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1_프로미스타-까리온
더 이상 해가 뜨지 않는 아침이었다. 순례길에서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짐을 챙겨 알베르게를 나오는데, 시월이 되지 아침에 해가 아닌 달을 보며 걷게 되었다. 캄캄한 밤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더 이상 어둔 길이 무섭지 않았다.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지금 이 시간 나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파스 아저씨는 프로미스타 알베르게에서 하루 더 묶는다고 하셨다. 다시 만나고도 와츠앱 연락처는 교환하지 않았다. 큰 부상 없이 무사히 걸으셨는지 또 무사히 귀국하셨는지 궁금하다. 길에서 파스 아저씨 무사하시길 종종 기도드렸다.
길을 걷던 23년 시월은 내내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연일 낮 기온은 30도를 웃돌았고 가져온 경량 패딩을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배낭을 매고 걷는 날이 더 많아졌으며 스틱 사용이 제법 손에 익었다. 점심 시간이 다가올 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구글지도에 나오는 식당이 꼬불꼬불 찾기 힘들게 되어 있어서 작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찾았다. 이미 운동장 근처 벤치에서 한참 쉬고 난 후였다. 그렇게 걷고 걸어 까리온에 도착했다.
까리온 숙소는 프로미스타에서 미리 예약했다. 프로미스타에서 여러 사람을 다시 만났는데 대만 아저씨도 다시 만났다. 아! 프로미스타 성당에서 소화데레사님도 만났다. 먼저 그녀는 미사 후에 순례자 도장을 찍기 위해 선 줄에서 만났다. 내 앞에 있었는데 느닷없이 돌아서서 오늘 자신의 축일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밝은 인사에 덩달아 나도 알던 사람인양 반갑게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대만 아저씨는 낮에 쉬다가 슈퍼 앞에서 만났다. 저녁에 미사 드리러 온다고 하여 그때 보자고 인사를 하고 헤어진 터였다. 미사 후 소화데레사님이 아는 다른 외국인과 넷이 만났다. 그러나 나는 그때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식사를 하지 않고 인사만 나누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여튼, 그때 대만 아저씨가 까리온에서 제일 유명한 수녀원 알베르게를 예약했다는 소릴 들었다. 사실 나는 대만 아저씨를 이제 그만 만나고 싶었다. 너무 좋은 분이신데, 나에게는 짧은 영어로 소통하기가 너무 에너지 쓰이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서 예약했다.
그곳이 바로 스피리투 알베르게였다. 까리온에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만 있다. (세 곳 정도 크게 있다. 다른 알베르게도 있었던 것 같은데, 까리온이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들이 유명하다.) 제일 유명하다는 알베르게를 제외하고 찾은 곳이 스피리투, 우리말로 하면 성령 알베르게였다. 여기는 단층 침대만 있는 곳이었다. 내가 몹시 일찍 도착해서 입구 자리 좋은 위치의 침대를 차지할 수 있었다. 나는 이른 시간에 나가서 입구 자리가 좋았다. 이곳에서 또 여러 사람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