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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elle Riyoung Han Aug 19. 2019

남프랑스의 Narbonne 으로 향하는 TGV 안에서.


오전 7시에 집을 나서 Gare de Lyon 역으로 향해야 했건만, 6시라는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왜 먼저 깨우지 않았느냐며 원망을 던지고 서둘러 샤워를 마쳤는데 간밤, 새벽 3시가 넘도록 잠이 들질 못하고 일어났다, 책상 앞에 앉았다, 다시 불을 끄고 잠을 청해야 했던 내 탓이라는 걸 안다. 여행가방을 마무리하고 집을 나섰다. 다소 허둥대기는 했어도 열차 시간에 적절하게 도착을 했어서, 다행이다. 


남프랑스의 Narbonne으로 향하는 TGV 열차가 출발을 한다. 역내에 있는 Paul 베이커리에서 사 온 것들로 아침 식사를 하며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이른 아침임에도 7월의 햇살은 쏟아졌다, 사라졌다, 눈부셨다.. TGV의 빠른 속도에 맞춰 여름 태양빛이 쏟아지다 찰나적으로 그림자 지대를 지나고, 다시 눈이 부시게 드러나는 순간을 반복해대는 게, 고장 난 전구의 깜박거림 밑에 앉아 있는 것처럼 성가시게 느껴졌다. 

문득, 지난해에 이탈리아 제노브로 향할 때를 떠올렸었다. 5시간 가까이 열차 안에 갇혀 있으며 몹시 힘들어했던 기억을. 이제 점점 더, 열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도 몇 시간 동안 좁은 좌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일과 좁은 화장실 사용에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강도가 심해진다. 



지루함과 뒤섞인 답답함을 잊으려고 플레이 리스트를 듣기 시작하며 '기욤 뮈소'의 '종이 여자'를 펼쳐 들었다. 30여 페이지자 넘겨졌으려나.. 까닥까닥 고개를 떨어트리며 잠이 들고 깨기를 반복했고, 쨍한 햇살에 눈이 부셔 깨어났다. 잠결에서도 아득하게 들려오던 플레이 리스트의 음악은 여전히 제 혼자 돌아가고 있었고 7월의 햇살은 부서지는 파도처럼 열차 창문을 넘나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앉아 다시 책 속의 문장들에 집중을 한다.


"오로르는 우리와 다른 부류의 여자니까, 그 여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무시하니까, 그 여자는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까, 그 여자에게 인생은 언제나 게임이었겠지만 우리에게 인생은 언제나 투쟁이었으니까"


읽다가 잠이 든 페이지의 텍스트를 다시 읽어 내려오며 잠깐 생각을 했다. 나의 인생은 게임에 가까왔을지, 투쟁에 가까왔을지를.  지금껏 살아왔으면서도 나는 나의 인생이 어느 쪽에 가까왔는지 결론 낼 확신은 없지만 은수저를 쥐고 태어나진 않았다는 것을 안다. 금수저도, 흙수저도 없이 주먹 꽉 쥐고 발가벗은 조그만 몸으로 아무것 없이 태어났어도 내 것 아닌 것들을 내 것 보다 편안하고 풍족하게 누리며 살아왔고, 잊지 못할 궁핍의 시기가 한번 내 인생을 지나가긴 했었어도 지금도 여전히 모자람 없이 누리고, 채워지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확신할 뿐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인생의 미로 속을 앞으로도 허우적대며 걸어가게 될진 몰라도 지금 내인생이 은수저를 쥐고 태어난 인생보다 시시하지 않다는 것을 살아갈수록 알아가는 중이다.


문득, 소설을 쓰기 위한 수업을 듣고 단편을 써나가던 오래 전의 일이 생각났었다. 까마득한 옛이야기이다. 

다시 소설을 쓰게 된다면?.. 아마도 이번엔 파리가 배경이겠지, 소설을 쓰는 며칠 동안 한곡의 음악을 듣고 또 들으며 모니터 앞에서 온갖 상상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히키코모리처럼 며칠간을 지내어도 의식하지 못할 거야..

머리는 여러 갈래의 생각들을 해대도 눈은 문장을 따라가고, 귀는 음악을 듣고, 그리고 입안은 영 텁텁하다. 열차가 출발하며 먹었던 뺑 오 쇼콜라와 닭 가슴살 샌드위치 때문이다. 얼른 도착지에 닿고 싶었다. 입안의 텁텁함을 개운하게 양치해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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