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날들에는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다.
진입하는 도로마다 시속 30킬로로 시작할 때면 마음이 급해진다. 그런데 오늘만은 빼곡하게 늘어져 있는 차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현관 앞에 도착하면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바로, 우리 둘째 아이 덕분(?) 이라고나 할까.
최근 2주 간 연휴가 끼어 있었던 탓에, 아이들의 공부 루틴이 무너졌다. 하루 한 장 수학 연산 풀기, 영어책 한 권 읽기. 딱 이렇게 두 개인 데도 말이다. 지난 주말부터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늦어도 화요일까지는 밀린 것 해야 하지 않냐고. 서로 약속한 것이니 지킬 꺼라 믿는다고 말이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파닥파닥 거리며 달려와 품에 안기는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저 멀리서 입술을 삐죽 내밀고 서있다. 손에는 연필이 꼬옥 쥐어져 있다. 연산을 풀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 말로는 풀기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 되었단다. 한 페이지 풀었단다. 한쪽에 약 10문제가 있으니, 6분에 한 문제씩 풀었다는 말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중간에 책도 읽고, 피아노도 똥땅 거리고, 리코더도 빽빽 불고, 첫째랑 보자기 둘러싸며 슈퍼맨 놀이도 했단다. 그 와중에 이 정도라도 푼 거면 대단한 건가.
아이는 울상이었다.
시곗바늘은 아홉 시를 향하고 있고, 아직 네 장이나 반이나 더 풀어야 했다. 게다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엄마는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다리를 동동거리며 문제를 풀어 나갔다. 옆에서 슬쩍 보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오늘은 내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상태가 괜찮으면, 그러니까 마음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보다 온화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넬 수 있었을 것이다. 하기 싫은 거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해줘야 한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문장은 '하기로 한 일 다 하자.'였다.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말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거실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을 때 즈음, 나와 아이의 분위기를 감지했던 것일까. 남편이 거실로 나오더니 아이에게 개구지게 말한다.
'우리 시합할까?, 아빠가 로봇청소기처럼 거실 모서리를 종종 걸어 다닐 테니, 한 페이지 푸는 거랑, 아빠가 걷는 거랑 누가 이기나 해보자. 어때?'
아이는 금세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꼿꼿하게 고쳐 앉았다. 그렇게 시작된 아빠 로봇청소기와 수학 연산 풀기 시합. 한 장, 두 장, 아이는 한 문제당 10초가량의 빠른 속도로 풀어나갔고, 아빠는 헉헉 대며 거실을 돌아다녔다. 저럴 거면 발에 수건이라도 깔아줄걸.이라고 생각하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최근에 본 모습 중에 오늘이 제일 멋있어. '
어떠한 일을 즐겁게 하느냐, 괴롭게 하느냐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누군가 옆에서 딸깍 하고 스위치를 돌려주면 막막함 속에서 더 빨리 빠져나올 수도 있다. 아이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그 과정을 배워가는 중인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누구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아이에게 마음을 달리 먹으라고 말 할 자격이 없다.
내 일 하기 싫다고 양 미간에 인상 잔뜩 쓰며 미루고 있는 게 도대체 몇 가지나 되는지. 깊은 반성이 몰려온다.
다이어리에는 학원비 납부며 과일 구입 등 자잘한 할 일들이 몇일 째 반복적으로 적히고 있다. 집에 작은 방 하나는 점점 창고가 되어가고 있다. 일주일 째 뭉개고 있는 보고서는 두 개나 된다. 그러고 보니 내일까지 해야한다. 이런.
누군가 재미나게 시합하자고 하면 나도 잘할 자신 있는데, 같이 해 줄 사람 없나.
나는 아이도 아니고 어른이니 내가 나와 시합해야 하나. 쩝.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