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도시 로마, 스페인 광장에서 포폴로 광장까지
Via del Corso(비아 델 코르소) 거리를 걷다 스페인 광장에 도착을 했다.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르 베르니니'가 제작한 '바르카치아 분수 (Pontana della Barcaccia) 가
스페인 광장 중앙에 있었는데 테베레 강에서 와인을 운반하던 배의 모형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분수라고 전해진다.
여행자들은 바르카치아 분수에서 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었고 아무렇지 않게 병에 채운 물을 마셨다.
배가 아프거나 잘못될까 두려워 나로선 아직까지 시도해 보지 못한 일인데 유럽인들은 수돗물이나 분수에서 나오는 물을 식수로 마신다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로마에서 위치한 스페인 광장이다.
스페인 광장은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로 인해 유명해진 로마의 유명지일뿐 유적지는 아니다.
건축가 스펙키가 설계한 교황청 주재의 스페인 대사관을 끼고 있는 광장이기에 그리 불려졌다는데, 영화 한 편이 장소 한 곳의 운명을 저렇게까지 끌어 올려 놓았구나 싶지만, 지리적 조건으로 탁월한 지역에 있다는 것과 지닌 것이 탁월했기에 로마의 휴일이 아니었어도 유명세를 탔을 광장이라 생각한다.
로마는 광장의 도시라는 말이 있을 만큼 다양한 광장들을 끼고 그 주변이 성장해 온 도시였다고 한다.
지금도 광장에 주목을 하고 있다는데 로마의 어디를 가든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들이 잦았고, 항상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문화가 형성되어져 있었다.
영화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은 계단 위에 앉아서 이탈리아 젤라또를 들고 사진 찍는 목적이 크겠지만 사실상 스페인 광장의 계단 위에선 음식물을 먹거나 들고 있어선 안된다.
운이라도 따르지 않는 날엔 불시에 검문 나온 경찰에게 적발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벌금을 물게 된다. 여행자들도 그 사실을 많이 알고 있는지 첫날 방문했을 때 계단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은 스페인 계단을 올려다보면 계단에 앉은 사람들로 정말 바글바글했는데
광장의 정체성을 잡아가는데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가 영향을 준건 분명한 듯 하다.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은 만큼 스페인 광장에 들어선 것들은 명품샵들과 고가의 매장들.
사진 속에 보이는 저 좁은 골목길은 콘도티 거리 (Via del Condotti)로 명품 샵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길로 유명하다. 그러한 만큼 광장의 분위기는 상업적인 분위기로 물들어 가고 사람들의 심리를 끌어당길 요소들이 트렌드에 맞춰 자리를 채울수 밖에 없겠다.
그러고 보면 자리가 사람 만들고 주변 인식이 사람 다듬어 가고 정립시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안 좋은 장소엔 가지 말고 내 성향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자리를 현명하게 찾아 앉아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를 잘 맺어 가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고 편안하게 나이 한 개씩 안아갔으면 좋겠다.
스페인 광장에서도 장미꽃을 들고 다니는 방글라데시인들이 많았고 말이 이끄는 마차들도 있었다. 어떠한 사탕발림을 하며 장미꽃을 들이밀든 이곳에선 팔기 위한 목적일 뿐 관광객이 좋고 친절하려고 거저 주는 꽃이 아니다.
당신이 아름다워서라던가, 로마에 오셔서 환영하기 때문이라는 둥의 오그라드는 말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장미꽃 장사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들이미는 장미꽃을 받아 드는 사람들도 있다는 게 의외이긴 하다.
연인과 함께 있던 나에게도 장미꽃을 들고 따라오는 방글라데시 아저씨가 있었다. 연인이 저지하려 하자 화내는 듯 무시하며 내게 꽃을 내미 길레 나 역시 단호하게 싫다고 말을 해도 몇 걸음을 더 따라왔었다.
그 정도가 되니까 은근하게 화가 나기도 했는데 꽃 파는 아저씨는 정말 꽃을 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는 냥, 여전한 눈빛이었다.
생계를 위해 일하시는걸 나쁘다고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두 번 이상 거절한걸 계속 따라붙으니 자칫 여행하면서 기분이 상하는 상황까지도 가겠다. 그분들에게는 야속한 세상 현실이겠다 싶지만 살아가기 위한 다른 방식은 없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나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한테 무례한 생각일 수 있겠다 싶어 더는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데,
세상에서 천양각색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을 생각 할 때면 마음이 늘 힘들다.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 지도는 필수, 파리에서부터 로마의 지도를 준비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선 로마의 메트로와 버스 노선을 담은 지도가 필요했었다.
정말 의외였던 것은 메트로 부스에서 2유로의 값을 지불해야 버스와 메트로 노선이 있는 지도를 얻을수 있다는 것. 어느 도시를 가든 대중 교통 지도에 값을 매기는 도시는 로마 밖에 못 봤었다. 더구나 그게 2유로라고?
살기 힘든 도시를 가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수많은 관광객들이 요구하는 것을 결코 거저 내줄 수 없다는 로마 정부의 방침인 건지, 로마 철도청의 방침인 건지.. 로마 시민들에게까지 대중교통 노선표를 내주면서 2유로를 요구하지는 않겠지, 설마.
2개의 노선만 가지고 단순한 메트로 노선과 시기가 지난 버스 표기도 수정 안한채 판매하는 저 노선표를 2유로 주고 구입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다음 날 그는 메트로 부스를 지나면서 잘못 표기되고 누락된 버스 노선표는 필요 없으니 환불해 달라는 진상을 부리기도 했다.
환불이 안될 거라는 알면서도 나는 메트로 부스 직원에게 말하는 그를 말리지 않았었고 당연히 환불받지 못한 메트로 지도를 백팩에 접어 넣는 그에게 왜 그랬냐는 질문만 했었다.
그의 대답이 재밌다. "말도 안 되는 판매를 해서 어이없게 했으니까 말 안 되게 환불 요구한다 생각하면 지들도 약 오를 테니까", 라는.
나 역시 안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환불해 달라겠다는 그를 말리지 않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안될걸 알지만 우리가 느낀 부당성을 당신들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무언가 판다는 게 부당한 것은 아니다. 다른 도시들은 공짜니까 너희 도시도 공짜여야 한다며 불평하는 구매자의 판단과 기준이 로마와 다른 것일 뿐.
순한 줄로만 알았는데 은근하게 또라이 기질이 그에게 있다. 말 안 되는 요구라는 거 알면서도 말리지 않은 내 성격 이상한 건 그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비가 왔던 후라 계단이 미끌거렸는데 올라가 보지 않는다면 후회할 테니까 스페인 광장 앞의 계단을 올라갔었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다시 스페인 광장에 올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어서 137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계단 꼭대기 까지.
1722년에 건립되었다는 스페인 광장의 계단은 여전히 건재한 상태로 관광객들의 랜드마크로 존재한다.
좋겠다, 태어날 때부터 확고한 자기 영역이 주어졌어서. 태어날 때부터 은스푼 쥐고 나온 건축물들은 뭐라고 부르면 어울릴까,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며 줄기차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스페인 계단 꼭대기는 각 나라에서 찾아든 관광객들이 이리저리 다른 포즈를 잡아가며 인증샷 찍는 핫 플레이스인가 보다.
그들 중 가장 눈에 들어오던 금발 아가씨들을 보았는데 인스타그램 사진 건지기 위한 샷 사냥중 이셨다.
그냥 찍어도 예쁠 것 같은 외모이던데 주변 사람들 의식 안 하고 나르시스 강속에서 꽤 오랫동안 물놀이 중이시다.
한눈에 한국인들이라 알아볼 수 있었던 시밀러 룩의 여성들도 보았다.
요즘 한국에선 시밀러 룩과 함께 저러한 패션이 유행인 듯하던데 로마에서 보게 되는 한국 여성들 대부분이 페도라를 쓰거나 비슷한 라인과 원단의 원피스들을 입고 있었다.
해외에서도 한국 여성들의 일반 패션은 한국 여자들의 교복 처럼 참 닮아 있었다.
동양 사람들 중에서 한국, 일본, 중국 사람들을 잘 구별해 내는 연인은 시밀러 룩을 입고 있던 두 여성이 연인이냐고 물었었다.
한국에선 끈끈한 유대감을 위해 커플룩을 입는데 유럽에선 그러한 커플룩에 대한 이해도가 적으니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스페인 광장의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서 왼쪽 방향으로 꺾어지면 핀치오 광장(Piazza del Pincio)이 나온다.
그 광장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루이 14세가 세운 프랑스 예술 아카데미도 볼 수 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후의 포스팅으로 미루어 두고 그날은 산책의 끝 지점이라 생각했던 핀치오 광장까지 이야기 하기로.
여기가 핀치오 광장이다. 이 광장 주변으로 로마의 유적지들이 이어지는 것을 짐작하긴 했었는데 첫날에는 이곳이 핀치오 광장인 줄 모르고 스페인 계단을 쭈욱 걸어 올라가다가 발견을 했다. 그날은 이미 어둑해져서 사진을 제대로 찍기 어려웠고 로마의 야경만 잠깐 감상하고 내려왔었다.
'포폴로 광장'까지 걸어 내려와 숙소로 돌아가는 트램 역을 향하던 길에 담은 사진이다.
'포폴로 문 (Porta Popolo)'과 맞붙어 있던 자리에는 원래 '네로 황제'의 무덤과 호두 나무 숲이 있었다는데 네로의 혼령이 나타나 로마 시민들을 괴롭힌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교황은 호두나무 숲을 모두 베어 버리고 '산타마리아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건축된 계기로 인해 산타 마리아 성당은 로마 시민들을 지켜주는 성당으로 인식되고 있다는데 로마 최초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사적 의미 또한 큰 성당이기도 하다.
'포폴로 성당' 오른쪽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이 있다.
포폴로 광장에는 많은 유적지와 유명지, 박물관이 있었는데 그 속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뮤제도 포함된다.
볼거리들이 너무 다양한 도시라 일주일을 빼곡하게 사용한다 해도 턱없이 부족한 여행임을 알기에 박물관 관람은 처음부터 방문 리스트에서 많이 밀려나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울 만큼 대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라 로마에서 몇 개월 살게 된다면 박물관만 돌아다니는 테마를 삶 속에 집어넣어 주어도 좋겠지만 매번 며칠간을 살다 돌아가는 여행으로만 로마에 오게 된다면 박물관 순위는 내게 여전히 순위 안에 들지는 않을듯 하다.
살아오며, 내가 짐작하지 못한 대로 수없이 변화 되어 왔던 나를 보았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도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포폴로 광장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대칭적 구조로 설계하고 쌍둥이 성당이라 부는다는 'Santa Maria di Montesanto'와 'Santa Maria dei Miracoli' 성당. 포폴로 광장의 시선을 한눈에 잡아들이는 효과는 분명하게 있었다.
오벨리스크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란하게 건축된 이 쌍둥이 성당은 실제로는 크기도 다르며 내부 구성도 확연하게 다르다고 한다.
광장 한가운데엔 그 유명한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의 사진은 찍지 않았나 싶을 만큼 포폴로 광장에서 바라본 오벨리스크에 대한 인상은 그때 그리 강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증샷과 같은 유적지의 포인트들 보다 그때 내 여행 속의 느낌을 상기시킬 수 있는 사진들을 찍는데 집중하자고, 이번 여행의 포인트를 잡아 놓았었다.
오벨리스크에 얽힌 히스토리들은 언제나 안타깝지만 실제로 보게 될때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도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 정리를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오벨리스크에 포커스를 단독으로 맞추고 뚜렷하게 찍은 사진이 없었기에.
그런데 쌍둥이 성당과 오벨리스크는 이렇게라도 담겨 있었다.
어떠한 각도에서도 내 마음을 끄는 전체적 풍경을 찾지 못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구도가 살짝 어긋나고 햇빛이 사라진 저녁 시간대라 선명하진 않지만 아쉬운 대로 나쁘지 않다.
오벨리스크.
기원전 1세기 이집트를 정복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가져다 놓은 36m의 포폴로 광장의 전리품.
파리에도 콩코드 광장에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지만, 있어야 할 곳을 떠나 유럽의 도시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들의 운명은 대체 뭐인 게냐.
고대 상형 문자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 오벨리스크는 위용 있는 자태와 신비로움을 뒤로하고도 언제나 처연하게 느껴진다.
이집트에서 보게 된다면, 그야 말로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의미를 진정으로 느끼게 되려나.
유럽과 미국에서 보게 되는 오벨리스크는 국가적 전투에 인질로 잡혀간 옛 왕족들을 보는 것처럼 언제나 쓸쓸하다.
포폴로 광장을 지나고 포폴로 문을 지나왔다.
Porta Popolo라는 포폴로 광장으로 통하는 이 문은 1654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위해 로마로 망명을 한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를 환영하여 맞이한 문이다.
종교 전쟁인 30년 전쟁 때 아버지를 잃은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가 프로테스탄 국가였던 스웨덴에서 로마로 망명을 했다. 프로테스탄 국가인 스웨덴의 여왕으로서 가톨릭과 대립되는 위치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선택은 카톨릭 이었던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로 인하여 세력이 약화되어져 가던 로마의 가톨릭은 이런 스웨덴 여왕의 망명이 반갑지 않을리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망명으로 인해 약화되어 가던 카톨릭 세력의 힘을 다시 세울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스웨덴의 여왕을 환영하며 맞이했다.
로마 카톨릭은 스웨덴 여왕을 환영하며 맞이 하기 위해 건축가 베르니니에게 'Porta Popolo'를 새롭게 손을 보게 했고 Porta Popolo는 스웨덴 여왕의 망명과 베르니니가 재건한 로마의 문으로도 유명하다.
여왕의 직위를 내어 놓고, 자기의 백성들을 포기하면서 까지 카톨릭으로 개종 했어야 했었던 크리스티나 여왕에겐 어떠한 이야기들이 있었던 걸까.
Porta Popolo로 인하여 새로운 호기심의 가지 하나가 더 자라고 있다.
Porta Popolo를 나오면 그 맞은편에 바로 트램이 서는 철길이 있다.
밀비오 다리 부근까지 우릴 옮겨다 줄 트램이 들어오는 중이다. 로마의 트램 노선은 버스보다 적으며 로마 외곽으로 운행이 되는데 생각지 못한 로마의 뒤 풍경들을 달리는 트램 안에서 볼 수 있었다.
로마 여행 시 우리는 트램을 그리 많이 이용한 편은 아니었다. 트램 타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집과 가까이 내려 주는 것은 버스였기에 버스 이용이 잦았다.
하지만 다음번 로마 여행 때엔 괜찮은 노선의 트램을 찾아 노선의 끝까지 가보는 여행도 해보고 싶다.
낡고 지저분해도, 트램을 타고 지나다 보게 되는 로마 거리의 벽들은 멋스러웠다.
휴가 기간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내려 마을 전체가 바캉스 기간에 들어간 로마의 풍경이라 생각했었는데 생기 있게 움직이는 진짜 로마의 모습을 보려면 여름 아닌 시기에 다시 와야 할것 같았다.
그러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움직이며 트램은 Via Flamina를 지나고 있다, 의식할 즈음 옆지기는 뭐 하고 있나 해서 보았더니 저러고 있네.
일상생활에서 취미는 검색. 여행 기간 동안의 특기는 지도 읽기와 초행길 찾아가기.
숙소로 돌아가고 있으면서도 뭘 그리 확인 중인지 모르겠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디에 앉기만 하면 지도를 읽고 있든 미쉘랑 여행 가이드를 읽으며 문화와 역사를 흡수 중이든 대체로 저 자세다.
우린 서로 함께 있어도 각자 생각하거나 각자 공부한다. 그렇게 따로 놀면서도 혼자 있는 것보다 이 있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다.
밀비오 다리를 지나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밀비오 다리도, 테베레 강도 밤에 더 운치가 있었다.
다음번 로마 여행 때에도 밀비오 다리를 이리 자주 지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첫 로마 여행에서 밀비오 다리를 자주 지나게 된 이유는 있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삶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제각각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만큼.
우리가 자주 가던 디저트 카페가 두 곳 있었는데 아침과 저녁에 들르는 곳이 달랐었다.
이곳은 늘 밤에 들르던 곳.
마지막 로마를 떠나는 날엔 원래 아침마다 가던 카페가 문이 닫혀서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했었다.
그날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엔 이곳에서 티라미수도 한 조각 사서 먹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었다.
로마에서의 첫날을 잘 마무리 했었다, 둘째 날의 일정은 바티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