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핸드폰 화면을 이리저리 쓸어내리던 중 일곱 개의 글자가 빛을 뿜어댄다.
'브런치 프로젝트'
브런치? 몇 년 전, 회사 일 때문에 검색해 봤던 그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는 프로젝트? 브런치에 작가도 있었나?
일과 육아 속에서 간신히 얻은 혼자만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두 시간, 인스타나 TV에 나오는 화면에 온 정신을 맡겨 두곤 했었다. 무기력과 삶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상념들이 잠시라도 잊힐까 싶어서.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오히려 불쾌감까지 더해지기만 했다.
무언가 잘했다고 여길 수 있는, 해냈다고 뿌듯함을 느끼는 멋들어진 행동이 필요했다.
잿빛 상념들 속에 빠져들어가는 멘탈을 부여잡아줄 무언가가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이 브런치라는 것이 그 동아줄이 되어 줄 것만 같았다.
일단 신청해 보자.
브런치 플랫폼에 글과 목차를 제출하고 작가 지원을 하는 거란다. 작가가 되고 나면 '작가의 서랍'이라는 곳에서 원하는 글을 쓸 수 있고, 꾸준히 쓰다 보면 책을 낼 수 있는 기회도 생길 수 있단다.
기회고 뭐고 잘 모르겠고, 일단 써내고 싶었다. 나에 대한 그 무언가를.
목표 지향적인 직장인 근성 덕분인지 합격이라는 목표가 생기니 어떻게든 글을 썼다. 그동안 정성 들여 써본 거라곤, 회사에서 프로젝트 도입 보고서나 직원 대상 안내메일을 써본 게 다였다.
내가 갖고 있는 스토리를 풀어내라는데, 그런 건 일 년에 서너 번 아주 속상한 날 마음을 토해내듯 휘갈기던 일기 몇 줄이 전부였다.
그래도 뭐라도 써야 한다. 며칠 동안 '나'를 들여다보고 들척거리다 보니, 쓸 '꺼리' 들이 꽤 있었다.
당시의 기억과 감정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들이 다 퇴근한 넓디넓은 사무실에 홀로 앉아,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릴 때는 온 정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만은, 어두운 상념들이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한 번에 합격이었다. 온 힘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흩어져 있는 시간 조각들을 모으고 모아, 하루에 한 줄씩이라도 썼다. 과거를 회고하고 현재를 들여다보며 쓸거리를 틈틈이 고민했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이야기로 합격이 되었다니.
흠. 그래도, 나, 글 좀 잘 쓰는 편인가,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써야겠다는 의지도 함께 올라갔다.
글을 쓰면 좋다는 얘기는 어렴풋이 들었었다. 하지만 뭐가 좋다는 것인지는, 글쎄다. 였다.
흠, 그런데 글을 써내는 한 달 동안, 뭔가 괜찮은 느낌이 들긴 했다. 그게 뭘까. 가만히 앉아 속을 들여다보았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글의 소재가 된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감정을 멀리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됐다. 이것만으로도 글쓰기는 계속해도 된다. 아니, 계속해야만 한다.
일단 쓰자.라고 마음먹으니 더 잘 쓰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길래 난생처음 도서관 자료실에 들러 책 몇 권을 들고 나왔다. 처음엔 글쓰기 책을 먼저 집어 들었다. 그러다 일반 에세이, 그리고 자기 개발서까지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지만, 졸음이 몰려오던 그 출퇴근 길에는 오디오북까지 듣는다.
신기하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이제 두 달이 되었을 뿐인데, 하루에 한 페이지 이상 책을 읽는다. 그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의욕만 있었을 뿐인데, 뜻밖에 긍정과 위로의 말들이 머리에, 마음에 새겨진다. 감정이 정화되는 듯하다.
이상하다.
무료하게 보였던 하루하루가 스토리를 달고 생기를 띤다. 출퇴근 길, 사무실 풍경, 동료들의 대화, 심지어 상사의 지랄 맞은 성격까지 글감으로 보인다. 지루하고 무료했던 일상들이 흥미로워졌다. 주변의 일상에 조금씩 색깔이 입혀지고 있다.
그저, 글쓰기를 시작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나의 생각이, 마음이, 행동이 달라지고 있다. 마법인가.
아직은 글쓰기가 '정말 좋다'라고 확신까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일단 첫 발을 간신히 내디뎠으니 좀 더 걷기도, 달려가 보기도, 조금 쉬었다가 그리고 다시 좀 더 걸어보기도 하련다.
글감은 계속 생겨날 것이라 믿는다. 브런치라는 글을 쓸 공간도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요즘 내 삶에 가장 특별한 존재인 브런치 프로젝트 동기들의 응원과 자극도 함께한다. 자. 글을 쓰기에 이렇게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는가.
잿빛 상념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긴 하지만, 그것마저 멀리서 바라보며 글로 풀어내 보련다. 그까짓 거 하며.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나를 찾고, 나의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어여쁜 글쓰기와 동행해 보련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글에 푹 빠지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