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내가 듣지 않으면 되지.

by 리유

파란 가을 하늘을 그냥 보내기 아쉬운 일요일 오후.


아이들과 축구공, 캐치볼, 배드민턴 등 집에 보유한 모든 구기 종목 도구들 싸 들고 집 앞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넓은 운동장을 누비며 무엇을 할지 쉴 새 없이 종알거렸고 발걸음은 통통 튀는 공 마냥 신나 있었다.


그런데 교문에 가까워질수록 걸걸한 외침 소리들이 크게 들려왔다. 변성기를 막 지난 걸걸한 목소리. 근처 중학교 남학생들이 운동장을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축구공이 발에서 빗나갈 때마다 다양한 욕들을 큰 소리로 뱉어냈고, 나는 그때마다 미간을 찌푸렸다. 내 귀에 들리는 건 괜찮았다. 이해도 되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 따라 하게 될까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아직은 깨끗한 말들만 들려주고 싶은 애미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 사이, 아이들과 남편은 운동장 모서리 한쪽에서 캐치볼을 하기 시작했다.

기왕 신나게 뛰기로 작정하고 왔으니 땀이나 실컷 내자 생각하고 나도 함께했다. 둘둘 짝지어 축구공을 주고받기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백 미터 달리기 시합도 하고.


그렇게 한참 동안 몸을 움직이다가 잠시 숨 고르기 시간.

첫째 아이와 나는 각각 초록색, 빨간색 그네에 올라앉았고, 앞으로 뒤로 번갈아 가며 바람을 갈랐다. 눈을 감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려는 찰나. 또다시 욕 한마디가 귀에 꽂힌다. 아 씨 O.


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휴, 왜 이렇게 욕들을 많이 하지?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러자, 그네 위에서 땀을 식히던 아이가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차분하게 말한다.

“괜찮아. 내가 안 들으면 되지.”





맞다.

내가 듣지 않으면 되는 거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좋지 않은 말들을, 굳이 마음에 담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옳지 않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곱씹지 말고 톡 튕겨내면 되는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들어왔었다. 요즘도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남이 한 말들이 신경을 콕콕 찌르곤 한다. 그럼 당시의 말투와 내용을 반복하게되고 그럴수록 그것들은 더욱 선명해진다.

내 스스로를 뭣하러 그리도 괴롭히고 있었단 말인가.

툭툭 털어내 버리면 될 것을. 아무 말도 듣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도 내 아이에게 한 수 배운다.

어째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

.

.



맑고 깨끗한 하늘을 가르며 상쾌한 공기를 즐기는 아이의 미소가 유난히 더 행복해 보인다.

나도 덩달아 싱긋 웃으며 힘껏 발을 굴려본다.



*사진출처 - pixabay





이전 12화어둠이 와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