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 여덟 살 두 아이의 엄마, 근속 15년 차 회사원, 아내, 마흔 살 된 여자의 하루를 떠올려 보았다.
매일 새벽 5시 반, 3분에 한 번씩 울리는 알람들을 끄고 침대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두 아이들의 새근새근 숨소리가 마음을 몽글하게 만든다. 아주 잠시.
입력된 코드에 따라 작동하는 로봇처럼,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입는다. 늘 신던 구두에 발을 욱여넣고 걸어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누른다.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듯한 정신을 부여잡고 운전대를 잡는다. 라디오나 앱의 음악을 나오는 대로 듣다 보니 어느새 회사다.
회사의 목줄이라 불리는 아이디카드를 자신의 손으로 목에 걸고, 또각또각 걸어가 자리에 앉는다.
딸깍. 노트북 전원을 켜고 일어난 지 두 시간 만에서야 건조한 몸에 수분을 들이 넣는다.
밤새 반쯤 회복되었던 세포들은 자리에 앉은 지 한 시간도 안되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안색은 금세 누런색에 가까워진다. 처리해 나가는 일의 양과 비례하게 눈의 실핏줄이 부풀어 오르고, 허리는 이따금씩 찌릿하며 발가락 끝은 점점 무감각 해진다.
이러다가 괜찮아 지곤 했고 늘 그랬다. 아무렇지 않은 듯 몇 번 눈을 껌뻑이고 허리를 이리저리 돌린 채 다시 모니터를 바라본다.
어쩌면 점점 뜨거워지는 물에 담가져 안일한 위험함에 익숙해지고 있는 개구리가 아닐까.
12시. 그렇게 허기지지는 않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꾸역꾸역 배를 채워야 한다.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곧 탕약 같은 커피를 들이켠다. 쓰린 위장과 카페인에 취한 뇌를 부여잡고 떨어진 업무들을 처리하다 보면 오후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4시, 아침보다 더 멍한 상태로 졸음을 간신히 내쫓으며 퇴근을 한다.
계획한 일들을 해냈다는 약간의 성취감과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상사의 칭찬이라는 당근을 야금야금 먹으며, 오늘도 8시간 동안 성실하게 앉아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자고 싶다. 하지만 돌봐야 할 두 작은 아이들이 있다. 나는 씻지 않고, 먹지 않더라도 그들은 정성과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 책임져야 할 존재다. 책도 읽어주고 밀린 설거지와 빨래도 좀 해놓는다. 그렇게 착한 엄마 코스프레를 무사히 마치고 침대에 눕는다.
분명 눈을 감으면 쓰러질 듯했는데,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하루종일 혹독하게 쓰인 눈은 피로로 겹겹이 덮여 있는데 감기진 않는다. 다리인가 손인가 배인가 어딘가가 뒤틀린다. 여기저기 주무르고 긁어 봐도 답답함이 풀리지 않는다. 뒤척이다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모르는 채 다시 아침, 아니 새벽이 된다.
학생 때 수동적으로 공부하라면 공부하고, 학교가라면 학교를 갔었다. 어른이 되면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을 하라고 하니 직장에 다니고 있는 건 다르지 않았다. 뭐, 지금은 내 손으로 돈이라는 걸 벌고 있고, 그 돈으로 물질적 욕구들을 채우고 있긴 하다. 어쩌면, 금세 사라지는 허무한 보상들이 단타를 쳐주면서 하루하루가 살아지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고 우물거려 본다.
하지만 이 직장생활도 언젠가 그만하게 될 것이다. 그럼 앞으로 남은 몇 십 년의 기간 동안 무얼 할 수 있을까. 운이 좋아 임원이 되어 억대 연봉을 받게 된다 한들, 그게 행복인 걸까. 그 일을 즐길 수나 있을까.
겉보기에는 워킹맘임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일을 모두 능수능란하게 해 나가는 완벽한 인재로 부러움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 그 눈빛에 취해 한 동안 전력을 다해 주주사들을 위한 일들을 해 나가겠지. 그러다 결국, 지금과 같은 허무함과 무료함이 순식간에 닥쳐오겠지.
이곳에, 이렇게 계속 머물러도 되는 것일까.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잘 살고는 있는 건지, 꼭 살아야 하는 건지, 이게 최선인 지, 이 생활은 이렇게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빈틈없이 채운다. 분명 곳곳에 기쁜 일도, 잘한것도 있을텐데 도대체 왜 어두운 면만 보이는 걸까. 남들은 더 힘들어 보지 않아서 그렇다, 지금 갖고 있는 것에 고마워 할 줄 알아야 한다, 혹은, 마흔은 원래 그렇다, 이러다 괜찮아 질꺼다 라고들 말한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내 마음이 어찌 할 수가 없다. 잿빛 상념 조각들이 하나씩 모여 나를 통째로 집어 심킬것 만 같다. 주변이 온통 이색도 저색도 아닌 회색빛으로 짙게 깔려있다.
무기력감에 파묻혀 또 그렇게 고요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만 본 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때였다.