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딸이 되고 싶어 (1)

by 리유


엄마가 5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넸다.

애들 옷도 사주고 니 것도 좀 사라고.


그날따라 손에 쥐어진 10만 원은, 아니, 엄마의 손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 딸, 힘들지, 회사도 다니고 애들도 보고. 애쓴다.

사실은 엄마가 알아.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아등바등 사는 내 딸 엄마가 다 알아.

항상 네 곁에서 지켜줄게. 엄마가 함께 있어줄게.’


처음이었다. 엄마의 마음이 들렸던 순간은.




엄마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 딸의 어린 자식들을, 아니 딸을 봐주러 오신다.

고되다. 어렵다. 하실 때마다, 혼자 되뇌었었다.


‘늘 걱정만 끼치는 딸이, 또, 아직도, 주름 가득한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네.’


그렇다. 나는 마음 한 구석에 엄마를 괴롭힌 딸, 걱정만 하게 한 딸, 게다가 지금도 나이 든 엄마에게 엉겨 붙어 있는 못난 딸이다.



아이였을 때, 그러니까 사춘기 전까지 어떤 딸이었는지, 기억엔 없다.

그저 사진 속 웃고 있는 작고 예쁘장한 모습만 존재할 뿐.


중학교 2학년. 질풍노도의 시작과 함께 엄마와의 암흑기는 거의 10년 동안 이어졌다.

왜 이렇게 멍청하게 낳았냐, 차라리 없어지는 게 좋겠다 라는 못된 말부터 시작해서 소위 말하는 날라리들과도 어울렸다. 거짓말은 기본이고 야밤에 들어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 많은 쓰라림의 순간들을 어찌 견디셨을까.

지금 내 딸이 그런다면 아마도 말 그대로 돌아버렸을 것이다.


그때 어찌 참았냐는 물음에, 엄마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때는 그냥 니 아빠 모르게 하려고 급급했지. 알면 어떻게 됐겠냐.'


그랬다. 강직함이라면 일등으로 서 계실 우리 아빠. 딸을 아끼는 만큼 통제하려고만 했던 가장. 당시 독서실 간다고 해놓고 밖에서 노닥거리는 딸을 보고는 눈이 뒤집어졌다. 집으로 질질 끌고 갔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때리려 했던 것 같다. 맞았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옆에서 말리는 엄마의 모습만 선명하다.


그 시기 엄마는 공부하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크게 혼내지도 않으셨다. 그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갓지은 아침밥을 챙겨주셨을 뿐. 이리저리 날뛰는 딸을 보며, 그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기를, 안전하기만을 기도하고 계셨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10여 년의 암흑기가 지나고, 못난 여자아이는 그제야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공부를 했고, 대학도 입학했다. (사실 대학 생활도 그리 바람직 하진 않았다)

운 좋게 규모가 꽤 큰 곳에 입사를 했고, 인생의 동반자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른생활 사나이를 만났다. 비교적 순탄한 날들이었다.


그리고, 딸의 결혼식.

결혼식 장에서 많이 울진 않으셨다. 아니다. 사실은 자기밖에 모르던 딸은, 나는, 엄마 얼굴이, 표정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듣기로는 엄마는 결혼식 후 일주일 동안 쌀 한 톨도 입에 대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저 자식을 시집보내는 공허함이었을까. 못된 딸이었으니.


그럴 리가.


작디작은 아기와 처음 눈을 마주쳤던 날의 신비로움, 앵두 같은 입으로 ‘엄마’라고 입을 떼었던 날의 기쁨. 쌔근쌔근 잠든 여린 딸을 안았던 행복감이 스쳤을 것이리라.

긴장 가득한 얼굴로 재롱잔치를 하던 날, 처음 책가방을 메고 혼자 교문에 들어가며 손 흔들던 순간. 감정을 바닥으로 치닫게 했던 안타까운 날들, 그리고 어엿하게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까지 무한 반복했을 것이리라.


하지만 자식은 모른다. 딸을 향한 사랑의 크기는. 그 마음은.




결혼 5년이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또다시 걱정을 끼쳐 드린 것이다.




- '예쁜 딸이 되고 싶어 2편에서 계속됩니다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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