수 선발은 그 숫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상 등의 요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숨겨진 무언가가 분명히 있긴 있다. 가장 최근인 2021년 도쿄 올림픽 때는 선수 선발 원칙을 '성적과 균형'이라고 말했다. 즉, 성적만 보는 게 아닌 것이다. 2018년 아시안게임 때는 선수 선발과 관련해 선동열 전 감독이 국회 국정감사까지 다녀왔을 정도로 논란이 컸다.
나는 이 지점에서 '데이터의 부재'를 느꼈다. 축구 기사에는 없고, 야구 기사에는 있는 것. 축구팬들의 이야기 속에는 없고, 야구팬들의 이야기 속에는 있는 것. 야구에서는 단순히 최근의 컨디션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WAR, wRC+ 등의 데이터들을 거론하며 요목조목 비판을 할 수 있다. '왜 이 선수를 뽑았어?'라는 의문과 '왜 이 선수를 안 뽑아?'라는 주장에 설득력 있는 근거 자료를 대며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그저 '폼'이라는 단어로 설명을 하고 있을 뿐이다. 글의 전개가 빈약하고 생떼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좋은 기사가 있어 공유한다.(@관련 기사) 이 기사에 따르면 벤투는 경기에서 다른 포지션을 실험하느라 이강인을 투입할 수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고, 글을 쓴 기자는 구체적으로 감독이 어떤 부분을 실험했는지 덧붙이고 있다. 골, 어시스트라는 공격 포인트 외에 추가적으로 선수의 가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데이터들이 없다 보니 글을 쓰는 사람의 분석 능력은 필수다. 하지만 당시 다른 언론들은 귀가 두 개니 이강인을 연호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벤투의 답변이 다소 신경질적이라며 대서특필하기 바빴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축구 소식을 다루는 기자들과 전문가들의 자질 문제를 반드시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기자들에게 높은 조회수가 필요한 건 잘 알고 있다. 수많은 글들 속에서 눈에 확 띄려면 자극적인 제목이 가성비 면에서 최고다. 그런데도 가나전이 끝난 뒤 일련의 뉴스 기사 제목들을 보며 정말 놀랐다. 스포츠한국에서 '월드컵 쓴소리'라는 대괄호([])를 씌워 내보내는 기사들이었다. 쓴소리를 해야겠다는 콘셉트와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이지만, 특정 선수를 지목하며 '최악', '주범' 등 자극적인 단어들을 쓰고 있다. 내용까지 읽어보면 기자 개인의 감정이 섞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관련 기사)
특정 언론사를 콕 집긴 했지만 다른 언론사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미 다 끝난 경기다. 실수한 상황을 언급하면서 그래서 너 때문에 졌다고 말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런 기사들에는 상황 설명만 있을 뿐, 깊이 있는 분석이 없는 게 문제다. 분석할 눈이 없다면 축구 데이터를 활용해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이 선수는 FIFA Training Centre의 자료를 보면 정말 빠르게, 많이 뛰어다녔다. 수비 시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팀 내에서 가장 많이 볼 소유권을 가져왔다. 하지만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골을 넣은 상대 공격수가 하필 라인을 무너뜨리는 플레이를 팀 내에서 가장 많이 한 선수였다.'와 같은 기사들을 이제는 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어설프게 엮어보긴 했지만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데이터들이 있다면 근거와 대안이 없는 비난이 아닌, 검토해볼 만한 타당한 비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데이터는 중요하다. 게다가 팀 스포츠라면 경우의 수는 더 늘어난다. 선수를 설명할 수 있는 개별적인 데이터뿐만이 아니라 팀 승리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어떻게 기여했는지도 봐야 한다. 대체 선수보다 얼마나 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 예측하는 데도 데이터가 필요하다. 데이터는 직관적이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너무나 좋은 근거가 된다. 선수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고, 코칭스태프들은 명확한 기준과 시스템을 제시하고 믿음을 얻을 수 있다. 팬들도 설득력 있게 납득시킬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만 볼 수가 없다. '현장의 감', '폼', '컨디션'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팀 스포츠라면 단체 생활을 한다. 기분이 태도로 드러나는 성격을 가졌거나 워크에식(work ethic) 문제로 팀 분위기를 저해한다면 아무리 데이터가 좋아도 함께 하기란 어렵다.
정말 데이터만으로 스포츠 경기를 하게 된다면 우리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경기, 극적으로 결과가 뒤집어지는 경기는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다행히 선수들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코칭스태프들이 오직 데이터만으로 팀을 운영한다고 해도 그 선수가 데이터에서 원하는 수행 능력을 보여줄지는 확률의 영역이다. 그래서 여전히 스포츠가 재미있다.
결국은 데이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가 중요해졌다. 데이터 분석의 역사가 오래되고 대중화된 야구에서는 그 재미를 찾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축구는 이제 시작이다. FIFA의 데이터 분석과 대중화가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보다 양질의 경기 분석 자료와 예측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