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나도 달은 밝았다

23.10.03_데라딜로스-베르시아

by 혜리영

추석이 지나도 달은 밝았다. 캄캄한 밤 알베르게를 나오는 날이 하루씩 더 많아져갔다. 발에 물집이 가득하고 걷기가 불편해져서 배낭은 동키 보내는 일이 더 잦아졌다. 많이 힘들어지고 있었는데, 힘든지 내가 아픈지도 모르고 그저 걷기만 하던 날이었다. 힘들다는 것을 느낄 힘이, 아프다는 것을 느낄 감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자동화 된 기계처럼 눈을 뜨면 짐을 싸고 걷고 또 걷고. 반복할 뿐이었다.


익숙한 길,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이곳의 풍경이 내가 매일 보던 아파트의 풍경처럼 눈에 익어버렸다. 걷다가 해가 뜨고, 해가 뜨면 바르에 들어가 콘라체와 빵을 몇 조각 먹고 다시 또 걷고. 그것이 마치 내가 태어나 해야 할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했다.


이른 아침부터 홍콩 아저씨가 왓츠앱으로 연락을 주었다. 사하군에 반주증(순례길 전체의 절반을 왔다는 징표)을 주는 성당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본인은 받았다는 사진과 함께. 처음에는 나는 완주증을 받을테니 반주증은 필요없어, 라고 생각했으나. 사람 마음이란 게 또 변하기 마련이었다.


걷다가 어느 낡은 문(?)이 있는 곳에서 쉬었다. 신발을 벗고 발 상태부터 다시 확인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발을 바싹 말리며 마을이나 도시나 할 것 없이 무조건 약국부터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하군은 꽤 큰 도시였다. 사하군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약국부터 찾았다. 어제 물집을 터트렸던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약을 발라놔도 무언가 시원찮은 느낌이었다. 약국에 들어서니 한국인 부부가 처방을 받고 나갔다. 나도 이어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내 상태를 알렸다. 약사는 연고를 잘 바르고 2차 감염에 주의하라고 당부를 했다. 그리고 계산을 하며 작은 과자를 하나 주었다. 그리고 그쯤 약국으로 들어와 기다리던 금발의 아주머니는 나에게 이 과자가 너의 영혼에 힘을 줄 것이라고 밝게 말했다. 밝은 인사에 이미 내 영혼이 힘을 얻었다. ‘그라시아’ 인사를 나누고 약국에서 나왔다. 발에 바를 연고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연고를 바른 기분이었다.


그리고 카페에 들러 오렌지 주스를 한 잔 주문했다. 평소 오렌지 주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순례길에서 나의 최애가 되었다. 아침에 상큼하게 한 잔 마시면 이보다 더 좋은 약이 없었다. 그리고 사하군의 카페에서는 주스와 함께 빵(케이크 비슷한)을 한 조각 같이 주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이것이 이쪽 지방의 국룰(?)이라고 했다. 오전 몇 시 이전에 음료를 주문하면 빵을 같이 주는,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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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배를 채우고 나니, 홍콩 아저씨가 말해준 반주증이 생각났다. 길을 검색해보니 멀지 않다. 가야할 길에서 살짝 벗어났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갈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야지. 나는 또 아픈 발과 무리하고 있는 무릎, 내 몸은 생각하지 않고 ‘가야지’에 이끌리고 말았다. 반주증을 받고 긴긴 길을 걸었다. 걷다가 쉬다가,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다보니 늘 내 주변에는 어르신들이 더 많았다.


길에서 나보다 앞섰던 한국인 부부와 또 금발의 아주머니와 다시 만났다. 내가 들렸던 약국은 마사지를 해주기로도 유명한 곳이었는데, 둘다 마사지를 받고 연고를 사왔다고 했다. 미리 알았으면 나도 받을 걸. 아쉬웠다. 셋 다 몸이 몹시 고되었다. 한국인 부부의 남편은 좀 나은 듯 했지만 부인은 힘들어보였고, 아주머니도 나도 힘들었다. 아픈 사람 셋이 느릿느릿 걸으며 길 위에 있었다.


간신히 베르시아노스에 도착했다.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덩그러니 놓여진 알베르게 밖에 없는 듯한 작은 마을. 심심하기만한 이런 작은 마을의 알베르게가 더 좋았다. 숙소에 들어가니 베드는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자리 잡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홍콩 아저씨를 또 만났다. 아뿔싸. 인싸 중의 인싸, E 중에서도 EEEE인 듯한 아저씨가 나는 슬슬 피곤했던 때였다. 저녁 어떻게 먹을 거냐고 물어와서, 생각이 없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이른 저녁으로 알베르게에 있는 바르에서 맥주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러다 한국인 청년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하루에 거의 40키로씩 걷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군대에서도 이정도로 걷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는 걸을만해서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했다. 참 바른 청년이었다.


이른 식사를 마치고 지도에 성당이라고 찍혀서 가보니, 공소 같았다. 당연히 미사도 없었다. 잠시 앉아서 기도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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