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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ya Jul 26. 2023

잘 사고 잘 쓰고 잘 버리기

다시보기_10 책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허유정. (2020).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즐겁게 시작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주)새움출판사.

읽은 날: 2023.07.23.SUN. ~ 2023.07.23.SUN.

  언제부터인가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짜증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당연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전혀 쓰지 않는 물건들, 집안 풍경을 해치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치우고 싶었다. 몇 년 전 tvN에서 방영한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 영향이 7할 정도 차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건들을 버리고,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살아나는 공간의 마법, 그 울림이 꽤 컸다.

  내 일상을 하루종일 살펴봤을 때, 손이 가는 물건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 ‘이고 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가장 대표적인 게 옷이다. 이리저리 옷을 사기는 했지만 색깔, 스타일, 체중 변화 등을 이유로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심지어 포장을 뜯지도 않은 옷들도 있다. 옷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옷장을 보면 모든 옷을 확 버려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온다. 두 번째가 책이다. 당연히 사놓고 다 안 읽은 책들도 있고, 선물 받고 안 읽은 책들도 있으며,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책들도 있다. 무심코 책을 사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조금은 생각하고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고 싶은 책이 있을 때 도서관에서 전자책이 있는지, 종이책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게 됐다.

  방송을 보고 꽤 많은 옷들과 책들을 정리했다. 방 정리에 그치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 아깝다고 버리지 못한, 하지만 제대로 쓸 수가 없는 물건들도 싹 정리했다. 기세를 이어받아 가족들이 함께 쓰는 물건들도 기웃거리며 틈틈이 정리 중이다. 나름 비운다고 비웠는데 아직까지 정리할 것이 많다. 티가 나는 정리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정리를 하고 나면 참 기분이 뿌듯하고 상쾌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관련된 기사나 동영상 등을 주의 깊게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전자도서관에서 ‘제로웨이스트’를 검색했고, 딱 나온 책이 이 책이다.

  작가는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생긴, 딱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그 문턱을 낮춰주고 있다. 마치 영어 교육 광고 카피처럼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적당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채식을 시도하려고 할 때 가장 낮은 단계의 채식부터 시작해 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가볍게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수치로 들여다보는 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기후 변화는 굳이 수치로 말하지 않아도, 당장 우리나라의 날씨만 봐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나 하나 바뀐다고 달라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 같은데? 나 역시 작가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야 할 길은 멀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동참해야 겨우 될까 말까 한 일인데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소수의 작은 날갯짓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까, 법으로 규제를 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건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인식, 의식이다. 나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초등학교 때쯤 샴푸 등은 수질을 오염시키고, 에어컨을 틀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고 배웠다. 적어도 그때는 샴푸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하면서도 내 행동은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인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의식적으로 샴푸, 에어컨과 함께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하루종일 일정하게 버리는 쓰레기들, 그렇게 하루하루 쌓였을 쓰레기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너무나 아찔했다. 특히 종이컵. 몸에도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종이컵을 써댔다. 올해만 놓고 생각해도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다. 작가의 말처럼 아예 쓰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쓰레기라는 인식만 해도 내 행동이 크게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사무실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루 세 개 이상 쓰던 종이컵 사용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한 개 정도 쓸 때는 약간의 죄의식도 가지게 됐다.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을 가졌을 때 작가가 제안한 방법들 외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면 주변에 소문을 내는 것이다. 나의 행동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사람이면 더욱 좋다. 내 손이 물티슈로 향하는 순간, “제로웨이스트 시도한다면서?”라는 날카로운 경보가 울릴지도 모른다. 다이어트를 할 때와 같다고나 할까.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면 “다이어트한다면서?”라는 말이 탁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물건을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만 하면 각종 물건들이 집까지 배송되는 시대. 그만큼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거 같다. 애초에 쉽게 사지 못한다면 버릴 것도 없겠지. 사는 것만 볼 게 아니다.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만들어지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팔리지 않고 버려지겠는가. 최근 나는 SPA 브랜드에 대해 관심이 크다. 쇼핑을 즐겨하지 않지만 어쩌다 옷을 산다고 쇼핑몰을 들여다볼 때면 ‘이 옷들이 다 안 팔리면 어디로 갈까?’를 늘 생각한다. 집 안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쓰레기를 만들지 말아야겠다, 물건들을 잘 사야겠다로 생각들이 이어진 지난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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