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으로 살아가기_4
대학은 왜 다니는가? 많고 많은 대학 중에 나는 왜 이 대학을 다니는가? 대학을 바꿀 수는 없을까? 계속 이 대학을 다니게 된다면 이 대학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1학년 1학기 때 처음 대학 수업을 접하고 들었던 고민들이었다.
대학에서는 모든 것이 본인의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 우선 다니던 대학을 계속 다닐지, 그만둘지, 잠시 쉴지, 다른 대학을 다닐지도 본인의 선택에 따른다. 수업 시간표도 본인이 짠다. 물론 100% 본인의 원하는 과목만 수강할 수는 없다. 전공 기초, 전공 필수, 교양 필수 과목들이 정해져 있고, 수강 신청 과정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처음 생긴 강의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강의 정보는 얼마든지 수집할 수 있다. 수업의 내용, 교수님의 성향이 나와 맞지 않으면 안 들으면 그만이다.
이 ‘선택’에 따라 공부의 양과 질에도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학생들에게는 똑같은 수업, 똑같은 과제, 똑같은 시험이 주어진다. 하지만 적당히 그럴듯하게 짜깁기만 하는 학생, 그래도 본인의 생각을 몇 줄 덧붙인 학생, 온갖 책과 논문을 찾아 요약정리를 하고 자신의 생각까지 덧붙이는 학생들이 있다. 쉬는 시간과 밤잠을 줄여가며 고민하는 학생, 적당히 타협하는 학생, 당장의 생계로 인해 주어진 과제들을 제대로 하고 싶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학생들이 있다. 물론 과제를 안 하고, 수업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이 모든 선택에 대한 결과와 책임은 오직 본인의 몫이다.
대학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본격적으로 선택하고 행동에 옮기기 전에 ‘대학의 의미’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나만의 답을 내려야 한다. 대학을 ‘남들도 다 따는 학사학위를 따는 곳’, ‘원하는 직업을 가지려면 반드시 졸업해야 하는 곳’, ‘굳이 다니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고 정리한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행하면 된다.
나에게 대학은 ‘알차게 채우고픈 공간’이었다. 내가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공간은 달라진다. 나는 ‘이렇게 수업만 듣고 시험만 보면 어느새 4학년이 되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나와 시간이 무색무취로 흘러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수업뿐만이 아니라 교내에서 열리는 수업, 특강, 무료 레슨,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또한 대외 활동 카페에 가입해 끌리는 공고가 뜨면 딴 일 제치고 지원서를 썼다. 주말이면 밤늦게까지 지인들과의 친목도모(?)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대학 생활을 다채롭게 꾸밀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꾸밈의 ‘결과’보다는 꾸미는 ‘과정’에 집중했다. 늘 ‘한 단계 높여서 준비하기’를 목표로 삼았다. 수업 시간 발표자이지만 아나운서처럼, 대외 활동 지원자이지만 입사 지원자처럼 준비했다. 떨어졌다는 걸 확인하고 맥이 빠지긴 했지만 ‘다른 거 하면 되지.’하고 편하게 생각했다. 돌아보면 이렇게 ‘과정’에 집중한 것이 조금은 운이 좋았던 취업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8학기 중 7학기 동안 자기소개서를 썼고, 면접을 준비했고, 숱한 불합격에 대해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배웠던 것이다.
이제 첫 문단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겠다. 나는 대학이라는 나에게 주어진 공간을 다채롭게 꾸미기 위해 대학에 다녔다. 입시 결과에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을 바꿔보고자 휴학 후 입시에 재도전했지만 별 소득은 얻지 못하고 복학하게 됐다. 어찌 됐든 많고 많은 대학 중에 이 대학에 다니게 된 만큼 창학 이념, 교육 목적, 교육 목표를 한 번씩 곱씹고,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등록금 냈으니까 당당하게 뽑아낼 수 있는 건 다 뽑아내자는 생각으로 매 순간 임했다.
스무 살 때의 깊은 고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학번도 한 번씩 까먹을 정도로 오래된(?) 졸업생이 됐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는 내가 졸업한 학교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걱정이 됐었는데, 막상 사회에 나가 보니 평가받는 건 오직 ‘나’라는 것도 알게 됐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했고 치열했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지금의 나태해진 내 모습을 보며 반성하기도 한다.
당신에게 대학은 어떤 의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