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의 글쓰기 03

“야야 큰애 저러는 게 불쌍하잖니.

by 혜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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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큰애 저러는 게 불쌍하잖니. 번듯~한 직장도 다니고 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지만. 형은 뭐 하나는 해봐야지 않겠니.”

형이야말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인생이란 걸 엄마는 모른다. 대충 알았다고 하고 끊는다. 엄마는 어떻게든 알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면 전화를 끊지 않는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나면 어디서 부는지 찬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카페에서 나와 번화가를 지나 전철역 근처까지 갔다가 다른 길로 빙 돌아 방으로 왔다. 곧바로 방으로 가기에는 해가 지지 않았다. 어스름이 깔리고 밤이 찾아오면 그때 시작해야 한다. 내 직업의 시작, 출근이다. 오늘은 카페 여자애에게 작가님이란 칭호를 넉넉할 만치 듣지 않아 좀 떫떠름 하지만, 할 일은 해야한다. 카페에서 한 줄도 쓰지 않은 텅빈 워드 프로그램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빈 폴더를 하나 더 만들었다. ‘크립톤’

작가란 밤에 활동하는 것이다. 고요해진 밤이야 말로 생각이 주도권을 쥐고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시간. 나는 그 시간만 되면 적당히 타협 또는 시기를 내뿜는다. 나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은 크고 무거워져 나를 집어 삼킬 듯 덤벼오지만. 그 틈에서 용케 한 숨을 내쉬며 한 문장을 쓴다. 비록 한 문장이 한 문단으로, 한 단락으로 이어진 적은 없지만.


회사를 그만둔 건 준비된 일이었지만, 갑자기였다. 평범하게 출근하던 아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건 꼭 일어나던 아침 출근길이었다. 가장 잦은 일은 열차가 지연되는 것이다. 출근시간에 임박하게 똥줄이 타게 느릿느릿 지연되는 전철은 출근길에 가장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간혹 급히 내리려는 이의 가방에 다른 이의 옷깃이 걸려 소리지르며 따라 내리는 일도 있고. 학교 체험학습이 걸리는 날이면, 문 앞에 동그랗게 모여서 있는 중학생들을 만날 때도 있다. 어쩌다가 성추행범을 보게 되기도 하고, 출근길에 누군가 쓰러지기도 하고. 회사까지 걸어가던 길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지거나 눈길에 발라당 넘어지기도 하고. 여튼.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서 나와 회사까지 너무도 평온하게 도착한 것이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업무 시작을 준비하며 사내 메신저 로그인과 메일 확인, 사내 게시판 등을 확인하고 어제의 일을 다시 확인하는데. 컴퓨터가 다운됐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나와 간 곳은 집에서 거리가 먼 어느 대학가였다. 대학가 근처 원룸이 싼 편이니, 방 하나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몰래 모아놓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간신히 대학가 외곽의 어느 작은 빌라 반지하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이 방이 싸게 나온 이유는, 반지하 세 방이 하나의 화장실을 같이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불편하다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와 형에 연락하지 않고 그 방에서 첫 밤을 보냈다. 첫 밤부터 ‘나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란 생각이 찾아왔다.


글을 쓰겠다 생각이 든 건, 이 방으로 짐을 다 옮기고 나서 며칠 시간이 흐른 뒤였다. 책이라고는 전공서적, 자격증 문제집 외엔 읽지 않는 내가,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건. 오로지 ‘나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엄습할수록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글 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써내려갔다. 다 쓰고 보니, 어린 시절 나와 새아버지에 대한 글이었다. 그 안엔 아버지의 폭력이 자신에게 올까봐 몸을 사린 형이 있었다. 그 글은 휴지통에 넣었다. 두 번째 글은 윤에 대한 것이었다. 이 방을 구하고 이틀 째에 윤에게 연락이 왔다. 윤은 나의 일탈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를 설득한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윤이었다. 무엇을 하던 너는 중심을 잃지 않고 잘 할 것이라고 하며 이별을 말했다. 윤은 솔직했다. 큰돈을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희생할 마음도 없다. 빠듯한 돈이라도 월마다 통장에 들어오는 남자를 만날 거라고 했다. 윤이 떠날 거라 건 알았다. 그 날 윤은 자고 갔다. 최고의 밤을 주고 싶었지만 그날 따라 서질 않았다. 윤은 나를 감싸안고 가만히 등을 쓸었다. ‘이것도 괜찮아 질거야.’ 자고 일어나니 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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