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랑한다. 내 짝꿍이여.

by 리유


어, 왜 이러지. 눈물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어떠한 준비도 없이, 주륵. 흘러나와 버렸다.


퇴근길이었다.

평소 운전하며 자주 듣던 노래였는데, 그날 따라 왜 그랬을까.


“맘껏 울 수도, 또 맘껏 웃을 수도 없는 지친 하루의 끝

그래도 그대 옆이면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다 숨 넘어가듯 웃다 나도 어색해진 나를 만나죠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그댄 나의 자랑이죠” - Crush 하루의 끝 -


그는, 내 남편은.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문득, 그가 어떤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지 떠올려 보았다. 지난 몇 년 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의 하루를 말이다.




아침 7시 반, 잠이 많은 그에겐 새벽이다. 쨍한 알람 소리와 함께 그의 하루가 시작된다.

와이프는 이미 출근해 있고, 지금부터 출근준비와 아홉 살짜리 두 작은 인간들의 등교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한다. 단 50분 만에.

옷 입기, 아침 먹기, 치카하기, 머리 묶기를 삽시간에 해치우고 헐레벌떡 학교로 달려가면,

등교시간은 늘 8시 58분. 간당간당이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받아온 무료 커피쿠폰이 있는 날에는 커피숍에 들린다. 그리고 빈속에 카페라테를 들이킨다. 물 한 잔 마시지 않은 빈속에 말이다. 그리고,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한다.

이 시간이 그에겐 잠깐의 휴식이었을까.


출근하면 다시 아이들과 마주한다. 이번엔 손님으로.

그렇다. 그는 키즈 카페에서 근무한다.

아이들의 웃음, 울음소리, 동요소리와 함께 장난감 정리, 설거지, 청소를 하루 종일 해야 하는 그곳 말이다. 어쩌다 부모의 컴플레인이 있는 날이면, 그의 정신력이 지하까지 내딛는다.


저녁 여덟 시 즈음, 그렇게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장난감, 책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또 다른 장소로 말이다.

몰론, 금쪽같은 두 작은 인간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아빠를 반긴다. 사랑스럽다. 오늘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얘기하는 데 둘이 동시에 말하니, 이내 혼이 빠진다.

아내는 녹초가 된 무표정의 얼굴로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다녀왔어?” 한마디라도 하는 날은 그나마 괜찮다.


옷을 갈아입고, 장난감과 책을 정리한다. 설거지를 하고 밀린 빨래를 갠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면 안방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켠다. 이것 저것 보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다시 아침. 7시 30분,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런 하루하루가, 어느덧 5년이 된 것이다.


아이들 보느라, 나 사느라 바빠서, 한 켠에 밀어두었던 그의 하루가 이제서 눈에 보이다니.

참, 이기적인 아내다.






언젠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카페에 나란히 앉아 있던 날이었다.

몇 달 만이었을까, 단 둘이 이렇게 있었던 게.

같이 하는 시간을 점점 더 많이 가져보자 얘기했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나는 이런 시간이 좋아. 나는 자기를 지금도 많이 사랑해. 그런데 자기는 아닌 것 같아. 사귈 때도 늘 내가 자기를 더 많이 사랑하고, 나는 사랑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 그런데 말이야. 지금도 그래.”


놀랬다. 그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게. 아니라고, 사랑한다고 등을 어루만지며 답하면서도, 혼자 되뇌어 보았다. 정말 그런가. 내가?

그리고 뭔가 묵직한 느낌이 명치부터 목까지 천천히 차올랐다. 눈물과 함께.


연애할 때의 듬직하고 깔끔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끼니를 제 때 챙기지 못해 삐쩍 마른 몸에 잘 씻지는 않고, 집에 오면 침대에 누워 있기 바쁜 그이다. 그런 남자에게 예전의 두근거림, 설레임을 느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하지만 그 설레임 만이 사랑일까.

주말마다 아침을 챙겨주고, 건강을 걱정하고, 일상에서 문득문득 그가 떠오르는 이 모든 것들이 곧 ‘나는 너를 사랑해’ 라는 생각과 행동의 또 다른 말이 아닐까.

사귄 지 3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설레이면 그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거란다. 유튜브나 강연에 부부소통을 주제로 한 컨텐츠의 인기가 많다. 그럼, 이 세상에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이가 소원한 부부들이 꽤 되는 게 아닐까.

아이 낳고도 살뜰하게 지내는 부부들이 존재 한다는데, 과연 몇이나 될까.


그냥 인정 하련다.

육아하는 부부, 게다가 맞벌이 부부의 관계는 결코 설레이거나 애틋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살아내기 바쁜데 어찌 예전의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느낄 수 있으랴.


그저 노력하련다.

퇴근 후 돌아온 그를 잠깐이라도 안아주고 눈 맞추며 우리 오늘도 수고했다고 말해줄 것이다.

우리 지금 잘 하고 있다고, 토닥여줄것이다.


그럼, 조금 더 푸근한 우리가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외모와 깔끔함을 꽤 따지는 나에게, 변해버린 그의 모습은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어디에선가 봤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존중이라고. 내가 선택한 나의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고. 좋은 점, 부족한 점, 불편한 점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어야 그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이다.


주문을 걸어보자.


지금 저기 마르고 3일 째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저 사람도 내가 선택한 그 사람이다.

40대 중년의 오묘한 땀냄새를 풍기고 있는 저 사람도 내가 선택한 그 사람이다.

근엄한 어른이 되고 싶다면서 쉴새 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 저 사람도 내가 선택한 그 사람이다.


스물 일곱 살, 큰 키에 듬직하고 깔끔하며, 스마트함을 뿜뿜하던 그때 그 사람이 지금 이 사람이다.


아브라카다브라!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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