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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Nov 09. 2023

'글쓰기'라는 세 글자



100번째 글이다.


평소처럼 마음에 떠다니는 감정을 집어 옮겨 적으면 될 것을, 어떤 주제로 쓸지 꽤나 고민되었다. 아이의 말들, 남편의 행동, 아니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 등.. 여러 글감들을 들었다 놨다 수어번 끝에 오늘 아침 문득. 그냥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 싶었다. 그중에서도, 이제 40년 살았으니 다 큰 줄 알았던 한 인간을 자라나게 해 준 글쓰기에 대해서 말이다.






"2022년 11월 11일. 9시. 글쓰기 프로젝트 시작."

아웃룩 월력을 왼쪽으로 열 번 정도 넘기니 1년 전 내 손으로 직접 입력해 둔 일정이 보였다.

당시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짐작건대, 매일 아침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사는 게 맞나.'를 반복했을 것이다. 아이들, 집안일, 회사일 모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고 있었을 것이다. 애매한 물음표들로 가득 찬 삶이었다고 해야 할까.


삶의 중간에 우두커니 서서 이쪽저쪽에 발을 디뎠다 되돌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레일 위에 서 있을 뿐인데 이미 반이나 와버린 현실이 당황스러웠었다. 마주하는 미션과 장애물들을 치열하게 애쓰며 건너왔음에도, 가고 있는 방향에 확신하지도 못했었다.  


그러다 본 것이다. '글쓰기'라는 세 글자를.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저 일과 육아가 아닌 집중할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게다가 글을 쓰면 나를 더 잘 알게 된다니 딱이다 싶었다.






날. 강의를 듣고 나서 알았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무엇이고, 이 과정에서 나는 어떤 것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네 번의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작가 신청을 해야 하며, 합격이라는 결과가 있어야 수업료 일부를 환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첫 글을 쓰기 위해 밤늦게까지 회사 빈 회의실을 홀로 지켰었다. 종일 모니터를 마주하고 일하느라 벌게진 눈을 꿈뻑댔다. 뻐근해진 허리를 두드리며 수십, 수백 번 고민했다. 괜한 거 하겠다고 몸 축내는 거 아닌지 하고 말이다. 늦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들 보러 가는 게 낫겠다 싶은 적도 많았다.

이루고자 하는 게 무엇인 지 뚜렷하지도 않으면서, 또다시 남이 올려놓은 트랙 위에 가만히 서서 치열함을 소모하고 있는 건 아닌 지 수십 번 생각했었다.


학생 때부터 훈련되어 온 습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환급금 때문이었을까. 혹은 같이 교육을 받는 동기 분들 사이에서 '나도 작가 합격했어요' 말하고 박수를 받고 싶어서였을까.

없을 줄 알았던 시간의 조각들을 모아 더디게 문장들을 이어 나갔고, 하나의 글을 발행했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이제 와서 고백한다.  사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글 쓰는 법을 배운 거면 됐다 싶었다. 이렇게 계속 쓴다고 해서 나를, 내 삶을 알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이 일과 육아에 글까지 써야 한다는 현실이 버겁게만 와 닿았었다.


하지만 동기님들의 댓글과 응원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니, 나 자신이 칭찬에 취해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내 필명이 적힌 작가 홈에 글이 하나둘씩 채워졌다. 스크롤을 내려야 첫 번째 글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비슷한 주제의 글이 보여 매거진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그러다 신기한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글과 함께 나도 모르게 피식 웃기도, 콧잔등이 벌게지기도 하는 순간과 마주한 것이다. 회사 점심시간에 글을 쓰다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들킬까 얼른 휴지로 쓱 훔쳐낸 적도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내 남편, 아이들, 엄마, 아빠와 함께한 일을 글로 풀어내며, 그 당시보다 오히려 더 깊고 정교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올해 가을 즈음, 새벽같이 출근해서 회사를 위해 기계적으로 일하는 내가 한심한 적이 있었다. 가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들로 가득 찼었다. 그날 이후 평소보다 30분 일찍 사무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끄적이기 시작했다. 눈을 떠서 출근하고 책상에 앉게 되는 시간까지 떠오르는 날것의 감정들을 마구 적어댔다. 특히,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그러니까, 사는 이유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한 글들이었다. (차마 발행할 수는 없었다.)


한 달 정도 될 때 즈음, 완벽하진 않았지만 60점 정도 되는 답을 찾았다.

덕분에 조금은 더 정돈된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답이 또 달라질 수도, 언젠가 또 물음표들이 폭풍같이 몰려올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당시 나는, 내 안의 혼란스러움을 나도 모르게 글로 쏟아내었다.

 그 결과, 나를 더 가까이 알게 되었고,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하게 된 것이었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뜻하지 않게 남의 말 시선에 밀려온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움직이는 레일 위에도 선택해야만 하는 갈래길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길은  내가 직접 결정했을 거라 생각된다. 그리고, 각각의 순간들이 모여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겠다.


지금도 나는 매일의 선택을 하고 있다. 글쓰기도 그 중 하나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글을 통해서면 제일 좋겠다. 그래서 1년 전 시작한 글쓰기는 나의 온전한 의지로 발을 내딛고 나아간 잘 한 선택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꿈아 이루어져라. 얍!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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