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으로 살아가기_5
최근 한국은행 신입사원 채용과 관련된 일화가 화제였다. 어떤 글쓴이가 “왜 OO 대학을 나온 우리 자녀가 떨어졌나? 도대체 어느 대학을 나온 사람이 붙었나? 왜 답변이 없냐?”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한국은행은 “학교명 기재 칸이 없었다.”라고 답했다.
그야말로 우문현답이었다. 우문인 이유는 글쓴이가 요즘 취업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현답인 이유는 중언부언하지 않고 글쓴이의 궁금함을 풀어줬기 때문이었다.
현재 취업 시장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이다. 짧은 단어나 숫자만 적으면 되는 빈칸 대신 서술형으로 보다 길게 채워야 하는 빈칸들이 지원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원자들은 이 제한된 글자 수 안에서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회사의 이념과 직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임을 뻔하지 않게, 진정성 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서 ‘스펙’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등장한다. 입사 지원 자격이 완화되고, 스펙을 적는 칸들이 없어지면서 특정 대학, 학점, 영어 점수 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됐고, 오직 이것들만으로 지원자들을 거르는 것이 어렵게 됐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소개서와 직무 능력만 인정받으면 입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쪽이 있는 반면, 내가 노력해서 들어간 대학, 노력해서 얻은 점수와 자격증 등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는 쪽이 생기게 된다.
나 역시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스펙’을 적는 칸에 대해 이중적인 생각이 들었다. 영어 점수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영어 점수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회사에 지원서를 쓰면 됐다. 하지만 출신 학교, 학점에 대해서는 분명 열심히 노력한 부분인데도 어디에서도 그걸 드러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입, 팀플(조별 과제),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디 열심히 한 사람이 나 하나뿐이겠는가. 뻔한 질문에 뻔하지 않게 답을 해야 한다. 흔하디 흔한 소재는 결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수차례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취업 시장에서 스펙은 여전히 존재한다. 단지 스펙을 표현하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노골적인 단어나 숫자에서 스토리텔링으로 말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결코 대충 살 수가 없다. 학점, 영어 점수, 자격증, 대외 활동 모두 열심히 해야 한다. 문이 어디로 열릴지 모르니 열심히 두드려야 한다. 참 힘든 일이다.
첫 문단의 일화 속 지원자는 호주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한국은행의 해외 전문 인력으로서 어떻게 기여하겠다는 걸,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을 뿐이다. 호주 명문대 입학과 졸업 과정에서 들어갔던 노력들은 분명 인정해야 한다. 자기소개서, 직무 능력 시험, 면접 포인트를 잘 파악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스펙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일명 ‘부모 스펙’이다. 취업 청탁에 관한 뉴스들을 보면 정말이지 힘이 쭉 빠진다. ‘내가 그래서 서류 전형에서 그렇게 많이 떨어졌었나.’는 생각도 들었다. 지원자들이 오직 본인의 힘으로 열심히 노력한 과정과 결과물들만 눈여겨 봐주는 취업 시장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