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1_프로미스타-까리온
짐을 풀고 식당이나 슈퍼를 찾았는데 여의치 않았다. 씨에스타로 문을 닫기도 해서 출출한 배를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며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작가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아저씨가 문을 연 슈퍼를 알려주셔서 찾아갈 수 있다. 슈퍼에서 내일 간식과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2층이었는데 1층에는 세탁기와 건조대 야외 식탁이 있었다. 야외 식탁에 어느 한국인이 라면을 먹고 있었다. 후루룩 소리와 매콤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계단을 오르다 말고 냅다 한국말로 어디서 샀냐고 물어봤다. 한국인이 아니면 어쩌려고. 다행히 한국인이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싸온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 남은 거라고 했던 것도 같다. 인사만 나누었다.
이곳 알베르게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곳이고, 미사 전 이곳만의 기도 시간이 있었다. 까리온 알베르게는 대부분 수녀원에서 운영하고 이런 기도시간이 있기로 이름나 있었다. 궁금함에 나도 시간 맞춰 기도실로 갔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둘러 앉았다.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수녀님은 스페인어만 가능하셨는데 다행히 북유럽인이(나라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음) 스페인어와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통역을 해주었다. 나는 갑분 영어 듣기평가 시간이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사와 이곳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수녀원에 대한 역사 소개를 한 듯 했다. 그리고 다 같이 기도를 드렸다.(가톨릭은 언어가 달라도 모든 기도문이 동일해서 좋다) 그리고, 세상에나! 수녀님께서는 갑자기 나라별로 노래 한 곡씩 해보자고 부탁하셨다. 이미 마침 기도로 성가를 한 곡 부른 후였다. 나에게는 낯선 성가였는데 모두들 악보 없이도 잘 따라 불렀다. 제발 다들 사양하길 바랐지만, 한 국가씩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머릿속에 새카매졌다. 수녀님은 그들의 노래를 간단하게 영상 기록까지 하고 계셔서 더 머릿속이 멍- 막막해졌다. 내 순서가 되고 나는 백지가 되어버린 뇌를 간신히 깨워서......노래를 한 곡 불렀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니지만, 혼자서 너무 창피해서 혼났다. 수녀님은 그런 나의 모습을 다 괜찮다는 듯 포근하게 웃어 주셨다. 다음에 순례길을 또 간다면 노래 한 곡 꼭 준비해 갈 것이다.
밤이 되었고 더 큰 난관이 생겼다. 가방에 커다란 파리채를 매고 다니던 아저씨가......밤새 엄청난 코골이를 하셨다. 아...잠들기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