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의 글쓰기 04

자고 일어나니 윤은 없었다

by 혜리영


https://brunch.co.kr/@riyoung/240




자고 일어나니 윤은 없었다.

두 번째 글에서 윤과 나는 여전히 연인이다. 우리의 이야기에 헤어짐이란 없다. 우리의 다툼이란 신혼집이나 혼수, 예물 등에 대한 것이다. 다툼이라기 보다는 나의 아쉬운 소리다. 엄마는 내 결혼비용을 내놓지 않고, 빠듯한 비상금으로 결혼을 무사히 치를 수 없다. 윤에게 이건 결혼 후 에 해줄게, 이건 간소하게 하자 등. 윤은 글 속에서도 담담히 듣기만 한다. 이 글은 쓰다 말았다. 완성이 없이 휴지통에 버렸다. 계속 쓰다가는 소설 속의 윤도 별일 없는 듯 이별을 말할 것 같았다. 그래, 나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밤새 빈 워드 프로그램과 씨름하다 외국 축구리그 경기를 보다 잠이 들었다. 한 글자도 채우지 못한 워드와, 하필 보게 된 경기마저 지지부진 했다. 내가 삶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카페에 갔다. 오늘은 좀 늦게, 마감 시간보다 두어 시간 전에 갔다. 운 좋은 날은 손님이 하나도 없어 여자애와 오랜 시간 얘길 나눌 수 있다. 오늘은 이름이라도 물어봐야겠다. 내 글에 주인공 이름으로 한 번 써주겠다는 얘기도 해보며.


“근데 언니는 이름이 뭐야?”

“꺄~ 언니라뇨. 작가님 아저씨 같아요!”

“아저씨 맞는데. 나는 가장의 무게를 느껴버린 총각이라고. 그래서 이름이 뭔데?”

“그냥 커피양라고 불러주세요오.”


짖굿은 질문을 피해갈 때면 말끝을 늘인다.


“커피양은 어떤 커피를 제일 좋아해?”

“저는 인스턴트 블랙 커피에 흰우유 타서 마시는 걸 좋아해요.”


어느 새 바 안으로 들어가 행주로 이리저리 훔치며 말한다. 그러면서도 생글생글 웃는 낯은 잃지 않는다. 그래 저 생기 보러 온 거지.


“집에서는 카페처럼 타 마시지 않아?”

“네에. 집에선 간단히 마셔요.”


맹한 얼굴로 웃고는 휙 돌아서 물기가 가신 잔들을 선반에 올린다. 뒷통수에도 생기가 붙어있다. 미끄럽게 반짝이는 단발머리가 저 아이의 몸 어느 곳보다도 더 탐스러워 보인다. 전화가 왔다. 엄마 전화다. 무음으로 해놓은 전화는 엄마의 울음 같다. 손을 댈 수 없다. 화장실로 갔다.


“아닌데요오. 남자친구 없어요.”


커피양은 저 녀석만 오면 넋을 놓고 웃는다. 요즘 애들은 잘나기도 해서 키도 크고 훤칠하게 잘 생겼다. 곱상한 얼굴이 여자들 시선 좀 받았을 것 같다. 저 녀석은 언제부터 카페에 온거지? 해실해실 대화를 나누더니 커피양의 시선을 완전히 빼앗을 즈음, 남자는 전화를 받고 카페를 나갔다. 별 일 없었던 듯 테이블을 치우고 잔을 씻고 카페를 돌보는 커피. 그 모습을 가만히 본다. 내가 글을 쓰게 된다면 커피양의 이름을 부지런한 여자에게 붙여주리라. 가만히 커피양 하루의 일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나도 같이 부지런해짐을 느낀다. 해가 지면 아래 고깃집 간판 불빛이, 다시 떠오르는 밤의 태양처럼 번쩍이면 아주 잠깐 카페의 모든 행동이 멈추고 커피 향과 커피양만 움직이는 듯 느껴진다. 어떤 향에도 틈을 주지 않고, 커피양은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카페를 채운다. 이 카페에 부는 바람은, 단단한 커피향이다. 나는 무언가 할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카페를 나온다. 작가님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으스대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작가님, 요즘 어떤 글 쓰세요?”





https://brunch.co.kr/@riyoung/242



이전 03화작가님의 글쓰기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